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밑에 그것이 있었다.
다섯 번째 좆소는 전혀 다른 업계의 회사였다.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창궐했고, 여행업계는 풍비박산 일보 직전이었다.
경력은 리셋되었으며 나는 다시 신입이 되었다.
좆소 경력만 도합 4년의 신입이었고, 다섯 번째 회사를 4년간 다녔다.
비록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경력이 있으니, 나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회사를 골랐다. 덕분에 사소한 불합리는 있어도 이 전처럼 막돼먹은 회사를 다니지는 않았다.
스물세 살에 첫 입사를 한 이후로 꼬박 8년째 설거지를 하고 있었지만 이런 것을 불합리라고 볼 수는 없었다. 볼펜과 수정테이프 같은 사무용품이 항상 부족해서 개인의 것을 사용했지만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사장과 사모의 개인일정 기차표를 예매해 주거나 비행기 표 예약을 해주는 일도 있었지만 나이 드신 분들을 돕는 일 정도라고 여기며 넘어갔다. 적어도 내게 위해를 가하거나 완전히 불법적인 일을 시키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이 회사를 좆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다섯 번째 좆소가 되었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회사에 다닌 지 3년이 넘었을 때, 그러니까 세 번째 연봉 동결을 앞두었음에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회사라고 성실한 노예적 마인드로 위안을 삼고 있던 때였다. 그날도 평범한 평일이었다. 창 밖에는 눈이 날렸고 나는 사무실에 하나뿐인 수정테이프가 책상 뒤로 넘어가 그것을 찾고 있었다.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먼지를 헤치던 중이었고, 그러다 다른 것을 찾았다.
서랍장 뒤, 책상의 가장 깊은 모서리에 무엇인가가 붙어 있었다. 노란 종이에 붉은 경면주사가 지렁이처럼 구불거렸다. 부적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수년 전에 면접장에서 받았던 질문이 스쳐갔다. '생일을 음력으로 말해주겠어요?', '혹시 몇 시에 태어났는지도 알고 있나요?' 하는 질문이었다. 다른 어떤 면접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는 질문이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물쭈물 대략 아침 무렵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책상 아래 몸을 구긴 채로 그 부적을 빤히 바라보다가 서랍장을 제 자리로 집어넣고 자리에 앉아 숨을 골랐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기업들의 면접에 관상쟁이가 들어가고 스님과 무당이 OTT에 나오슨 세상 아닌가. 미신과 무속신앙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래 이럴 수도 있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달랬다.
결국 수정테이프는 찾지 못하고 며칠이 지났다. 연초였고 대표의 연말정산 서류가 회사 공용 메일로 들어왔다. 혹시 놓친 업무가 있을까, 메일들을 하나씩 확인하다가 파일을 열었다. 이름 모를 절에 기부금이 수백 잡혀 있었다. 며칠 전에 보았던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새빨간 글씨들이 눈앞에서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2년째 연봉 동결이었고, 3번째 연봉동결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 지난달에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했었다. 회사가 어렵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그에게, 3년째 동결되면 이제 정말 최저나 다름없는 연봉이라고 어필했다. 연봉 백만 원 인상.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다. 그리고 거절당했다.
연말 정산에 쓰인 절의 이름은 네이버에 찾아도 주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직원들의 백만 원 연봉 인상은 절대 안 될 만큼 회사 사정이 어려운데, 부적 값으로 의심되는 기부금은 오백만 원이 쓰여있었다.
부당한 것 같았지만 그냥 잊으려고 했던 많은 것들이 스쳐갔다. 지난 시간 동안 경기가 어렵고 회사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두 번이나 직원들의 연봉을 동결했다. 생일에 주던 케이크 기프티콘이 없어졌고, 명절 상여가 사라졌다. 탕비실에는 대표가 집에서 가져온,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살짝 지난 과자들이 굴러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대표는 결혼하는 아들의 집을 사줬고, 본인의 별장을 지었다. 직원들의 연봉이 두 번째 동결될 때도 대표 와이프는 예외였다. 그 해 대표의 와이프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전부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피고용인이고, 고용주가 결정한 일에는 그 들의 사정이 있을 터였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 안의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외쳤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겠어?'
나는 그 목소리를 외면했다. 이미 이렇게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적어도 회사에서 누가 내게 소리 지르거나 때리지는 않았다. 아. 생각해 보니 소리를 지르기는 했다. 그래도 맞지는 않았으니까 이만하면 악덕이나 블랙기업은 아니고, 다닐만한 회사라고 생각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간식도 그러려니 했다. 부적 정도야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책상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이 영 걸렸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나는 다른 직원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책상밑에 부적이 붙어있어요."
다음날 아침. 사장의 가족을 제외하고 또래의 직원 몇이 반신반의하며 일찍 모였다. 그리고 각자 서랍장을 끌어내고 책상 밑을 뒤졌다. 우리는 경악했다. 각자 자리의 책상 아래, 서랍장 뒤에 붙은 그것을 말없이 쳐다만 보았다. 놀랍게도 그날 모인 직원 모두의 책상 밑에 부적이 붙어있었다. 심지어 모양이 각각 달랐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사장의 가족이 일하는 자리를 살폈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빼낸 서럽을 원상복귀 시키고 굴러 나온 먼지들을 정리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직원들은 모두 말없이 자리에 앉아 빈 모니터를 바라보거나 휴대폰을 보았다. 내 안의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정말 이렇게 계속 살 수 있겠어?'
-
그날. 발치에 붙은 부적의 꺼림칙함을 느끼면서 업무가 시작하는 9시까지 가만히 앉아있던 이십여분의 공기는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부적이 있다는 내 말에 '에이 설마요.' 하고 웃었던 것이 전생처럼 희미했다.
세상에는 그런 순간을 표현하는 많은 단어들이 있다. 임계점을 넘었다거나, 강을 건넜다거나 하는 말들. 나는 그 순간이 어떤 신의 계시나 신탁을 받은 것 같다고 느꼈다. 내 안에 다른 목소리가 전과 다르게 아주 힘 있게 외쳤다.
'정말 이렇게 계속 살아야겠어?'
부장과 이사와 사장이 순서대로 출근했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업무를 했다. 시간은 잘 흘렀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한 나는 노트북을 켰다. 행동하지 못하고 목격자가 되는 것은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했다. 구인 사이트와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부적에 쓰여있던 붉은색 글자들이 춤을 추 듯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부적을 쓴 사장의 소원은 모르겠으나, 그 부적을 타고 내게 내려온 신탁은 알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오랜만에 접속한 구인사이트의 아이디 비번이 잘 기억나지 않아 두 번을 틀리고 세 번째에 간신히 로그인을 했다. 나의 설정에서 이력서를 클릭했다.
한참 전에 시간이 멈춰있는 경력 란을 지나 우선 연봉 칸에 마우스를 멈췄다.
심장이 튀어 나올 것 처럼 두근거렸다. 그러나 나는 신의 계시에 응답해야만 했다.
'더는 못 하겠어.'
내 안의 아주 작은 목소리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나는 큰 용기를 내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희망연봉에 딱 천만 원을 높여 적었다.
망설이다가 마우스를 쥐었고 저장 버튼을 클릭했다.
'정말 더는 못하겠어.'
내 안의 목소리가 좀 더 크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