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암이라니 오히려 좋아
세침검사 결과 80% 이상의 확률로 암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누군가가 거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몰래카메라 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현실의 모든 것이 내 갑상선에 악성신생물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켰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은 사치였다.
검사 결과를 받은 다음 날에 바로 회사에 암이라고 밝혔다. 매우 높은 확률로 암일 것이며, 이후 전이여부등을 확인하겠지만 수술은 불가피하다는 것까지 상세하게. 사실 너무 빨리 밝히는 건가 조금 망설였지만 앞으로도 예약된 진료 및 검사가 많았다. 이미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매주 연차와 반차를 쓰고 있었고, 당장 다음 주에도 CT 촬영이 잡혀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연차를 올릴 때마다 눈치 보고 사과하는 일이 지겨웠다. 나는 내가 암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회사의 반응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막연히 퇴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회사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계획으로 변했다.
가족과 회사에 암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웠다. 사실 나도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나를 대하는 것도 딱히 변한 것은 없었다. 다만 그냥 내 기분이 좀 더 나았다. 아 아니다. 특히 연차를 올릴 때 훨씬 편했다. 다른 직원들이 좀 더 나를 배려해서 일정을 맞춰주시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표의 기분을 살펴가며 연차가 거절될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좋았다. 날짜는 또 금세 흘렀다. 어느새 CT 촬영일이 되었다.
CT 촬영은 갑상선의 암덩어리가 혹시 근처의 림프나 임파선, 혹시 폐로 전이되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조영제를 투여하고 진행되기 때문에 검사 전 8시간 동안 물 포함 완전 금식을 해야 한다. 나는 오후 3시 검사였다. 아침부터 밥도 못 먹고 물도 한 방울 마시지 못했다. 거의 기아 상태로 출근해서 일을 하다가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또다시 수납과 안내장에 쓰인 순서대로 채혈실과 탈의실과 대기실을 오가며 기운이 모두 빠져버렸다. 마지막으로 CT 촬영 대기실에서 바늘 꽂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그냥 무조건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하게 되었다. 어쩌면 병원이 바라는 건 환자가 너무 지겹고 지쳐서 그냥 순종하게 만드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없이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조영제 투입을 위해 손등에 꽤 굵은 바늘을 꽂았다. 주삿바늘을 꽂고 후처치로 테이프를 여기저기 붙이며 간호사님은 빠르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보호자분 어디 계세요?"
내가 토끼눈으로 되물었다.
"저는 혼자 왔는데요?"
선생님의 눈이 나보다 더 크게 변했다.
"어머! 혼자 오셨어요?"
그러더니 간호사님의 빠르고 사무적인 말이 조금 느려지고 친절해졌다. 보통은 환자가 촬영을 모두 마치고 혹시 모를 부작용 발생에 대비해서 경과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머문다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보호자가 수납을 해 놓는다면서, 나는 혼자 왔으니 CT 촬영하고 대기실에서 경과를 지켜본 다음에 그 후에 수납처에 들리라고 안내해 주셨다. 오기 전에 먼저 수납 다 했다고 대답하니, 실제 투약되는 양에 따라 약제비가 바뀌니까 재정산을 해야 한다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정산과 관련해 설명이 모두 끝나고 몸을 일으켰다.
"손이 불편하시니까 지금은 여기 가만히 계시고요."
간호사님은 초등학생을 다루 듯, 나를 대기실 제일 앞자리로 지정해 주었다. 이어서 간호사님이 다른 환자의 이름을 부르자 나는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기실의 환자들은 다들 보호자와 함께였다. 몰래 뒤쪽으로 자리를 옮기려던 내 뒤통수에 간호님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촬영실 들어갈 때 이름 부를 테니까 꼭 여기 계세요."
".. 네!"
딴짓을 하다가 선생님께 들킨 학생처럼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다시 엉거주춤 맨 앞줄에 앉았다.
