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불망기 03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by 문정


두 번째 좆소는 영세한 지역 잡지사였다.


면접을 보고 출근을 확정했지만 동시에 약간의 불안을 감지했다. 첫째로 회사가 아닌 근처 카페에서 면접을 보았다는 점이 이상했고, 둘째로 면접을 보는 내내 정확히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회사에서 해고당한 이 후로 시간이 꽤 흘러있었다. 집에서 백수로 지내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쉽게 말하면 찬 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장황했던 면접의 대화를 바탕으로 추측건대 내가 맡을 업무는 회계의 영수증 처리를 돕는 동시에 사장 일정을 조율하는 비서 업무를 겸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경영지원 정도의 업무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는 애매한 말과 함께 출근일정을 잡았다.


첫 출근날, 회사의 분위기가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느꼈다. 8명 정도 되는 직원이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적어도 첫 번째 회사보다는 인원이 많으니 제발 평범한 회사이길 바라며 희망을 가졌다.


사무실 이곳저곳을 혼자 돌아다니며 편집팀과 인쇄팀에 인사를 했다.


"오늘부터 함께 근무하게 된 문정입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여기저기 사무실을 돌아다니다가 깨달았다. 모든 직원이 20-30대 여성이라는 것을. 막연히 느꼈던 일반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이 것 때문일까? 궁금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사장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젊은 여성이라는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그것이 불법인가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오전에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컴퓨터와 자리를 배정받았다. 따로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자리였다. 가지고 다니던 물티슈로 책상과 자리를 정리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른 팀은 팀원들끼리 식사를 가고, 나는 혼자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오후에도 별다른 업무 없이 사무실에서 그동안 발간된 잡지들을 살펴보고 컴퓨터로 인터넷을 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둘째 날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하면서 사람들의 업무 하는 모습을 힐끔 거리고 있었다. 도울 일이 없겠냐고 물었지만 지금은 도와줄 만한 일이 없으니 후에 일이 생기면 알려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혼자 밥을 먹어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사장이 출근하더니 취재를 가야 한다며 내게 동행을 명령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일 없이 사무실에서 멀뚱 거리며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취재 위치는 사장의 차로 20여분 거리를 이동한다고 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차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엄마아빠와 차를 타면 나는 항상 뒷자리였으니까. 그리고 사장이 말했다.


"넌 사회상활 안 해 봤니?"


놀라서 문을 열던 채로 굳어있자 사장이 뒤이어 말했다.


"사장이 운전하면 넌 조수석에 타야지."

"아, 네네"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며 황급히 조수석에 올랐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나는 긴장 상태였다. 차에 타자마자 시작된, 사장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결코 질이 좋지 않은 것 같은 농담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반응을 해주고 싶지 않아서 들리지 않는 척 외면하고 앞만 바라보았다. 이동하는 이십 분 동안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다. 질 낮은 농담에 내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자 사장은 몇 번 고개를 틀어 내 쪽을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짜증 섞인 욕을 뱉어가며 운전을 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천변의 어느 식당에 도착했다. 사장은 점심을 먹고 근처 정류장에 내려 줄 테니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돌아가라고 했다.


어디인지도 분명치 않은 곳에서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네시였다. 다른 직원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구석에 홀로 앉아 텅 빈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방치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오히려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았다.


인터넷 창을 켜고 무의미하게 이 것 저 것을 클릭하며 아까의 상황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이 회사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퇴사를 결정하는 것은 쉬웠는데 퇴사 사유를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사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내내 이유를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나의 기분과 막연한 분위기뿐이었다. 고민을 거듭해 만들어낸 그럴듯한 핑계는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였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섯 시가 되었다. 백번도 더 넘게 입 안으로 되뇌었던 퇴사사유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되뇌고서 사장실 문 앞에 섰다. 이 번에는 도망칠 이유가 분명했다. 동그란 손잡이를 돌렸다.


"정말 죄송한데 저는 오늘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겠습니다."

"어 그렇게 해. "


몇 시간을 고민했던 핑계를 채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사장은 그러라고 했다. 조금 놀라서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사장을 보았다. 심드렁한 얼굴에는 진작 이럴 줄 알았다는 것 같은 표정이 있었다.


"이틀 치 일당은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네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죄송하다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길게 늘어선 퇴근 차량들을 보았다.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어 정거장을 더 지나치자 집에서 십오 분쯤 먼, 익숙한 듯 낯선 공원이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먼 하늘을 보았다. 초겨울의 퇴근시간,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거의 다 사라지고 주황색 끄트머리만 조금 남아있었다. 공원의 미끄럼틀과 그네가 희미하게 보였다. 희끄무레한 어둠 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엉엉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지금도 그때 차 안에서 들었던 정확한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의미를 알지 못해도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당한 것은 아마도 희롱이었을 것이다.


그날 공원에서 눈물을 쏟으며 생각했다. 세상에는 좆소가 매우 많다는 것과 좆소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또 다짐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 혼자라도 배워야겠다고.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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