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불망기 10

C73

by 문정

수술을 결정한 후에 회사에 돌아가자마자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수술까지는 두 달이 남아있었고, 사람을 새로 뽑아 인수인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위로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겪어온 시간이 있는데 그럴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리액션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퇴사를 하겠다고 한 이 후로 두 번째 면담이었다. 회의실에서 상사는 테이블에 볼펜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다며 말을 꺼냈다.


"진짜 암이야?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이미 여러 번 들은 질문이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맞다고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잖아요."

"퇴사하려고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잖아."


허탈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사람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했다는 사실조차도 화가 났다. 겨우 이 정도로 나를 대하는 상사에게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그래 이 건 대단한 분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짜증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강보험공단에 로그인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상사의 눈앞에 내밀었다. 화면에는 중증산정특례 등록 내역이 쓰여 있었다. 내 이름과 그 아래 질병코드가 쓰여 있었다.


C73 갑상선의 악성신생물.


상사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사과대신 말했다.


"갑상선암 그거 별 거 아니니까 일주일 정도면 되겠지?"


이성이 끊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대답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했다. 내가 회사에서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니면 내 이마에 어떤 표식이라도 새겨져 있는 것일까? 좆소는 어떻게 나를 알아보는 걸까? 하는 생각들.


"생각해 보고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나가봐."


대답하지 않는 나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고 느꼈는지 그날의 면담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그 이후로도 퇴사 면담은 몇 차례 더 진행되었다. 그 모든 면담에서 나는 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좆소는 어째서 항상 나를 하찮게 대할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끝없이 내 안을 맴돌았다. 벌써 여섯 번째 좆소였다. 한두 번은 우연일 수 있겠으나 여섯 번째 반복되는 이 굴레에 내 탓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일주일의 무급 휴가를 제안했던 회사는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나의 거절에 마지막으로 한 달의 무급 휴가를 제안했다.


갑상선암의 일반적인 회복기는 3주에서 4주라고 했다. 만약 처음부터 회사가 내게 이 제안을 했더라면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좆소라고 느끼고 있었으나 이미 일은 익숙해져 있었고 이후의 재취업 역시 내게는 부담이었으니까. 회사가 나를 잡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였던 것처럼 나도 회사에 남는 것이 간편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이 제안까지 나는 너무 많은 꼴을 보았고, 너무 많은 무례를 겪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제안을 거절하고 사직서를 올림으로서 퇴사 면담은 마무리되었다. 이 후로 더 이상의 이슈 없이 후임자가 구해졌으며 인수인계를 마쳤다. 지난했던 과정에 비해 결말은 깔끔했다. 그러나 오래도록 저 질문은 내 안에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자의로 한, 나의 두 번째 퇴사였다.


-


수술은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다. 3박 4일의 입원과 2주가량의 요양 및 회복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외과 진료를 보았다. 수술 당시에도 확인했으나 검사 결과와 동일하게 전이는 없었으며, 결절이 있었던 왼쪽 갑상선과 임파선이 깨끗하게 제거되었다. 그리고 왼쪽 갑상선에서 제거된 결절은 조직검사 결과 암이 맞았다. 병원이 발행한 조직검사지를 통해 나의 병명이 확정되었다.


갑상선 유두암.


그 여섯 글자를 의사에게서 듣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암일지 아닐지 확실히 알 수 없을 때도, 전이되었을까 봐 걱정하던 때도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불확실성이었다. 오히려 확실히 암이라고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깨끗이 제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제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몇 년간은 6개월마다 피검사를 받아야 하고 언제든 호르몬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바로 약을 먹어야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위험이었다. 갑상선 암으로 인한 반절제의 경우, 남은 반쪽에서도 암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니 1년마다 초음파 검사를 받고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그 역시도 몸에 자라고 있는 것이 암세포일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에 비하면 확실하고 관리 가능한 위험이었다.


병원을 나서자 한 여름의 폭염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고개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조금 부자연스럽고 또 유난히 느리게 걸어야 했지만 나는 두 번째 해방감을 느꼈다. 이 것은 전에 느꼈던 첫 번째 해방감과는 완전히 달랐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신감을 느꼈다.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종류의 자신감은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두려움의 역치가 높아졌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두려운 게 많았다. 당장 재취업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었고, 또 좆소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수술실에 누워 이름과 나이, 수술부위를 확인하던 그 순간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마취가 시작되고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생각하던 순간의 두려움에 비할 수는 없었다. 회복실에서 깨어나 마취와 진통제의 영향으로 몽롱한 와중에도 선명하고 날카롭게 느껴지던 고통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적어도 세상에서 마주칠 고통 중에서 내가 병원에서 겪었던 것보다 더한 고통이나 두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문득 퇴사 면담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 질문이 떠올랐다. 좆소는 어째서 나를 늘 하찮게 대했을까?


정답을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지적받을까 두려워하고 해고될까 겁낸다는 것을 좆소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들이 유난히 똑똑해서 나를 알아본 것이 아니었다. 그토록 알고 싶었던 고리를 끊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좆소가 두렵지 않았다.



수술 후 3주가 지나자,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어졌다. 나는 당장 근처의 작명원을 알아보았다. 병원에서 이름이 불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름에는 잘못이 없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있는 내내 생각했다. 상사가 하루에 열두 번씩 불러대며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그 이름에서 벗어나겠다고.


다행히 집 근처에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의 예명을 지었다는 작명원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 두 곳에 작명 의뢰를 하고 몇 개의 이름들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랐다.


널리 햇빛이 비추고 그 안에서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바로 법원에 개명신청을 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개명은 다시 살아난 나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여름의 끄트머리, 마침내 법원이 나의 개명을 허가했다.


모든 신호가 내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인생이 책이라면 이제 두 번째 장이 시작 될 타이밍이었다.


구직 사이트에 로그인하고 새 이름을 다시 썼다.

새로 찍은 증명사진을 업로드하고 경력을 천천히 고쳐 썼다.


더 이상 무례를 참지도, 부당함이나 초라함을 견디지도 않을 것이다.


이력서를 고치면서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나를 하찮게 여기는 곳에 가지 않겠다고.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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