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처음 해본 것
쓰고 싶지도 않고, 차마 쓰지 못할 만큼 짜치는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퇴사 날짜가 정해졌다. 퇴사가 확정되자 구인공고가 올라가고 이력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표는 올라온 이력서들을 거절하기 바빴다. 어떤 이는 나이가 많아서 싫고 어떤 이는 연봉을 많이 달래서 싫다고 한탄인지 징징 거림인지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한 귀로 흘리며 성실히 인수인계서를 작성했다. 퇴사 준비가 덜컹거리며 삐그덕 대는 동안에도 수술준비는 차근히 진행되었다.
수술 전에 한 번 더 병원에 들러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 골밀도 검사 등을 해야 했다. 오후 반차를 내고 병원에 방문해 검사를 받았다. 피검사야 이미 지난 몇 달간 이골이 난 상태였지만 심전도 검사는 태어나 처음 해보는 것이라 신기했다. 간호사님이 시키는 대로 검사실의 침대에 눕자, 손목과 발목 그리고 가슴부위에 장치를 붙이거나 끼워주셨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말없이 몇 분 간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갑상선암이 발견되기 전까지 병원이라 함은 동네 한의원에 가서 어깨나 허리에 침을 맞거나 이비인후과 또는 내과에 가서 감기약을 받는 게 전부였다. 아! 한 번은 지나친 숙취 때문에 내과에 가서 수액을 맞기도 했다.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어 다행이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라고 해봐야 국가검진이 전부였고, 피검사와 위내시경이 겪어본 검사의 전부였다. 내 몸에 붙은 기계들이 웅웅대는 작고 낮은 소음들이 검사실을 채웠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이렇게나 큰 병원에 환자카드를 발급받아 주기적으로 다니고 CT를 찍고 심전도 검사를 하게 되는 일이 내 인생에 생기다니. 병원을 다니는 동안 겪은 거의 모든 일은 태어나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다. 모든 것이 늘 신기했지만 다 큰 어른이라 마음 편히 두리번거리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다.
검사를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심전도 검사에서 특이점이 있어 순환기내과 진료를 한번 더 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다음 주로 잡힌 진료 시간과 날짜를 달력에 메모하면서 새삼 멀지 않은 여의도성모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수술까지 3주, 퇴사까지도 그만큼 남아 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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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기내과 진료를 앞둔 주말이었다. 누워서 휴대폰으로 갑상선암 입원후기, 수술 후기들을 검색해 천천히 살펴보던 중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손이 멈춘 곳에는 환자복과 함께 양갈래로 곱게 땋아진 머리가 있었다. 긴 머리를 가진 환자들은 수술 당일이 되면 간호사 선생님이나 보호자들이 머리칼들을 양쪽으로 곱게 묶어준 다는 내용이었이다. 아마 수술 동안에도 머리칼을 처리하기 곤란하기도 하고, 특히 갑상선암은 수술부위가 목이니까 머리카락이 수술부위에 닿지 않도록 그렇게 묶어주시는 게 아닐까 추측하면서 그 글을 천천히 보다가 퍼뜩 생각이 멈췄다.
'나도 양갈래를 해야 하나?'
병실에 누워있는 양갈래 머리의 나를 상상해 보았다. 삐삐머리를 한 내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상상이 되지 않으면 직접 해보면 되겠지. 혼자 몰래 긴 머리를 양 쪽으로 묶어 보았다.
"미친 저게 뭐야"
거울 속의 나를 보자 낮은 비명과 함께 욕이 나왔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이 후로 처음 보는 몰골이었다. 이런 꼴로 간호사선생님이나 의사 선생님을, 혹은 면회온 가족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거울에 비친 굉장히 심각한 표정의 서른 넘은 삐삐를 보면서 나는 이마를 짚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띠로링, 도어록 비번 눌리는 소리에 황급히 머리끈을 풀었다. 이어서 운동 갔던 남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밥 먹었는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음물을 맞은 듯 번뜩 깨달았다. 해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긴 머리칼을 정리하기 위해 양갈래로 묶는 거라면 머리가 짧으면 될 일이었다. 거슬리지 않을 만큼 짧게. 황급히 휴대폰을 들어 다니던 미용실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시간이 비어 예약가능하다는 말에 나는 그대로 지갑을 챙겨 미용실로 향했다. 커다란 거울을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버스를 타고 오면서 찾은 송혜교의 화보사진을 원장님께 보여드렸다. 사진을 쓱 보시더니 원장님은 내 머리통과 머리칼을 이리저리 살펴보셨다.
"앞머리는 잘라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원장님과 나 사이에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오지만 원장님은 절대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머리를 잘하시는 것과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이 내가 이 미용실에 정착한 두 가지 이유였다. 거울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는 가위와 후드득 떨어지는 머리칼이 희미하게 보였다. 급하게 오느라 렌즈 끼고 올 생각을 못했다. 희미하게 형체만 보여서 결과물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너무 안 어울리면 어떡하지 격정을 하던 찰나에 목덜미로 바리깡이 닿았다. 위이잉 하는 낮은 기계소리가 귓가에서 바로 울렸다. 목덜미를 스치는 금속의 차가움은 태어나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다.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다 됐습니다."
볐어두었던 안경을 쓰고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보았다. 겨우 머리모양이 바뀌었을 뿐인데 매일 보던 얼굴이 낯설었다. 바리깡이 스치고 간 목덜미를 쓸어보았다. 까끌까끌한 것이 아빠 수염자국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머리카락을 모아 묶어보려 했지만 너무 짧아 불가능했다. 당연히 목에 닿는 머리칼도 없었다. 이 정도면 양갈래를 피할 수 있겠다.
결제를 기다리면서 처음 느껴보는 가벼움이 어색해서 몇 번이나 허전한 뒷머리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리고 힐끔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보았다. 너무 낯선 얼굴인데 또 묘하게 어딘가 눈에 익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뭘까 뭐지 곰곰이 곱씹다가 깨달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봤던 젊은 고모의 얼굴이었다. 평생 부정해 왔는데 이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빠의 유전자가 진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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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새로운 후임이 구해졌다. 새로 오신 분은 영민하고 눈치가 빠른 분이었다. 인수인계를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후임은 대략의 업무파악을 마쳤고 열흘쯤 지나자 본격적으로 그녀가 업무를 진행하고 내가 서포트를 하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인수인계와 퇴사는 아주 부드럽게 완료되었다. 길지 않은 사회생활 경험동안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새삼 또 느꼈다. 직원은 그저 회사의 부품일 뿐이라는 것.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교체하면 그만이다. 회사는 나와 상관없이 아주 잘 굴러간다. 역시 진리는 불변하는 법이다.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하고 퇴사할 수 있게 되면서 입원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았다. 마지막 출근날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을 보다가, 점심을 먹고 다섯 시쯤 짐을 챙겨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했다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사무실 문을 열고 복도를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리로 나왔다. 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나는 팔짝 점프를 뛰었다.
드디어 좇소를 벗어났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았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암도 수술도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