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버킷리스트
퇴사하고 수술을 2주 앞둔 어느 날, 광주에 있는 본가로 내려갔다. 본가에 가서 가장 먼저 할머니가 계시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세가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병실에서 만난 할머니는 손녀인 나를 알아보기 어려워하셨고 침대에 누인 몸은 당장 날아가버릴 것처럼 작고 가녀렸다. 할머니의 마른 손과 다리를 만져 보았다. 네 명의 이모들과 네 명의 삼촌을 모두 낳고 키운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잠깐 들었지만 깊이 생각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쉼 없이 이어지는 이모들과 삼촌들의 방문에 인사를 드리느라 바빴다. 엄마와 이모들은 바지런히 할머니를 살피고 나는 할머니의 병실 앞에서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삼촌 및 사촌들과 인사를 나눴다. 본가에 있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더 이상 내가 할머니 병원에 가지 못하게 했다. 수술을 앞둔 내가 호스피스 병동에 드나드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십 년 만에 얻은, 겨우 열흘의 마음 편한 휴가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친구들을 만나 떠나 있었던 10년 동안 엄청나게 변해버린 광주의 맛집을 다니고 야구장을 다니느라 바빴다. 시간은 잘 흘렀다. 입원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고 서울로 돌아갈 짐을 정리하던 늦은 밤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적막을 깨고 공기를 찢으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모든 영화의 불길한 도입부처럼.
엄마의 알겠다는 짧은 대답만 이어지던 전화가 끊기고 아빠는 부산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분명히 알았다. 앞으로 내가 사는 동안 그 벨소리와 통화가 끝난 후에 내려앉은 공기를 잊기 어려울 것임을.
내가 광주에 돌아온 이후로 매일 현관 앞에 놓여있었던,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가방을 챙기며 엄마와 아빠는 내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정신없이 엄마와 아빠를 배웅하고 집에 남아 서울의 동생들에게 연락을 했다. 정장을 챙겨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집을 나서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만져보지 않았지만 차갑고 딱딱할 것이 분명한 남은 사람들의 얼굴. 이별을 예상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준비된 이별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말인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적당히 소란했고 또 가끔은 웃음소리가 났다. 할머니의 여러 아들 딸과 또 그 아들 딸들의 아들 딸까지 모이자 제법 북적였다. 엄마는 나와 동생들이 장례식장에 오래 있는 걸 반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술을 앞둔 내가 영 신경 쓰이는 듯했다. 장례가 시작되고 이틀째 되는 날, 나는 동생부부의 차를 얻어 타고 서울로 향했다. 다음 날이 바로 입원이었다. 차에 타기 전, 상복을 입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는 머리에 하얀색 리본핀을 꽂고 맞잡은 내 손에 힘을 주었다.
"수술 잘해.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엄마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아니 웃으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다 잘해. 잘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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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간호통합병동에 3박 4일 입원하게 되었다. 간호통합병동에는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다. 입원 당일 캐리어 하나에 짐을 몽땅 챙겨 동생과 버스를 타고 오후 세시쯤 병원으로 갔다. 열 살 때 팔이 부러져 입원이라는 걸 해본 이 후로 너무 오랜만이라 모든 것이 어색했다. 입원 수속을 진행하던 직원분이 지금 입원하면 저녁밥을 먹을 수 없다고 얘기해주시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24시간을 굶을 뻔했다.
입원을 잠깐 미루고 때맞춰 둘째 동생까지 병원에 도착했다. 삼 남매가 나란히 여의도의 어느 카페에 앉아 시시덕 거리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놀러 나온 것 같은 기분이라 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할 거라는 사실이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병실에 짐을 들어주겠다고 잠깐 허락을 맡은 동생과 함께 병동으로 향하는 내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캐리어를 든 동생과 함께 내려 병실 침대를 배정받았다. 동생은 내 짐을 정리해 주고 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아픈 곳이 아무 곳도 없는데 환자복을 입은 기분이 어색해서 일부러 싱긋 웃으며 브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병동의 유리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동생과 인사를 했다.
침대에 돌아오자 간호사 선생님이 입원생활 안내문을 건네주시고는 이따 다시 혈압이며 체중 등을 체크하러 오겠다고 하셨다. 촤르륵 소리와 함께 커튼이 닫히자 침대가 있는 그 공간에는 오롯이 나만 남겨졌다.
