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불망기 04

밍밍한 승리의 맛

by 문정

세 번째 좆소는 아르바이트로 근무했던 출판사다.


고향에서는 취직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이불 한 채와 캐리어 한 개를 끌고 상경했다. 막 대학을 졸업한 동생과 원룸에 함께 살면서 이력서를 넣었고, 그러다 우연히 출판사의 마케팅 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였지만 9시부터 1시까지 마케팅 팀으로 주 5일을 출근했다. 내가 했던 일은 당시 출판사가 운영하던 온라인 카페관리였다. 수십 개의 아이디와 비번으로 1인 다역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소위 다중이 짓을 하며 카페가 활성화되어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출판사 직원들의 명의로 만든 아이디를 돌려가며 나 혼자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고 일상글을 쓰고 댓글을 다는 식이었다. 회사에는 나와 함께 각 각 10여 명의 아이디로 돌아가며 활동하는 여러 알바들이 있었다. 교대 근무였지만, 오며 가며 마주치는 순간과 내가 쓴 글에 그 친구가 댓글을 달고 하는 방식으로 내적 친밀감을 쌓아온 상태였다.


그리고 그렇게 6개월쯤 일했을까, 여느 날처럼 출근해서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대표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니 오늘까지만 일하고 그만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나와 알바들이 1인 다역을 열심히 해도 카페에는 신규 유입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알바들은 모두 막연하게 우리의 일이 곧 끝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즈음 일상 게시판에는 돈을 아끼려고 도시락 싸왔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끝을 직감했으니 나도 본격적으로 면접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막연하던 끝이 당장 오늘이 될지는 몰랐다. 서울에 올라와 월세가 나가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는 내게도 생계였다.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대표의 말이 횡설수설하며 길어졌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대신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혼자 자기 전에 몰래 연습해 보기도 했던 그 말을 되뇌고 있었다. 오늘이 그리고 지금이 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술을 몇 번이나 깨물다가 결국 그 말을 뱉었다.


"갑자기 오늘까지만 하라고 하시는 건 부당해고 아닌가요? 그리고 주휴수당 계산해 주세요."


그날 합정역의 어느 출판사의 대표실에 쏟아지던 환한 햇살을 기억한다. 차마 대표의 얼굴을 보고 말할 수가 없어서 대표의 어깨에 부서지는 환한 햇살을 쳐다보면서 말했기 때문이었다. 반짝이는 소재의 비싸 보이는 양복 위로 떨어지던 반짝이는 햇살과 다르게 덜덜 떨리는 내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대표가 대답했다.


"알아보고 연락 줄게."


떨리는 손 끝을 감추려 두 손을 맞잡고 최선을 다해 단단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내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짐은 말씀하신 대로 오늘 챙겨서 나가겠습니다. 확인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대표는 말도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시작했으니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여전히 벌벌 떨리는 두 손을 맞잡고 나는 더 힘주어 마짐가 말을 했다.


"금요일까지 연락 없으시면 저도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그 말을 끝내고 대표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도망치듯이 대표실을 빠져나왔으므로.


-


그 보다 핸드폰을 더 열심히 쳐다본 일주일은 내 인생에 다시없을 것 같았다. 아무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약속했던 마지막 날, 나는 당시 아르바이트한 곳의 관할 노동청 바로 옆의 카페에 앉아있었다. 한 잔에 사천오백 원이나 하는 커피를 시켜서 눈에 들어도지 않는 책을 읽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네시였다. 5시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대로 노동청에 가서 신고서를 작성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십 분쯤 지났을 까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회사의 회계팀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1분마다 휴대폰을 확인하던 내가 그 문자를 놓쳤을 리 없다. 화면에 문자 표시가 뜨자마자 확인 버튼을 눌렀다. 문자에는 그동안의 주휴수당과 해고예고수당의 내역이 쓰여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은행 어플에 로그인해 금액을 확인해 보았다. 문자의 내역과 정확히 일치하는 금액이 회사의 이름으로 입금되어 있었다. 가만히 화면 속의 숫자를 몇 번이나 헤아려 보았다. 당시의 내 기준으로는 꽤 큰돈이었다. 신이 나기도 허무하기도 했다. 영혼의 조각까지 그러모아 용기를 냈는데 내가 받은 것은 결국 그 정도의 돈이었다. 대표로부터든 회사로부터든 나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


얼마의 금액과 그 내역 몇 글자가 적힌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서 나는 다 녹아버린 아이스커피를 단 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짐을 챙겨 카페에서 일어났다. 얼음이 모두 녹아 밍밍해져 버린 커피의 끝 맛인지 어딘가 씁쓸하고 헛헛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빈 잔과 트레이를 반납하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살던 월세집에서 노동청까지는 도보로 40분쯤 걸랐다.


나는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일을 하고 해고를 당했음에도, 이 전과 다르게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내 권리를 제대로 챙겼다. 오늘만큼은 내가 이겼다고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무엇인가 허망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공용 화장실 세면대에서 설거지를 했던 첫 번째 좇소와 기분이 더러웠으나 차마 그만하라고 말은 하지 못했던 두 번째 좆소 사장과 함께 있었던 차 안의 공기가 스쳐갔다. 그 기억들이 몸 어딘가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걷고 있는 다리와 흔들리며 균형을 잡고 있는 팔, 어쩌면 몸통인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짚을 수 없는 몸의 어가로 찬 바람이 들고 마디가 시렸다.


의무 교육은 다 받고 심지어 대학까지 졸업했음에도 첫 좆소부터 세 번째 알바까지 해고 직전까지 겪었던 부당한 일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또 내가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지도 몰랐다.


첫번째 좆소가 5인 미만 사업장이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법의 적용범위 바깥에 있는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합리에 대해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도 당연히 몰랐다. 두 번째 좆소에서는 상사의 성희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며칠을 다녔든 고용되었다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했던 것들에 대해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나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조차 몰랐다.


몰랐기 때문에 나는 부당함을 겪었음에도 그것이 내 탓인 줄 알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으레 이 정도의 일은 모두 겪고 참으며 다니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근로기준 법이라는 최소한의 장치 바깥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고, 그런 회사는 입사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직접 겪고 난 이후였다.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기 위한 절차가 있고 직원에게 해야 할 보상이 있다는 것도 두 번째 좆소에서 몸소 겪고 나서야 알았다. 그 모든 부당함을 직접 겪고 세 번째 좆소에서 겨우 내 권리를 알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걷고 걸어 여섯 평 월세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여섯 평, 아침에 널어 둔 빨래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신발장에 주저앉아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서 스스로 배웠고, 세 번째 좆소에서 처음으로 내가 나를 지켜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을 뿐이지 이 것을 승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또다시 세상은 불의타를 날렸다. 나는 또 직장과 생계 잃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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