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너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다
일기장을 덮으니 벌써 잘 시간이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일단은 안대를 쓰고 누웠다. 온열 안대의 온기가 채 오르기도 전에 누군가가 “환자분” 하고 나를 가만히 불렀다.
대답과 함께 안대를 벗자 간호사님이 계셨다. 저녁식사 때쯤 이미 했는데 교대 시간과 겹치면서 내 검사결과가 누락된 것 같다고 죄송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항생제 반응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하셨다. 몇 번이다 미안하다고 하시니 화를 낼 수도 없어 조용히 팔을 내밀고 고개를 돌렸다.
항생제 반응 검사는 비유하자면, 바늘로 피부에 포를 뜨는 듯한 느낌이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주사를 맞는 것과 다른 느낌이라서 기분이 이상하다. 바늘이 팔에 들어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아오' 비명과 신음 사이의 어떤 것을 뱉었다. 검사는 금방 끝났고 내일 첫 수술이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간략히 안내해 주셨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물도 마시면 안 된다는 당부가 이어졌다.
딱히 물이 마시고 싶지도 않았는데 괜히 침을 꼴깍 삼키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촤륵 커튼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안대를 쓰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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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오기는 개뿔.
"환자분"
나를 부르는 간호사님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다섯 시 반쯤 되었을까 이른 새벽부터 간호사님의 방문이 계속됐다. 여러 명의 간호사 분들이 수시로 와서 혈압과 체온을 재고 금식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와 이름, 생년월일, 수술 부위를 반복해서 확인했다. 아 간호사님들의 방문 사이에 전공의가 와서 내 수술부위를 볼펜으로 체크했다.
일곱 시가 되자 속옷을 모두 탈의하고 환자복만 걸쳤다. 수술 부위인 목이 잘 드러나도록 환자복 상의를 거꾸로 입었다. 그렇게 또 잠시간 대기하다가 일곱 시 반쯤 이동 침대가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안경을 벗고 이동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출발했다.
침대에 누워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엘리베이터의 천장을 그렇게 제대로 본 것도 태어나 처음이었다. 병원 엘리베이터의 천장은 조명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울처럼 반들반들해서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과 사람들의 정수리가 비쳤다. 안경을 쓰고 있었다면 좀 더 자세히 불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끔벅였다.
몇 층인지 모를 곳에 내려서 또 몇 번의 모서리를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자 밝고 하얀 수술 대기실이었다.
이동을 도와주신 선생님과 대기실의 간호사님이 마치 바통처럼 내 침대를 이어받았다. 대기실 내의 어떤 자리로 침대가 옮겨지고 이내 주차기어를 넣듯이 멈춰 섰다. 대기실의 간호사님이 건조기에서 갓 나온 듯한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이름, 나이, 혈액형,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간호사님은 내 얼굴을 빠르게 스캔하며 렌즈·젤네일·귀금속 등을 착용했는지 물었다. 속옷 등을 포함해 몸에 부착한 것이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시고는 멀어지셨다.
수술 대기실은 양 옆에만 커튼이 있고 내 발치 쪽은 가릴만한 것이 없었다. 아마도 간호사님들의 통행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하며 통로를 오가는 간호사님들의 희미한 실루엣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이질적인 실루엣이 스쳐갔다. 수녀님이었다.
성모병원 수술 대기실에는 수녀님이 계신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수녀복 위로 위생복 같은 것을 덧입은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열심히 쳐다보았는데, 마침 눈이 마주쳤다. 수녀님이 빙긋 웃으며 내게 다가오셨다.
“기도가 필요하신가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냉담한 지 오래였지만 뻔뻔하게 오늘은 기도를 드리고 싶었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 수녀님이 물었다.
“무서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근데 긴장은 좀 돼요.”
이후의 기도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녀님의 낮고 잔잔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기도하는 동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장을 봤다. 고도난시에 근시까지 있는 내 눈에도 선명히 보일 만큼 큰 글씨로 성경 구절이 쓰여 있었다.
너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다.
수녀님의 아멘, 하는 목소리에 맞춰 나는 얼른 눈을 감고 그 문장을 되새기고 되새겼다.
'나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다. 그러니까 다 잘될 거야.'
나의 기도가 끝난 후에야 멀리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폐암 수술을 앞둔 어느 할아버지, 어깨 수술을 앞둔 젊은 남성.
그들의 기도소리를 듣다가 얼른 눈을 감고 속으'로 기도했다.
'오늘 이 대기실에 있는 모두에게 희망이 있게 해 주세요.'
막 기도를 마쳤을 때였다. 챠륵 소리와 함께 양 옆의 커튼이 얼렸다. 침대가 간호사님의 손에 이끌려 수술실로 움직였다.
도착한 수술실은 대기실보다 더 밝았다. 희미했지만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쇠였다. 두리번거릴 틈도 없이 드라마에서만 봤던 수술복장을 입은 간호사님들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아주 좁은 수술대 위에 간신히 누워 머리를 완전히 뒤로 젖혀 목이 드러나게 자세를 잡았다. 간호사님들이 팔과 다리를 수술대에 고정했다. 사지를 결박당한 채로 이름, 혈액형, 나이, 수술 부위를 다시 확인하고 간호사님의 사무적인 목소리와 함께 마취가 시작되었다.
