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 풍월 10년, 암에 걸렸다.

01. 좆소생활 10년, 왼 팔이 부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by 문정


좆소 10년 차 김대리.


어느 날 지니가 대한민국의 천만 직장인 앞에 나타난다면 그 들의 첫 번째 소원은 뭘까?

나는 무당도 아니고 신도 아니지만 그 들이 바랄 세 가지 소원 중에 하나 정도는 맞출 수 있다.


로또 1등 혹은 한 달 이상의 유급휴가.

적어도 두 개 중에 한 개

혹은 둘 다를 빌지 않을까?


모든 직장인들의 간절한 바람을 나도 매일 꿈꿨다.

출근길에 지하철 환승구간을 걸으며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저 앞에 가는 사람의 캐리어가 미끄러져 내 왼팔이 부러지기를.

비가 오는 날에는 빗길을 걸으며 확 미끄러져 왼팔이 부러지기를.

눈이 오는 날이면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진 자동차와 횡단보도에서 접촉사고가 나기를.

아무튼 어떻게든 왼팔이 부러지기를 바랐다.


다쳐서 출근하고 싶지 않다면서 다치고 싶은 부위를 왼팔로 한정 지은 이유가 있었다. 회사의 노예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직장인은 '적당히' 다쳐야 한다. 너무 크게 다치면 회사를 아예 다닐 수 없으니 안 되고 너무 경미하게 다치면 출근해야 하니 그것도 곤란했다. 그러니까 나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면서 3주 정도 집에서 푹 쉬어야 할, 회사가 거절할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고 공신력 있는 사유가 필요했다.


오전 9시쯤 천천히 일어나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며 읽고 싶었던 책을 읽다가, 회사에서 정말 급한 일이라고 연락이 오면 전화나 원격으로 간단한 것 정도는 처리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상해 혹은 부상이 필요했다. 덧붙여 회사에 제출할 의사의 소견서까지.


결국 나의 간절한 바람은 안정적인 3주 정도의 휴식이었다. 단지 쉬고 싶을 뿐인데, 직장인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우연과 행운이 필요했다.


이뤄질 리 없는 바람을 품고 나는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술과 함께 회사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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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즈음의 나는 출근길에 자주정신을 놓쳤다.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만원 지하철에 서서 졸았을 리 없으니 깜빡 잠에 든 것도 아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온전히 그때의 상태를 표현할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정말 말 그대로 정신을 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 번뜩 정신을 차리면 회사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시작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도 숙취가 심했던 것만 기억난다. 어느 순간에 문득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 전혀 다른 역이름이 있었다. '좆됐다.'는 문장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성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었다. 생각과 동시에 냅다 열린 지하철 문 틈으로 뛰어 나갔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 반대편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뛰어오르기 바빴다.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동대문역사공원의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한 번이 두 번이 되었을 때, 이게 알콜성 치매 인가 하고 혼자 웃어넘기면서도 술을 끊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정신을 놓치는 일이 세 번째가 되었을 때, 나는 이 전보다 20분 앞당겨 집을 나섰다.


그리고 네 번째.

정신을 차리자 또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잘 못 탔음을 알아차렸는데 이 번에는 이미 두 정거장을 지나 친 후였다. 그나마 내릴 타이밍도 놓치는 바람에 코 앞에서 문이 닫혔다. 회사로부터 한 정거정 더 멀어져 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잘 못 내린 역의 벤치에 앉아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처음으로 이 일에 대해 생각이라는 걸 했다. 집에서 일찍 출발해 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지하철을 잘 못 탔던 순간부터 기억나는 것들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정신을 놓쳤다가 화들짝 깨어나는 모든 날들은 환승 과정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다는 걸 깨달았다. 환승역에서 내린 기억도 환승구간을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전혀 기억이 없었다. 여우에게 홀려있다가 깨어나 듯 갑자기 정신을 차리면 반대편 열차 안 이었고 다급하게 열차에서 내려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회사로 가는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 숨이 턱에 차도록 승강장과 계단을 뛰어다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띠리리링.


회사로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자아를 유지하는 건 곤란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한 단어들을 손수건처럼 곱게 개어 기억 상자의 구석 어딘가에 처박았다. 회사에 도착한 직장인에게 자아는 필요하지 않았다.


원래의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점심에 먹은 김밥이 맛없었다는 이야기부터 퇴근길에 삼색 고양이를 마주친 이야기까지 가족과 친구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들기 좋아했지만, 어째서인지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별일 아니라고 수 없이 나를 다잡으며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건 분명히 별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없었다. 변화라니? 그렇게 거대한 무언가를 일으킬 기력이 없었다. 그냥 간신히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았다. 출근길에 분명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라 개라고 다짐했지만 퇴근길에는 맥주 피처를 당연하게 사 들고 오는 날들이었다. 매일 같이 새로운 종의 개가 되면서 나는 최선을 다해 외면하고 있었다. 내 안에서, 내 인생에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막연히 느끼면서도 끝없이 알코올로 도망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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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겨울. 서른여섯이 된 기념으로 건강검진을 했다. 물론 자의는 절대 아니었다. 나의 알코올의존 상태를 대략이나마 짐작하고 있던 동생과 말한 적이 없는데 뭔가를 느꼈는지 엄마까지 두 명이 합동작전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어찌나 볶아대는지 프라이팬에서 달달 볶아지는 참깨가 된 기분이었다. 성화에 못 이겨 공장형 건강검진센터에서 기본검진과 내시경등이 추가된 조금 비싼 것을 결제했다. 일종의 생일선물이라면 생일선물이지. 혼잣말을 했었다.


검사 당일 아침 일찍부터 오전 내내 병원 가운을 입고 빙글빙글 진료실들을 돌았다. 층과 층을 오가며 13번 방에서 초음파를 보고 8번 방에서 시력검사를 했다. 25번 방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생애 첫 수면내시경을 했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끝내고 나는 숙제를 마친 초등학생처럼 신나서 술을 마셨다. 지끈지끈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아침이면 또 회사로 출근했다.


그렇게 열흘 뒤, 검진결과가 나왔다.

반쯤 타의로 진행한 건강검진에서 나는 '갑상선 좌측 1.2cm의 석회화를 동반한 결절이 확인됩니다.' 하는 결과를 받았다.


결과지의 마지막에는 '확진 및 추적검사를 위해 전문의와 상담하십시오.'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