대형병원에 처음 왔을 때부터 느꼈지만 병원에서 가장 어려운 건 수납이다. 진료과마다 검사마다 수납을 따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의 경우 병원에 오면 두 개 이상의 과에서 진료를 보고 올 때마다 거의 기본적으로 피검사를 한다. 교수님과 진료를 보고 나오면 진료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안내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님이 손에 쥐어주는 안내장과 설명을 잊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간호사님의 지시사항을 혼자서 중얼거리며 1,2,3 순서가 적힌 안내장을 보물지도처럼 꼭 쥐고 커다랗고 미로 같은 병원을 돌아다니곤 했다. 수납처로 검사실로 층과 층을 오가고 로비를 가로지르면서 다짐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부모님이 대형병원에 간다면 반드시 따라가야겠다고.
"문정님"
"네!"
내 이름이 불렸다. 바늘이 없는 오른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CT 촬영은 어려울 게 없었다. 간호사님들과 촬영실의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기계에 들어가 웅웅대는 소리를 견디면 그만이었다. 처치가 될 때면 선생님들은 정확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셨다. 조영제가 들어가면 화끈거리면서 소변 마려운 느낌이 드는데 놀라지 말고 잘 참으면 된다고. 정말 설명 그대로 약을 주사하자 그 방향을 따라 피부가 화끈거렸다. 그렇게 설명을 들으며 몇 번 기계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자 검사가 끝났다.
조영제의 부작용이 메슥거림과 구토라고 했다. 그래서 금식을 하는 게 아닐까 추측하면서 CT촬영실 복도에 15분가량 앉아 있었다. 복도를 오가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검사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매서운 눈빛으로 살펴보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휴대폰도 없고 대화를 나눌 일행도 없어서 주삿바늘이 제거된 자리를 지혈하며 가만히 앉아 병원 복도를 오가는 환자들과 CT 촬영실 X-RAY 촬영실의 대기자 모니터등을 하염없이 보았다. 침대에 누워 병원 복도를 오가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새삼 내 발로 걸어 병원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15분이 지나자 간호사 선생님께 귀가해도 되는지 확인받고 탈의실로 향했다. 거의 한 시간 만에 다시 휴대폰을 쥐고 이 번에도 간호사님이 말한 순서들을 중얼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CT 촬영비용 재정산해서 수납하고, 내분비내과 예약일자를 확인했다. CT촬영 결과가 나오는 데는 일주일쯤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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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고, 전이 여부의 결과를 듣는 날이 되었다. 갑상선암 관련해서 병원을 다니며 처음으로 동행이 생겼다. 사실 전이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혼자 하려니 겁이 나서 동생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CT 촬영 이후 전이 여부 결과를 기다리면서 처음으로 울었다. 결절이 발견되고 세침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받는 동안, CT를 찍을 때까지도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는데 이 번에는 달랐다.
그동안 겁이 나지 않았던 것은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행되는 모든 상황이 약간 게임의 스테이지를 넘어가는 것 같다고도 느꼈다. STAGE 1을 클리어하고 이어서 STAGE 2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건강검진을 했으니 다음 단계인 세침검사를 하고 그다음 단계로 CT 촬영을 했다. 그저 수술을 하기 위해 단계를 밟아가는 거라 내가 진짜 암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전이여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처음으로 내가 진짜 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덜컥 무서워졌다. 만약 다른 곳으로 전이되었다면 그때부터는 지금과는 다른, 내 생각보다 훨씬 본격적인 암치료가 시작될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갑상선암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모든 기간 중에서 가장 길고 겁나던 일주일이 이었다. 평소보다 열 배는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또 병원에 갔다.
소란한 대기실에서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진료실에서 만난 내분비내과 교수는 CT결과를 보더니 다행히 추가로 전이된 곳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감사합니다.'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정말 그냥 반사적으로 나온 기도였다. 이제 수술이 확실해졌으므로 나는 외과로 넘어가게 되었다. 보통은 따로 예약을 잡고 다시 와야 하는데 운 좋게 당일 외과 교수의 일정에 빈 시간이 있었다.
