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불망기 02

법의 바깥에서

by 문정

첫 회사는 학교 취업처의 소개로 입사한 물류 회사였다. 그때의 나는 사회생활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세 살이었다.


첫 번째 회사에 대해 생각하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애매한 조명의 어두침침한 복도가 떠오른다. 오피스나 상가 건물이라기보다는 오래된 학교 같았다. 엘리베이터 없는 3층 건물의 복도에는 형광등이 하나 건너 하나씩 켜져 있었다.


밝다기엔 어둡고 컴컴하다기엔 밝은, 흐릿하고 희미한 그 건물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와 비슷한 규모의 사무실들이 더러 있었다. 경비 절감을 위해 일부러 드문드문 켜둔 형광등처럼 사무실들도 건물에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손을 많이 타 반질반질하게 닳은 손잡이를 잠시간 바라보았다. 꼭 문을 열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도망칠 이유도 없었다. 손잡이를 쥐고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었다. 도망칠 이유가 없다면 문을 열어야 했다.


"출근해야지."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사장님을 대신해 그가 손으로 작성한 문서를 엑셀과 워드로 작업하는 것이었다. 물류차량의 배차 일정과 실제 입고 시간 등을 정리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전날 배차된 물류차량들이 당일 일정에 맞게 움직이고 있는지 중간중간 기사들의 위치와 일정을 체크해서 문서로 작성해 보고했다.


그 외에도 각종 서류들을 주고받아 컴퓨터에 정리했다. 전자계산서를 인쇄해 따로 모아두거나 물류의 인수증 같은 것들을 메일로 받아 인쇄해 파일철을 해두는 등의 잔일이었다. 회사의 직원이라고는 10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던 회계 부장님 한 명과 내가 전부였다. 사장님 포함해서 도합 3명으로 이루어진 5인 미만 사업장.


그때의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오래되고 허름한 상가 건물의 한편에서 나의 첫 번째 사회생활이 계속되었다. 업무나 다른 부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한데 다른 몇 가지 선명한 기억들이 있다. 점심식사가 그중 하나다.


도시의 외곽인 데다가 쇠퇴해 가는 상가단지 근처에는 식당이라고 할만한 곳이 몇 군데 없었다. 그래서인지 건물 내의 다른 사무실의 직원들은 도시락을 주로 싸 오는 듯했다. 날씨가 좋으면 상가 건물 밖의 공터나 벤치에서 홀로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어두침침한 건물 안에서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봄날의 햇살을 바라보던 시간들이었다. 우리 회사는 점심을 사무실에서 해결했다. 반찬은 배달되었고 밥은 사무실 한 구석에 있는 전기밥솥으로 했다. 회계부장님이 밥을 지었고 나는 식사를 마친 후에 설거지를 맡았다.


낡은 학교 같은 그 건물에는 층마다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은 입구에 별도의 문이 없어서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였다. 그 구조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복도에서 안쪽이 들여다보이는 것도, 낡고 부식되어 덜그럭 거리는 화장실 칸의 잠금쇠도 모두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화장실 세면대에서 누가 지나갈까 긴장한 채로 설거지를 했다. 겨우 밥그릇 세게 와 수저 세벌을 씻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싫었다. 사실 건물 입주사의 누가 지나가면서 본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상하게 설거지를 할 때면 복도를 오가는 발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졸업을 하고 얼마 안 되었을 시점이었다. 대학 동기들은 대기업과 공기업에 취직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들의 사원증이 매일같이 페북에 업데이트되었다.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고서 설거지를 하기 위해 물을 틀었다. 수도꼬지에서는 찬물이 졸졸 흘러나왔다. 찬 물에 수저를 씻으며 혼잣말을 했다.


"겨울에는 못하겠는데."


말을 하다가 히죽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겨울은 아직도 한참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것은 어쩌면 예고편이나 예언 같은 것이었을까? 나는 그 해의 겨울을 지나 꼬박 10년의 좆소 생활 내내 설거지를 했다.


-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일적으로 힘든 것은 많지 않았다. 물류 기사들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투박한 기세가 무섭긴 했지만, 그 들이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들은 사무실에 떠도는 불쾌한 공기였다.


그러니까 나와 회계부장님이 일하는 동안 뒤에 앉아있던 사장의 스마트 폰에서 크게 울려버린 야동의 신음 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래서 이런 조작 실수는 일주일이면 한 두 번씩 꼭 발생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씩 작성한 서류를 검토받고 물류 차량들의 이동 현황을 보고 하기 위해 사장의 자리로 가면 버젓이 켜져 있는 휴대폰 화면에는 헐벗은 여자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정말로 단순히 실수였을까.


그때의 나는 그런 것을 마주칠 때마다 너무 놀라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모르는 척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척하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 나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인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반복되는 실수가 꽤나 이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리고 퇴근을 한 후에도 그런 것들을 어디다 이야기해야 하는 지조차 몰랐다. 부모님께 이야기하기에도 민망하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에서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구도 내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먹고사는 것은 힘들고 불편을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사회생활인 줄 알았다.


겨울을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덜컹덜컹 이어지던 첫 번째 사회생활의 끝이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일을 시작한 지 삼 개월쯤 지났을까? 여름 어느 날, 사장이 이달 말일까지만 영업하고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이사날짜 까지는 2주가 채 남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이사 발표 이 후로도 출근하고 업무하고 퇴근하는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어느덧 마지막주 금요일이 되었다. 그날은 출근해서 사무실의 이삿짐을 쌌다. 서류들을 정리해서 박스에 따로 챙기고 책상과 의자를 비롯해 밥솥과 밥그릇들도 씻어 먼지를 닦아 한쪽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사무실의 빈 공간들을 청소했다. 퇴근시간이 되어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감사했고 번창하시라는 부모님이 아침에 알려주신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사장이 말했다.


"너는 일요일에 와서 짐 나르는 것 좀 도와"


짐을 나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내가 듣기에도 그것은 이상한 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이 나의 출근 마지막 날이고, 새로운 회사에서 내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사를 왜 도와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대답 없이 한참 망설이고 있자 사장이 재촉을 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빠한테 여쭤보고 전화드릴게요."

"하........"


사장은 기가 찬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머리를 굴려보았다. 마지막 근무일의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그는 아직도 고용주가 맞는 걸까. 만약 일요일에 이삿짐을 나르러 나온다면, 퇴사기념으로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그 약속은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나오겠다고 해야 하나 고민의 실타래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됐다 됐어. 나오지 마."


그 말에 나는 얼른 허리를 숙였다. 아빠가 알려준 대로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번창하세요."


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는 내 뒤통수에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것들이란. 쯧쯧."


'불의타'라는 말이 있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라는 뜻이다. 그 말 그대로 나는 불의의 순간에 첫 좆소에서 해고되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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