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암이라고? 네가?
회사에 출근해 급한 일들을 마무리 하고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메신저가 읽음 처리되더니 거의 곧바로 대표의 호출을 받았다. 에어컨이 켜져있지 않은 회의실의 공기는 습하고 후덥지근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땀이 이마에 맺혔다.
"할 말이 뭐야?"
손부채질을 하며 대표가 물었다. 퇴사가 처음도 아닌데 괜히 긴장이 되었다. 나는 짧게 숨을 훅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퇴사하겠습니다. 두 달 후로 수술날짜도 잡혔습니다."
"너 진짜 암 이래?"
사실 퇴사를 이야기하면 당연히 승인될 줄 알았다. 최소 한 달 이상은 쉬어야 할 텐데, 그 공백을 기다려주기에 이 회사는 너무 적은 규모였으므로. 그러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깜짝 놀란 얼굴로 대표를 바라보았다. 세침검사 결과가 8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암일 것이라고 나온 당일에, 나는 대표에게도 내용을 모두 공유했었다. CT는 전이여부를 확인할 뿐이고 암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수술은 피할 수 없다고, 한 달 이상의 공백이 예상된다는 이야기까지 했었다. 덕분에 그 이후로 연차나 반차가 수월하게 결재 난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네?"
"아니 갑상선에 다른 병도 많잖아. 그런 거 아니고 진짜 암 이래? 너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검사해 본 거야? 이렇게 결과가 빨리 나오나?"
갑자기 뒷골이 뻐근했다.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말 중에서 나를 정말 걱정하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표의 얼굴에 나타난 것은 걱정이나 염려가 아니라 의심이었다.
입을 열면 참을 수 없는 말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대답대신 휴대폰을 꺼내 건강보험공단에 로그인했다. 그리고 산정특례가 등록된 화면을 대표에게 내밀었다. 화면에는 질병코드가 선명하게 쓰여있었다. C73, 구글에 질병코드를 검색하여 다시 화면을 내밀었다.
C73 갑상선의 악성신생물. 갑상선암을 의미하는 질병코드라고 상세한 설명이 쓰여있는 휴대폰 화면을 보는 대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구겨진 그 얼굴을 보면서 혀 밑으로 차오르는 많은 말들을 꾹꾹 삼켰다. 세상에는 여러 인간이 있고, 누군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회사에 보여준 모습이 겨우 그 정도였던 걸까.
"이번 달에 반차, 반반차 올린 게 매번 병원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대표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구겨졌다. 처음 회의실에 들어와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했다.
"퇴사하겠습니다."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물러서거나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다. 잠깐 숨을 들이쉬고 뒤의 말을 이었다.
"수술 전까지 후임 구해주시면 인수인계에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말 순간의 공백도 없이 대표의 말이 내게 날아들었다.
"갑상선암 그거 별거 아니잖아? 수술하니까 일주일정도면 되겠지?"
얼빠진 얼굴로 내가 대표를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달리 대답할 말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갑상선암이 예후가 좋은 암이라고 해도 내가 지금 이런 말을 듣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온몸의 피가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일주일만 쉬고 나와."
대답을 한 적이 없는데, 일방적인 통보가 날아왔다. 당사자의 의사를 묻는 게 아니라 결정이었다. 대표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내가 느낀 감정은 '화가 난다.'거나 '열이 받는다.'는 것이 아니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이미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그러니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은 당혹감과 허탈함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겨우 이런 취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구나.' 하는 허탈함.
"아니요. 퇴사할 테니까 후임자 구해주세요."
대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정말로 어이가 없는 것은 이 쪽인데 왜 저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야? 가슴 깊은 곳에서 반항심 같은 것이 피어올랐지만 꾹꾹 눌렀다.
"저는 더 드릴 말씀이 없는데, 더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
"김대리, 화사한데 갑자기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대단한 잘못을 했다는 듯한 어투였다.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을 나무라고 타박하는 듯한 선생의 말투에 정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끝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냉랭한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갑자기라뇨?"
공격적인 나의 말투에 내가 놀랐지만 걷잡을 수가 없었다. 뇌보다 혀가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보름 전에 조직검사 했고 암이라고 그날 복귀해서 바로 수술해야 할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수술은 두 달 뒤니까 그전에 후임자 구해주세요. 인수인계 성실히 하겠습니다. 더 드릴 말씀 없으니 나가보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자 차가운 에어컨 공기와 함께 파티션 너머로 다른 이들의 궁금증 가득한 눈빛이 날아왔다. 천천히 자리에 앉아 텀블러의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더위 때문인지 방금까지의 대화 때문인지 몸속에서 용암이 부글 거리는 것 같았다.
이어서 대표가 회의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았다. 사무실 공기는 싸늘한 동시에 무거웠다. 적막한 사무실에 키보드 자판 두들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토독토독 자판을 두들기던 소리가 끝나자 나의 메신저 창이 신나게 깜박였다. 마우스를 움직여 그 창들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 들이었다. 나는 천천히 키보드를 눌렀다.
갑상선암이래요.
두 달 후에 수술이고, 퇴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