외과 진료까지 잠깐 시간이 비었고 회사에 전화해서 반반차를 반차로 바꿀 수 있겠냐고 사정을 했다. 암이라고 미리 이야기해두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는 한숨을 여러 번 쉬며 영 못마땅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별다른 말 없이 반차를 허락해 주었다.
외과에서는 갑상선에 있는 악성신생물의 정확한 위치와 특히 진행될 수술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왼쪽 갑상선에 있는 그것은 다행히 초기로 보이고, 초음파 및 CT상으로 림프와 폐에 전이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왼쪽 갑상선만 반절제와 림프제거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갑상선암은 예후가 아주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교수님의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수술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일반적으로는 갑상선이 있는 목부분을 절개로 수술하지만, 젊은 여자분들의 경우에는 흉터가 보이지 않게 겨드랑이 쪽을 절개해서 들어가는 로봇수술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로봇수술 비용은 천만 원 이상이었고 절개에 비해 5배가량 높았다. 실비 보험이 된다고 해도 내가 지불하는 금액은 두 배 가량 비쌌다.
나는 그 자리에서 별 고민 없이 절개방식으로 수술하겠다고 결정했다. 반절제다 보니 절개부위도 4CM 정도로 크지 않을 터였고, 무엇보다 로봇 수술로 진행할 경우 겨드랑이에서 갑상선까지 문제가 없는 다른 부분들을 지나가며 미세하게나마 손상될 수 있다는 게 신경 쓰였다. 안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는 방식이었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수술의 범위를 좁혀 효율적으로 하고 싶었다. 그렇게 수술방법을 정하고 가장 빠른 날짜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대략 두 달 후. 여름의 초입으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혼잡한 병원을 벗어나자 길게 늘어선 벚꽃나무들이 보였다. 세침검사를 받고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오가던 3월 초중순 까지만 해도 둥그런 꽃망울이던 것들이 어느새 만개했다가 이제는 조금씩 지고 있었다. 거의 매주 병원을 다녔지만 꽃이 있는 풍경을 마음 편히 본 적은 없었다. 항상 출근까지 시간이 빠듯했고, 자꾸 울리는 거래처들의 문의에 대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늘도 메신저가 자꾸 울렸지만 마음만큼은 홀가분했다.
그토록 걱정했던 불확실성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암이 확실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다행히 전이는 없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최악은 면했으니 이만하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차로 바꾼 덕분에 출근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동생과 근처에서 간단히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먹고 각자 방향으로 헤어졌다.
벚꽃이 가득 피어있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는 길 위로 하얀색 꽃잎이 바람을 따라 우수수 흩날렸다. 시간은 쉼 없이 앞으로 달리고 있었고 계절은 게으름 부리는 법 없이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곧 여름이 올 터였다.
꽃잎이 머리 위로 허공에 흩어졌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이제 됐다는 생각을 했다. 웃음이 났다.
좆소생활 10년 차, 나는 어딘가 고장 나 있었다. 나도 내가 고장 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고칠 여력이 없었다. 마냥 쉬고 싶다는 소원을 마음 저 깊은 곳에 묻어두고 술에 의존해서 간신히 회사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으나 그 바람을 실행할 만큼 용감하지 못했다.
남들도 다 그래. 남들도 다 이만큼 지겹고 힘들어. 그래도 다들 버티고 있잖아.
자기 최면을 걸면서 삐걱삐걱 고장 난 몸과 정신으로,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 어린애처럼 잔뜩 죽상을 하고 회사를 다녔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갑상선의 악성신생물이 내 뺨을 후려쳐 주었다.
울음 대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회사에 가는 버스가 멀리서 모퉁이를 돌아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다시 깊게 숨을 들이쉬고 길게 내쉬었다.
오히려 잘 됐어, 이제 쉴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