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쁨과 더 나쁨의 사이
수술하고 정확히 8주 후, 내분비내과 진료날이 밝았다.
역시 피검사가 예정되어 있으므로 진료시간 보다 두 시간 먼저 병원에 도착해 피를 뽑았다.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예약 시간까지 병원에 갈 때마다 들리는 커피숍에 앉아 휴대폰을 하거나 창 밖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수능 성적 발표를 앞둔 고삼이 된 기분이었다.
심장이 버들가지 끝에 매달린 것처럼 사방으로 흔들리며 뛰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진료실 앞에 앉아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이제 수납이며 도착처리 같은 병원일이 능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의 문이 열렸다. 교수님 앞의 동그란 의자에 앉았다.
"검사 수치는 전부 정상이네요. 외과에서 수술도 아주 잘 됐다고 들으셨죠?"
"네"
"혹시 유난히 피곤하다거나 힘든 거 있어요?"
나는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체력이 조금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운동을 못한 지 좀 되었으니 그럴만했다.
"역시 젊어서 그런가, 아주 좋네요. 그럼 6개월 후에-"
거기까지 말하고서 교수님은 고개를 돌려 벽의 달력을 잠깐 보았다.
"내년이겠네요."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아직도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반쯤 쇤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말한 후에 진료실을 나섰다.
진료실 밖에서 간호사님이 예약증에 26년 1월 27일이라고 날짜를 써 주셨다. 그 예약증을 받아 가방에 조심스레 넣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겨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잘 들렸을까 걱정이었는데 간호사님도 살짝 웃어주셨다.
"네, 내년에 봬요"
-
매일 저녁, 화장실 거울 앞에서 연고를 바를 때가 가장 흉터를 오래 그리고 자세하게 바라보는 시간이다.
눈부시게 환한 흰색 조명 아래서 천천히 흉터를 살펴보는 그때를 제외하면 이제 나는 내가 암수술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처음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아침과 저녁의 생각이 다르고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들여다볼 정신도 없었다. 혼란 속에서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분명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글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지난 몇 달이 내게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는 걸 알 게 되었다.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수술을 하기까지 꼬박 5개월 동안 나는 온통 나쁨과 더 나쁨 사이를 지나왔다.
결절이 단순 종양일지 아니면 암일지
암이 갑상선에만 있을지 아니면 혹시 전이되었을지
만약 전이가 되었다면 어디까지 퍼져있을지
좋은 것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나쁨 혹은 더 나쁨만 있는, 완전하게 불합리한 갈래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저 검사실의 바깥에서
혹은 진료실의 바깥에서
우두커니 앉아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수술을 하고 회복하고 있는 지금까지 4개월은 살면서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기간이었다.
갑상선암을 격기 전의 나에게 누군가가 '너도 언젠가 죽어.'라고 말하면 나는 '응 알고 있어' 하고 대답할 것이다.
한 없이 가볍게 '인간은 모두 죽어, 아주 낮은 확률이라고 해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데 뭐.'하고 건조하게 대답할 것이다. '뭐 이런 걸 물어?' 하고 시답잖은 얼굴로 지나칠 것이다. '죽음'같은 건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도처에서 언제든지 일어나는 병원 생활을 겪었지만 여전히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수술대에 누워서 마취가 시작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대답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하지 못하고 의식이 사라지던 순간을 알고 있다.
어쩌면 죽는다는 건 마취되던 그 순간 같은 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서, 몇 번이나 코드 블루 방송을 들었다.
심정지, 호흡정지 같은 방송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에 울렸다.
어떤 호출은 내 병실의 바로 옆 커튼 너머의 것이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들이 다급하게 복도를 뛰어가는 발소리와, 촤르륵 하고 다급하게 커튼이 걷히는 소리를 기억한다.
6인실의 병실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그 완전한 적막이 방금 겪은 듯이 선명하다.
누군가의 죽음이 그토록 가까이서, 아래층이나 위층에서 혹은 커튼 한 장 옆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나는 태어나 처음 겪었다.
이 모든 것을 지나고 보니 알겠다.
인생은 때로 좋음과 나쁨 사이가 아니라, 나쁨과 더 나쁨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완전히 불공평한 선택지 사이에서 나쁨만을 고른 다행의 사람이라는 것도.
우연하게 결절이 빨리 발견되었고
다행하게 다른 장기로 전이가 없었으며
운 좋게도 빠른 시일 내에 수술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호르몬 수치가 좋아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
이 모든 다행을 거쳐 행운으로 가득 찬 지금의 일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