09. 집으로
입원 생활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이 있다.
병원은 놀랄 만큼 규칙적이라는 것이다. 아침 6시쯤이면 조금씩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7시면 병실의 모든 불이 켜진다. 이때부터 간호사님들은 본격적으로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고 환자들은 일상을 시작한다. 7시 20분쯤 되면 식사가 온다. 병실마다 순서가 있으니 시간은 조금 변동이 있지만 대체로 8시 전에 배식과 식사가 끝난다.
밥을 먹고 나면 간호사님이 오셔서 약을 주신다. 가끔은 밥보다 약이 먼저 도착하기도 했다. 그럼 약을 잘 챙겨뒀다가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먹은 식기를 천천히 반납하러 간다. 그냥 두면 정리해 주시지만, 소화도 시킬 겸 사부작사부작 그릇을 반납하고 복도를 한 바퀴 돌아 화장실에 간다. 양치와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면 아홉 시 즈음이다.
그리고 반대로 복도를 한 바퀴 돌아 침대로 간다. 곧 회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잠깐의 회진이 끝나면 어제 쓰다 만 일기를 쓰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했다.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점심시간이 된다. 그렇게 세 번 밥을 먹고 약을 먹다 보면 하루가 흘렀다. 아픈 것과 씻지 못해서 좀 갑갑하다는 두 가지를 제외하면 불편한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수술 다음날 아침, 외과 교수님의 회진이 있었다. 수술도 잘 되었고 별다른 통증이나 문제가 없는 걸로 보아 회복도 아주 잘 되고 있다며 칭찬을 해 주셨다. 먹고 누워있기 밖에 안 했는데 칭찬을 받다니 매우 신기했다. 오후에는 피주머니를 빼고, 링거는 지금 맞고 있는 수액만 다 들어가면 빼주겠다고 하셨다. 곧 링거 거치대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회진이 끝나고 점심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침대에 얌전히 누워 삼시세끼 차려주시는 밥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좋았다. '입원이 체질인가'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딩동댕동-
천장의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또 어느 환자분을 찾고 있나,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어져 나온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태어나 처음 듣는 단어였다. 높낮이가 많지 않아 조금 단조로운 듯한 목소리였으나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심정지 환자 발생 심정지 환자 발생."
이어서 병실의 층수와 호수가 여러 번 반복해서 호명되었다. 방송이 끝났다. 먼지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듯 고요한 병실 밖으로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가 스쳐갔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병실의 천장과 레일에 걸린 커튼의 고정핀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병실의 미닫이 문이 조용히 열렸다.
"약 먼저 드릴게요."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적막을 깨고 병실에 울렸다. 여기저기서 차르륵, 커튼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를 콱 쥐고 목을 조르던 어떤 것이 탁 힘을 풀었다. 헉하고 숨이 터졌다. 가쁜 숨을 고르며 깊고 길게 쉬었다.
-
점심을 먹고 혈압과 체온을 재면서 간호사님이 링거를 빼 주셨다. 이어서 교수님이 오셔서 피주머니도 빼주셨다. 목에서 달랑거리던 피주머니가 없으니 아주 미세하지만 목을 움직이기도 조금 편해졌다. 여전히 손등에 바늘은 꽂혀 있지만 링거거치대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걸음이 두 배쯤은 빨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해방된 기념으로 지하에 있다는 편의점을 찾아 길을 나섰다. 병원 밥은 다 맛있었지만 그래도 간식은 간식인 법이다.
환자복 양쪽 주머니에 젤리를 하나씩 넣고 병실이 있는 10층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렸을 때였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딩동댕동 하는 소리가 또 울렸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심정지 환자 발생 심정지 환자 발생
10층 1016호, 10층 1016호"
다리에 힘이 풀렸다. 벽에 기대 다행히 넘어지는 것을 면했다.
호명된 병실은 내 병실이었다. 하얀색 그림자가 내 옆을 스쳐 유리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겁이 나서 병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간신히 걸음을 옮겨 휴게실로 가서 눈을 감았다.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깨지도 못하는 꿈 속에서 추락의 기분이 지속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나지막한 한숨소리 같은 게 들렸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상황이 조용해졌다. 휴게실 소파에 찌그러져 있던 나는 조심히 병실로 들어갔다. 활짝 열린 내 침대의 커튼 사이로 간호사님의 옷자락이 보였다. 마침 간호사님이 나를 찾고 계셨다.
"혈압이랑 체온 잴게요."
병실 분위기는 조용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기에 써진 숫자를 옮겨적으며 간호사님은 혈압이 너무 높다고, 걷고 오셨으니까 삼십 분쯤 후에 다시 재러 오겠다고 하셨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간호사님은 커튼을 닫아주셨다.
내 옆 침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다음날, 내가 퇴원하던 날 아침에 새로운 환자분이 그 자리에 들어왔다는 것 밖에는.
병원은 삶과 죽음이 나란히 존재하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바로 전날 수술실에 있다가 올라왔다. 그러나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수술을 마치고 나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바로 위층에도, 커튼 한 장너머의 옆 침대에도 죽음이 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걸.
도처에 죽음이 있었다. 언제든 내 이름이 불릴 수도 있었다.
-
3박 4일의 짧은 병원 생활이 마무리되었다. 퇴원 날이 공휴일인 덕분에 가족들 모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밥을 사고 싶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간단히 빵과 커피를 샀다. 나중에 맛있는 것을 사겠다 약속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깨달았다.
이건 아니다.
병원에서 살만 했던 것은 간호사님들의 도움 덕분이었고 병원이 환자의 생활에 맞게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식탁이나 침대 같은 가구가 없다. 서울 생활 10년 동안 다섯 번의 이사를 다니며 가구라고 부를 만한 것을 전혀 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온 지 반나절만에 좌식생활이 얼마나 환자에게 위험한지 깨달았다. 프레임 없이 바닥에 놓인 매트리스는 일단 그 위에 앉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으며, 식사 때면 바닥에 앉아 밥상을 펴는 일 자체가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목을 움직이는데 제한이 있으니 일상이 불편했고 특히 침대에 눕고 일어나는 일이 고역이었다.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각도가 조절되는 침대와 접고 펼 필요 없이 침대에 붙어있어 끌어올리기만 하면 되는 테이블이 진정한 의료기기였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도 휴일과 주말 동안에는 동생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도와주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일단 혼자서 해보기로 했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제대로 샤워도 하고 머리를 감을 요량이었다.
"시발"
욕을 하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목을 앞으로 숙일 수도 뒤로 젖힐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서서 감자니 수술 부위에 너무 직접적으로 물이 닿아 불편했다. 손에 쥔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맥없이 욕실 바닥에 앉아 그 물줄기를 맞으며 나는 몇 번이고 욕을 했다. 혼자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입원 기간이 3박 4일이라 해서 그 이후에는 바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직접 겪고서야 알았다. 눈물이 비죽 나오는 것을 꾹꾹 참고 천천히 그리고 간신히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쳤다.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것까지 모두 마치자 한 시간 이십 분이 흘러있었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휴대폰을 찾아 코레일 어플을 켰다.
당장 다음날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또 눈물이 나와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술도 다 끝났는데 우는 건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진짜 무서운 건 이미 잘 끝내놓고 겨우 이런 것에 울고 싶지는 않았다. 결제를 마치고 티켓 일정을 가족 단톡에 공유했다.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
집으로 가는 케이티엑스 안에서도 계속 생각했다. 이게 맞는 걸까, 내가 어리광을 부리는 건 아닐까. 괜히 내려가서 또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열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 앞에는 엄마와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천천히 조금씩 또렷해지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진짜 집에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