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내 갑상선에는 악성신생물이 산다.
세침검사 후 보름 만에 다시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반반차를 내고 가장 이른 시간으로 예약을 잡았더니 출근시간과 딱 겹쳤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뒤엉켜 정신없이 앞으로 떠밀렸고 결국 잘못된 잘못된 출구 앞에 남겨졌다. 다행히 예약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네이버지도에 코를 박고 시키는 대로 걷다가 익숙한 길목에 도착해서야 고개를 들었다.
눈이 닿는 거의 모든 나무들이 벚나무였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연한 분홍빛의 꽃망울이 가득했다. 여의도의 벚꽃이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약시간에 맞춰 내분비내과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조금 심드렁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더니 말씀하셨다.
"암일 확률은 80퍼센트 이상입니다. 이 정도 수치면..."
잠깐 말을 멈추고 교수님이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렸다.
"수술하시죠. 보통 수술로 떼어내고 나서 다시 검사하면 암이에요. 젊으니까 수술하는 게 나을 거예요."
조금 건조해 보이는 교수님의 눈을 잠깐 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병원에서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 '대답'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수술할게요."
진료실에 울린 내 목소리는 덜덜 떨리는 손끝과 다르게 훨씬 덤덤했다. 대답에 이어 교수님은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갑상선 암은 수술하면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다고. 무엇보다 결절이 하나밖에 안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셨다. 달리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그렇군요.' 하고 무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설명이 모두 끝나고 진료실 밖의 대기실에서 간호사님의 호출을 기다렸다. 진료실은 두런두런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야기 나누는 소리로 소란했다. 나는 그 가운데 혼자 앉아 조금 긴장한 얼굴로 간호사님의 호출을 기다렸다. '암'이나 '수술'같은 단어들은 두개골 안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사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진료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보다는 끝없이 울리는 네이트온 진동이 훨씬 현실적인 공포였다. 주머니 속에서 계속 울어대는 휴대폰을 애써 무시하고 간호사님이 부르는 내 이름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모았다.
슬퍼하거나 멍할 틈이 없었다. 대학병원은 혼잡했고 소란했으며 나는 오늘도 1,2,3번이 쓰인 안내장을 받아 간호사님의 지시 순서대로 움직여야 했다.
간호사님이 내 이름을 불렀고, 손에는 안내장과 예약증 두장이 쥐어졌다. 암의 전이여부 확인을 위한 CT촬영 예약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는 예약증에는 날짜가 비어있었다.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잡아달라고 말씀드리자 공란에 빨간색 사인펜으로 날짜가 쓰였다. 다음 주였다. 거의 매주 반차 또는 반반차를 내고 있었다. 회사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걱정이 밀려온 것도 잠깐이었다.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예약증과 안내장을 양손에 들고, 간호사님의 지시사항을 놓치지 않으려 두 번 세 번 되뇌며 병원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1번 병원비 수납하기 2번 시티촬영 예약시간 및 주의사항 안내받기 3번 수납처에서 중증산정특례 등록하기. 해야 할 일이 더럽게 많았다. 망할 국가번호 82의 나라. 나는 슬퍼할 틈이나 암이라는 단어를 곱씹을 시간이 없었다.
CT 촬영 시간까지 예약을 확인하고 주의사항을 안내받았다. 갑상선 암은 위치상으로 가까운 림프, 그리고 폐로 가장 많이 전이되기 때문에 그 부분의 CT를 촬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층을 옮겨 수납처에서 중증산정특례를 등록했다. 산정특례가 적용되면 병원비가 건강보험 처리된다고 했다. 간단한 신분증 확인과 함께 등록 절차를 마치고 나는 그날 900원을 수납했다. 카드를 긁기가 무섭게 딩동, 하고 카톡이 왔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온 카톡이었다. 산정특례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국가가 공인한 나의 질병코드는 'C73: 갑상선의 악성신생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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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처리를 모두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하늘이 맑아져 있었다. 흐린 아침에 지나가듯 보았던 꽃망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 갑상선에 자라고 있는 게 무엇이든 내 기분이 어떻든 그런 건과 전혀 상관없이 햇살은 환하고 하늘은 맑았으며 강물은 반짝였다.
두 시간짜리 반반차가 빠듯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바쁘게 걷는 동안 자꾸 숨이 가빴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나는 버스도착안내판을 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프리다이빙에서 배운 최종호흡을 하듯이 폐의 저 아랫부분부터 숨을 차곡차곡 쌓으며 깊게 들이쉬고 아주 길게 천천히 내 쉬기를 반복했다. 이 숨을 마지막으로, 저 깊은 수심으로 가라앉을 각오를 하는 것처럼. 저 멀리서 회사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버스를 향해 살짝 손을 들었다.
마침 휴대폰에 로그인되어 있는 네이트온이 징징 울렸다. 반반차가 끝나가는데 언제 나오냐는 메시지였다. 내가 가야 할 곳은 깊고 깊은 수면 아래도, 하얀 벚꽃이 가득히 환한 거리도 아닌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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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이십 분 지각이었다. 김대리 요새 이상하다며 나중에 들어오면 보자고 엄포를 놓고 대표가 외근을 나갔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는 동료들의 질문에 이따가 말씀드리겠다고 둘러대고 점심시간에 맞춰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직도 머리가 멍했다. 산책로를 따라 뱅뱅 돌며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알림톡을 한참 쳐다보았다. 건강보험공단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로그인을 하자 나의 산정특례 등록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이름과 나이 같은 것들을 지나 질병코드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었다.
C73 : 갑상선의 악성 신생물.
글자들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멍하던 머리의 흐린 구름들이 조금씩 맑아지는 것 같았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가족보다 회사에 먼저 암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휴대폰 너머로 '어, 왜?' 하는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갑상선에 악성신생물 따위야 뭐 그리 큰일이겠나. 의사 선생님도 그랬다.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고. 수술하면 괜찮을 거라고. 나는 최대한 목청을 돋워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나 암 이래."
암일 확률이 아주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아빠에게 전화를 하는 순간에도 눈물이 나거나 대단히 슬프지 않았다. 아빠가 여러 가지를 물었다. 병원에서 들은 것들을 차분히 말해주며 별거 아니라고 나는 튼튼하니까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가 보험도 두 개나 들어줬으니 걱정될 건 하나도 없다고 아빠를 안심시켰다.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어 가만히 하늘을 보았다. 봄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적당했다. 나뭇잎은 푸르렀다. 개나리는 이미 피어있었고, 벚꽃은 이제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두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네에 앉아 한참 동안이나 주변을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아무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게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괜찮아.
괜찮을 거야.
주문처럼 혼잣말을 되뇌었다.
당장 다음 주에 올려야 할 연차가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