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해의 목격자
네번째 좆소는 여행사였다.
그리고 나는 그 곳에서 4년을 일했다.
노동청 앞에서 밍밍한 아이스커피를 마셨던 순간 이 후로 나는 꽤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력서를 넣을 때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회사를 선택했다. 그렇게 입사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고 탈락을 하기도 합격을 하기도 하면서 회사를 골랐다. 회사만 면접자를 판단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덕분이었다.
그리고 네번째 회사에 입사를 결정했다.
단언할 수 있다. 내가 입사를 결정한 순간의 이 회사는 좆소가 아니었다. 회사의 회의실에서 사장과 실무자 2인으로 이루어진 면접을 보았으며 명확한 업무기준과 나의 역할이 있었다. 본사가 동남아에서 현지 호텔과 투어 등을 컨택해 가격을 책정하고 여행 상품을 기획했다. 그 상품을 한국 지사가 판매하는 구조였다. 게다가 한국 지사의 근무인원이 10인이었다. 적어도 당시의 내가 가진 모든 기준을 통과한 회사이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대로변의 큰 오피스 건물에 사무실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마음에 들었다. 직원들이 근무하는 곳과 회의실 그리고 사장실이 따로 있다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통창으로 해가 잘 드는 곳이었다. 한참 모니터만 보며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면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볼 수 있었다.
한 낮에는 형광등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밝았다. 처음으로 회사가 좋았고 일에 열의가 생겼다.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입사하고 석달만에 그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회사란 그저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특별히 퇴사할 만한 사정이 없이 일에 익숙해지며 1년, 2년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지루하다면 지루한, 평범하고 무던하던 나의 회사생활에 균열이 생겼다.
본사에서 감사를 실시했다. 역시나 균열은 예고 없이 일어났다.
그 때는 팀장님 이라고 불렀던, 본사에서 보낸 감사가 등장하던 순간 같은 건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회계 과장님이 엄청나게 바빠졌다는 것과 출근해서 인사를 드려야 할 대상이 회의실에 한 명 더 생겼다는 것 정도.
사실 감사가 시작되기 전에도 일을 하는 동안 무언가 이상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점심시간에 팀장님 과장님들이 지나가듯이 나누는 이야기들로 미루어 보면 회사는 수익이 남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회사의 수익 같은 이야기가 나와 너무 멀어서 와닿지 않았을 뿐이었다.
최저를 간신히 받으며 매년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 만큼밖에 오르지 않는 연봉을 받는 내가 그런 걸 신경쓸 수는 없었다. 그럴 주제도 직급도 아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감사 같은 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꿈은 당장 월급이 십만원 오르는 것이었다.
그 균열이 먼 미래에 나의 안위를 박살 낼거라는 걸 그 때는 몰랐다.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감사가 끝났다. 그리고 감사결과 놀랍게도 사장이 해고 되었다. 횡령이라고 했다. 일개 주임이자 회사의 가장 어린 직원이었던 내가 전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사정이나 상황을 설명해줄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 그렇게 법인이 정리되고 사장이 바뀌었다.
회사의 이름이 바뀌고 사장이 바뀌었지만 내가 하는 일은 비슷했다. 마케팅 팀의 인원이 조금 줄어들고, 이전 사장님과 함께 왔던 직원이 퇴사를 했지만 여전히 회사의 규모는 5인 이상이었다. 바뀐 사장님은 본사의 사장님 친척이라고 했다.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나는 그저 바뀐 사업자를 거래처에 알리고 시스템에 등록을 하는 자잘한 일들이 조금 번거로울 뿐이었다.
시간은 또 천천히 흘러갔다. 변화가 있었지만 회사는 반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매출은 지지부진했고, 파도에 바위가 깎여나가 듯이 회사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팀원이 한 명씩 줄어들던 마케팅팀은 팀장이 퇴사를 함으로써 아예 없어졌다.
그리고 마케팅 팀장의 퇴사를 기점으로 회사는 5인 미만이 되었다. 그 즈음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같은 건물의 더 작은 호실로 사무실이 이사를 했다. 회의실도 대표실도 없었다.
옮긴 사무실은 이 전처럼 해가 잘 들지 않았다. 이제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사무실은 어두컴컴했다. 해가 잘 들지 않으니 어디선가 곰팡이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원룸보다 조금 더 큰 사무실에 책생 4개가 덜렁 놓여 있었다. 정수기 한 대와 냉장칸 하나밖에 없는 냉장고가 전부인 회사로 출근이 이어졌다.
매일 출근을 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했다. 상사는 잘 될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해도 내 연봉은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만 올랐다. 이렇게 계속 다녀도 괜찮은 걸까 밤마다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상사가 해고 되었다.
이제 회사에 남은 사람은 세명 뿐이었다. 사장과 회계과장 그리고 나.
-
업무는 내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아졌다. 두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출근 길에는 항상 이직을 고민했지만 낮에는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나지 않았고 집에 와서는 지친 몸을 누이기에 바빴다. 냄비에 물을 담아 개구리를 넣고 천천히 물의 온도를 올리면 개구리는 물이 끓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그 냄비 속 개구리가 된 것 같았다.
회사는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고 물은 이제 끓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생각과 직접 움직이는 것 사이에는 억만금의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내 생일이었다. 저녁에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쇼핑백 안에는 저녁에 입으려고 따로 챙겨온 원피스가 있었다. 어떻게든 일을 제시간에 마치려고 평소보다 일 찍 출근한 참이었다. 오늘의 목표는 오로지 칼퇴였다. 오랜만에 신난 기분으로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면 항상 비어있던 사무실의 가장 안쪽 책상에 사장님이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얼른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평소에 잘 나오시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나와 계신 것도 처음이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9시가 되어 모든 직원(이라고 해봐야 겨우 두명이지만)이 출근하자 사장님은 공지 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회의실도 없어, 그냥 각자 자리에 앉아있고 사장님이 파티션 너머에 서 계셨다.
"회사는 폐업할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나와 과장이 파티션 너머로 눈을 마주쳤다. 둘 다 놀란 토끼눈이었다. 사장님은 바로 말을 이었다.
"김대리는 다음달 까지 출근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 마무리 하고, 김과장은 폐업신고를 진행해야 하니 그 보다 한달 정도 더 나오면 되겠네요."
그 것이 전부였다.
말을 마치고 사장은 약속이 있다며 그대로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나와 과장은 한 동안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다가 미쳤나봐- 하는 탄식을 뱉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일년 전에 감사가 시작 되었을 때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장이 해고되고 직원이 퇴사하고 법인이 바뀌고 마케팅 팀이 와해되었다. 조직은 하나씩 천천히 해체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아 끝까지 남아 있었고 모든 조직이 와해되고 끝내 사라지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먼저 행동하지 못했다. 그 뿐이었다.
회사의 경영 악화로 인한 퍠업과 직원 해고. 어떠한 문제도 없는 깔끔한 해고였다. 사장이 공표한 마지막 출근일까지 남은 한달 반. 나는 그 안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자리에 앉아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편두통으로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눈 앞이 캄캄했다.
네번 째 좆소에서 해고 되었고
또 다시 구직을 시작해야 했다.
서른 두번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