내가 마취 직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이거였다.
“환자 심박수가 이상한데?”
'제가 부정맥이 있어서요.'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말할 틈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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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고 다행스럽게도 수술에 대한 기억은 없다. 있으면 갑상선암 보다 그게 더 큰 문제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뜻인데, 잘 풀리면 마블 영화 안 풀리면 좀비 영화의 도입부가 될 터였다. 아마도 내가 좀비 역할이겠지. 그렇다면 기왕 좀비 된 거 미남 주인공을 물러 따라다녀야겠다.
아무튼.
회복실에서 깨어나자마자 목이 정말 아팠다. 코로나 때 ‘살면서 이보다 목이 더 아플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는데 세상에, 더 아픈 일이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입조심을 해야 한다. 목은 아프고 마취 여파인지 계속 졸렸다. 회복실부터 병실에 막 올라와서까지는 거의 졸음과의 전쟁이었다. 자지 말라고 간호사님은 계속 깨우는데 자꾸 잠이 쏟아져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보면 또 간호사님이 깨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병실에 올라오니 간호사님이 좀 자도 된다고 하셨다. 그게 무슨 신탁처럼 들려서 나는 대답도 못하고 얼른 눈부터 감았다.
혼자 힘으로는 누울 수가 없어서 앉은 채로 자다가 다시 깼을 때는 열두 시쯤이었다. 수액이 모두 들어가서 오그라든 진통제 링거를 보고서 지나가던 간호사님이 진통제가 더 필요하냐고 물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괜찮다고 대답했다. 언제든 많이 아프면 다시 얘기하라는 말씀에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어서 알겠다고 눈만 끔뻑끔뻑하자 간호사님도 고개를 끄덕이고 커튼을 닫아주셨다. 그리고 또다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마취 때문인지, 전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인지 헷갈렸지만 어쨌든 온전히 깨어난 것은 두시쯤이었다. 간호사님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겠냐고 물으려고 깨워주신 덕분이었다. 종이컵에 물을 떠다 주시며 일단 물을 마시고, 저녁에는 죽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어찌나 좋은지 링거가 꽂혀있지 않았다면 만세를 불렀을 것 같다.
간호사님이 나가시고 간신히 몸을 움직여 거꾸로 입혀진 옷을 제대로 다시 입었다. 침대에 테이블을 간신히 세우고 (세 번이나 실패했다.) 텀블러에 휴대폰을 받혔다. 버즈를 찾아 끼우고 가져다주신 물을 천천히 마셨다. 목청을 돋워 보았지만 아프기만 하고 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아, 소리를 내 보았지만 바람 빠지는 쇳소리만 아주 조그맣게 들렸다.
그래도 일단은 멀리서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에게 얼굴을 보여드려야 했다. 카톡 영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시작되고 채 5초도 되지 않아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나중에 듣기로 여의도 성모병원의 간호통합병동에 입원하고 수술하게 되면 보호자에게 수술 당일에 수술의 시작 및 종료 그리고 회복실로 옮기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문자로 안내된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 문자를 받아보시고 내가 전화를 할 때까지 몇 시간을 휴대폰만 바라보고 계셨던 것 같다.
병실의 희미한 조명 탓인지 화면에 보이는 내 얼굴이 그렇게까지 나 빠보이지 않았다.
괜찮냐고 아프지 않냐고 질문을 쏟아내는 엄마 아빠에게 거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괜찮아.' 한마디를 간신히 했다.
그리고 히히 웃었다.
내 웃는 얼굴을 보고 엄마와 아빠는 웃음이 나오냐며 조금 타박을 했다. 그리고는 쉬라며 전화를 끊었다. 1분을 간신히 넘긴 통화가 끝나고 다시 테이블을 내렸다. 텀블러를 수액걸이의 거치대에 옮기고 슬리퍼를 찾아 신었다. 놀랍기도 이 과정을 모두 마치는데 이십 분이 걸렸다. 그렇게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병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움직이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머리와 목이 움직이지 않도록 느리게 걷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 휴게실의 정수기에서 물을 뜨고 다시 수액걸이를 끌며 공용화장실로 갔다.
병실에도 화장실이 있었지만 거울이 작고 조명이 어두웠다. 공용 화장실에 도착해서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밝은 조명 아래서 본 내 모습은 영상 통화 화면으로 본 것보다 훨씬 초라했다.
24시간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데다 물 한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해 입술은 허옇게 갈라졌고 잔뜩 구겨진 환자복을 입고 여기저기 눌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사람이 거울 안에 있었다.
목에는 피주머니 손목에는 링거줄을 달고 엉거주춤하게 걸으며 수액 걸이를 끌고 있는, 스턴에 걸린 게임 캐릭터처럼 완전히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습이 싫거나 밉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내가 힛, 하고 미소 지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모습 중 가장 멋진 얼굴이었다.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담한 사람이구나.
이만큼 큰 수술도 씩씩하게 이겨내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수술을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봤던 그 문구를 다시 떠올렸다.
나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다.
희망이 없다면 만들어내지, 뭐.
근거 있는 용기가 아주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