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 풍월 10년, 암에 걸렸다.

02. 갑상선에 뭐가 있다구요?

by 문정


점심시간이었다.


건강검진을 진행한 센터에서 결과지를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하여간 세상 정말 편해졌다고 생각하며 도시락으로 싸간 구운 계란을 입에 몰아넣었다. 퍽퍽한 노른자를 씹으며 휴대폰으로 검사 결과지를 확인했다. 근육이 부족한 마른 비만형이고 햇빛을 보지 않는 실내생활자이므로 비타민 D가 부족했다. 평범한 현대인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훑어내리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이어트를 맨날 하는데 왜 맨날 살을 빼라는 거야 삐죽거리며 천천히 결과지를 한 장씩 넘겼다.


결과지의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서 고개를 들어 회사 컴퓨터의 모니터를 잠시간 쳐다보았다.

얼마간 그렇게 멍청하게 빈 화면을 바라보다가 검색창에 갑상선 결절, 석회화 등의 단어를 검색했다. 큰 일을 만나면 오히려 머리가 차분해진다고 하던가. 늘 방방 뛰며 덜렁대던 것이 나의 천성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자판을 치는 손끝이 차분했다.


1cm 이상의 결절은 추적관찰이 필요하고, 석회화가 진행되었다면 암일 확률이 있으니 조직검사를 추가로 받아보아야 한다는 것이 여러 글의 공통적인 결론이었다. 문장은 글자로 해체되어 머릿속에서 울렁거렸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쉬었다.


암일 확률이 높음.

암.

딱 한 글자가 머리를 둥둥 떠다녔다.


살면서 튼튼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점심시간은 짧았다. 놀라거나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다시 눈을 비비고 갑상선 암과 관련하여 추가 검사 및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검색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여의도성모병원에 갑상선 원스톱 센터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어려서부터 급한 걸로 동네에서 둘째 가기 서러운 성질머리가 제대로 시동이 걸렸다. 당장 전화로 문의했더니 다음 주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역시 국가번호 82의 민족답게 병원의 상담실은 재빠른 대답을 주었다. 바로 예약을 잡고 달력에 병원 예약일을 메모했다.


겨우 전화 한 통을 했을 뿐인데 숨도 쉬지 않고 접배평자 IM100을 돌고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앞이 흐릿해서 여러 번 눈을 천천히 깜박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꾹 눌렀다가 화들짝 놀랐다. 손끝이 놀랍도록 차가웠다. 의자에서 일어나 숨을 깊이 들이쉬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양팔을 앞으로 쭉 뻗어 스트레칭을 했다. 눈앞으로 양손을 길게 뻗고 열 손가락에 각각 힘을 주어 벌렸다. 이어서 손가락 하나씩 천천히 접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천천히 숫자를 세었다. 몇 번이나 손가락을 접고 펴기를 반복하면서 다른 생각 말고 숨 쉬는 것과 접히고 펴지는 손가락에 집중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삐빅, 출입문에 지문인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동료들이 돌아왔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걸음소리 같은 소란함이 사무실을 울렸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얼른 검색내역을 삭제했다.


"점심 맛있게 드셨나요?"

"구내식당 밥이 맨날 똑같지 뭐, 김대리는?"

"저는 계란이요. 다이어트해야 해서요."


웃는 얼굴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시가 채 되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의자를 당겨 앉고 전화를 받았다.


그날 저녁에도 맥주를 마셨다.


갑상선 어딘가에 있다는, 본 적도 없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어쩌면 암세포일지도 모르는 결절보다는 다음날 해야 하는 출근이 더 엿같았으므로.


-


시간은 쉼 없이 흘렀다. 그래도 병원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검사 이틀 전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절대로 못 참을 줄 알았는데 막상 검사일이 다가오자 어떻게든 참아지긴 했다. 이틀간 술을 마시지 않은 멀쩡한 상태가 오랜만이었다.


