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 풍월 10년, 암에 걸렸다.

EPILOGUE

by 문정


수술이 끝나고 흉터 연고를 바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버킷리스트를 이루기로 했다.


7월의 여름날, 리스트의 첫 번째 항목을 위해 작명원을 찾았다.


서울에는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지었다는 곳이나 정치인의 이름을 짓는다는 곳들이 정말 많았다.

온라인으로 상담받기도 하고 직접 방문을 하기도 하면서 내가 고른 것은 '널리 햇빛이 비춰 수풀이 무성히 자란다.'는 뜻의 이름이었다.


이름을 정하고 법원에 개명허가 신청을 위해 서류를 작성했다. 정부 24에서 서류들을 발급받는 것은 어려울 게 없었다. 하나씩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개명 사유를 작성했다.


무려 36년을 불려 온, 아버지가 밤새 옥편을 뒤져가며 지어준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나는 법원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개명 사유를 한 자 한 자 적어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꾸려는 이름을 천천히 써넣었다.


이름을 바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암을 알게 되고 수술을 하고 다시 일상을 살게 되었으니 앞으로 남은 생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개명신청서를 접수하고 또다시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8월의 마지막 날, 법원으로부터 개명을 허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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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세 가지는 악기와 운동과 취미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평생 할 운동은 찾았으니 악기를 찾고 싶었고 마침 집 근처의 센터에서 성인 대상 피아노 강습을 하고 있었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악기가 피아노였다.


피아노를 등록한 첫날, 선생님은 '배우고 싶은 곡이 있는지' 물으셨다.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춤곡이요. 왈츠를 쳐보고 싶어요."


좆소에서 구르는 10년 동안 내 인생은 대체로 맵고 쓰고 짰다. 줄곧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것은 너무 지겹다고, 지금 당장이라도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술에 의존했고 술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술에 잠식당해 하루하루 버틴 결과는 갑상선암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앞으로도 맵고 쓰고 짠 게 인생이라고 해도 내 인생에 배경음악은 왈츠로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쓰고 맵더라도 가볍고 경쾌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나의 피아노 실력은 형편없었으므로 4개월이 지난 지금 간신히 루돌프 사슴코를 연주하고 있다.

그러나 오롯한 독방에서 나의 더듬대는 연주를 듣고 있는 순간이 매우 행복하다.

내 손을 움직이는 만큼 성실히 나아지고 조금씩 매끄러워지는 연주를 듣고 있으면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기대하게 된다.

언젠가 내 손으로 연주하는 춤곡을 듣게 되는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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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나의 첫 번째 운전면허 취득 시도는 대학교 여름방학 즈음이었고 무참히 실패했다.

상상력이 지나치고 겁이 많은 탓에 도로주행 시험에서 탈락했다.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으로 옮겨 타던 순간에 울먹이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이 후로 내 인생에 운전이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서울에서 지내면서 다짐은 현실이 되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만 지루하게 반복하는 인생에 운전면허 같은 건 영원히 없어도 될 것이었다.


그러나 갑상선암 수술을 준비하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서 나는 마지막까지 망설이다가 결국 '차 사기'를 적었다. 정해진 목적지가 아니라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교통수단이 갖고 싶었다. 기차를 예약하고 버스를 예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기분에 따라서 시동만 걸면 출발할 수 있다는 선택지를 인생에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차를 사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면허 따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다시 시작한 운전은 여전히 정말로 무서웠다.

하지만 암수술을 견디고 돌아온 삼십 대의 나는 물렁하던 이십 대의 나와 달랐다.


기능시험에 1회 떨어지고 도로주행도 1회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면허증을 손에 넣었다.


면허를 따기 전에, 시험에 떨어져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운전이 수술보다 더 무섭냐'라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아니다'였다.


면허를 따고 나서 이제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수술보다, 운전보다 더 무서워?"


그러면 대체로 대답은 '아니'다.


수술 후에 가장 달라진 것을 말하라면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준이 확실해졌다. 어떤 도전 앞에서 그것이 수술보다 그리고 운전보다 두렵지 않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내게 수술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 그래서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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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를 쓰면서 수술 후에 지나온 일상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법원에서 온 개명허가 카톡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이 글을 끝까지 쓰면서도 잡힐 듯 말 듯 했던 어떤 마음이 완전히 선명해졌다.

좀 일찍 발견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라는 인간은 늘 무엇인가 다 지나가고 난 후에 겨우 알아차린다.


암도 수술도 그리고 개명까지.

면허를 따고 피아노를 배우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곱씹어보니 알겠다.


마침내 길었던 내 인생의 1부가 끝났다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2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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