침대에 앉아 발 쪽에 있는 테이블을 끌어올렸다. 그 위에 입원생활 안내문을 두고 천천히 읽다가 이내 집중력을 잃고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닫힌 커튼 너머에서 사람들 오가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열 살의 입원생활을 제외하면 처음이나 다름없는 병실 생활은 신기한 것이 많았다. 특히 커튼 하나로 가려진 침대가 묘했다. 모든 소리가 들렸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인 것 같기도 혼자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다시 테이블에 놓인 입원 안내문을 천천히 읽다가 오효효-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내가 병원에 수술을 하러 왔다는 것이 좀 믿어졌다.
나를 제외한 저녁 식사시간이 지나고 간호사 선생님의 방문이 이어졌다. 혈압, 체온, 체중과 같은 기초정보 및 복용하고 있는 약 등을 간단하게 확인하고 항생제 알레르기검사를 진행했다. 다음날 첫 수술이라는 안내와 함께 당연히 금식이 시작되었다. 배가 엄청나게 고플 줄 알았는데 긴장한 탓인지 딱히 배가 고프지도 목이 많이 마르지도 않았다.
병실은 10시가 되자 소등했다. 반쯤 열린 병실 문틈으로 간호사 스테이션의 불빛이 스며들었다.
내일 아침 수술이라니 지금이 딱 타이밍이었다. 침대에 테이블을 세우고 일기장을 폈다. 테이블의 오른편에는 일기장을 펼치고 왼편에는 휴대폰을 놓았다. 갑상선암 수술을 결정하고 나서 틈이 날 때면 휴대폰 메모장에 하고 싶은 것들을 적었다. 퇴사하고는 노느라 바빠 잠깐 잊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장례가 치러지고 장례식장과 집을 오가면서 그 메모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추가했다.
메모장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크롭티 입기, 아이돌 팬싸인회 가기 같은 것들부터 어학연수 가기 같은 허황된 것들까지. 시간도 내용도 목적도 없이 내키는 대로 적어둔 조각들을 찬찬히 정리해 보았다. 너무 우스운 것과 너무 비현실적인 것들은 빼고 겁이 많이 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을 위주로 리스트를 정리했다. 나는 그것을 일기장에 천천히 하나씩 옮겨 적었다.
차 사기, 정어리떼 보러 가기.
그리고 개명하기.
좆소만 9년, 햇수로는 10년을 다녔다. 서울의 모든 좆소를 겪어보지는 않았어도 그만하면 좆소가 좆소했다고 유난히 놀라거나 대단히 상처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장 생계가 급해 그냥 적당한 중소라고 생각하며 입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나의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데 두 달이면 충분했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와 모습으로 불행하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안타깝게도 좆소 역시 그런 것 같다. 세상의 수많은 좆소는 저마다 다르게 좆같았다. 이 회사에서 나는 누군가가 부르는 내 이름을 싫어하게 되었다. 사장은 언제나 한숨을 쉬며 내 이름을 불렀다. 한숨을 푹 내쉬면서 나를 불러 매일 혼을 냈다. 사유는 아주 다양했다. 직원 중에 누군가가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거나 사무실에서 머리를 묶고 있지 않다거나 하는 이유들이었다.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파블로프의 개 마냥, 은행이나 병원에서 내 이름이 불리면 화들짝 놀라곤 했다.
'문정대리'하고 이름이 불리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모든 걸 내가 잘 못한 것 같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름이 불리는 것조차 싫었다. 9시간을 근무하는 동안 몇십 번씩 불리는 내 이름이 힘들게 느껴지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가끔은 밀폐용기에 갇힌 것 같은 기분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살짝 열린 미닫이 문 너머로 간호사 선생님들 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놓인 일기장을 천천히 읽었다.
버킷리스트.
수술 끝나면 할 일.
꾹꾹 눌러 적은 손글씨가 있었다.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고 유튜브를 켰다. 한참 개표방송이 중계되고 있었다. 내가 수술을 마치고 나오면 아마도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 첫날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보통 암은 5년이 지나면 완치판정을 한다는데, 수술 후에 날짜 세기는 편하겠다. 똑바로 누워 휴대폰의 볼륨을 가장 작게 줄였다. 긴박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챙겨 온 온열 안대를 썼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일단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