오전 반차를 내고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예약 시간보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해 기존 건강검진센터에서 받은 초음파 자료를 1층에서 접수하고, 예약시간에 내분비내과 교수님을 만났다. 가져온 초음파 영상으로는 결절이 보이는데 정확지 않으니 병원 온 김에 초음파를 다시 보자고 하셨다. 만약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이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바로 세침검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안내받았다. 내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냐는 교수님의 말에 '정말 암일까요?' 묻고 싶었지만 답이 뻔하므로 묻지 않았다. 암인지 알아보려고 오늘 병원에 왔으니 아직은 알 수 없을 터였다. 짧은 교수님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공손하게 간호사님으로부터 안내장을 받았다. 안내장에는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이 쓰여있었다. 1번 초음파실, 2번 채혈실, 3번 입구의 무인수납기 하는 것들이 빨간색 네임펜으로 순서를 달고 있었다.


안내장이 시키는 대로 병원비 납부를 하고 초음파실로 향했다.


갑상선암의 조직검사는 세침검사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초음파로 목에 있는 갑상선을 보면서 가느다란 주삿바늘을 결절부위에 꽂아 조직을 채취하는 방식이다. 워낙 겁쟁이라 잔뜩 쫄아서 초음파를 시작했다. 역시나 세침검사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바늘을 꺼내 세침검사를 시행했다.


세침검사를 시작하기 전에 주의 사항을 안내받았다. 움직이지 말 것, 소리를 내거나 침을 삼키면 안 된다는 것. 알겠다는 의미로 눈을 깜박깜박 하자 따끔하다는 선생님의 말과 함께 주사 바늘이 목에 들어왔다.


겁 낸 것에 비해 참을만한 통증과 불편함이었다. 사실 목에 주삿바늘이 들어가고 세포채취를 위해서인지 이리저리 휘젓는 듯한 느낌이 썩 고깝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미간만 찌푸리고 몇십만 원의 병원비를 생각했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만큼 강력한 동기가 어디 있겠나.


채취가 끝나고 간호사님이 내 목에 뽀로로 밴드를 붙여주셨다. 아주 잘 참으셨다는 칭찬과 함께. 서른여섯. 성인이 된 지도 벌써 16년인데 뽀로로가 맞는 건가 생각하며 괜히 민망해 거울 앞에서 맨투맨을 이리저리 끌어올려보다가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초음파실 문을 열었다. 나오자마자 복도 대기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괜히 부끄러워 시선을 돌리자 모니터가 보였다. 그 모니터에 뜬 열 명의 환자 중에 내가 가장 어렸다. 뽀로로 밴드가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들었던 것이 우스웠다.


여기선 내가 최연소니까 뽀로로 정도는 괜찮겠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당당하게 채혈실로 걸었다.


-


피검사 외에 갑상선 영상 검사를 하고 시간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 검사하는 동안 긴장을 많이 했는지 뒷목과 어깨가 뻐근했지만 쉴 수는 없었다. 좆소란 휴무인 직원의 대체자가 없는 회사다. 내가 쉬면 다른 한 명이 온전히 내 몫까지 두사람의 일을 해야했다. 업무팀의 막내였던 나는 되도록 월요일과 금요일에 연차를 쓰지 않았으며 정말 급한일이 아니면 반차도 거의 쓰지 않았다. 강요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게 이 회사에서 막내가 눈치 껏 해야할 일이었다.


간단히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오전에 밀린 메일들을 보았다. 출근 길에 편의점에서 사온 빵을 우물거리며 막연히 생각했다. '혹시 만약에 정말 만약에 암이라면 퇴사해야겠구나.' 하고. 직원은 겨우 다섯명. 작디 작은 회사가 최소 몇 주 혹은 몇 달이 될 지 모르는 공백을 감수할 리 없었다. 아픈 것도 화가 나는데 나는 직장마저 잃겠네. 조금 화가났지만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근로기준법의 아슬아슬한 끄트머리, 면접날 '우리는 연봉에 퇴직금이 불포함이에요. 난 아주 당당해.' 같은 말을 하는 대표가 있는 회사에 입사를 선택한 건 나였다.


빵이 넘어가질 않아서 다급하게 물을 마셨다.


내가 정말 좆소에 다니고 있구나.

뒷 목이 뻐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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