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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사는 투칸 Sep 29. 2021

코로나 시국을 살아가는 임산부와 백신(1)

일본에서 스웨덴 남자랑 애 낳고 기르는 이야기

사실 임신 전부터 코로나는 창궐한 상태였고, 나는 내가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난 뒤에 임신할 거라 근거 없이 굳게 믿고 있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내 맘대로 되는 일이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백신 미접종 상태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타이밍은 일본에서 1000명 이상 종업원이 근무하는 사업장에 대해 모더나 백신을 우선 지급하기로 결정했고(職域接種) 내가 다니는 회사 역시 그 지급 대상에 해당했기 때문에 인사팀에서 접종 신청을 받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일본에서도 임산부에 대한 백신 접종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라 회사에서는 임산부는 접종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고, 나는 접종을 원할 경우 지자체 접종이 개시되고서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요코하마시의 접종은 고위험군과 고령자 위주로 진행 중이라 최하위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기저질환 없음+20~30대’ 그룹인 나는 언제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의 상사는 나보다 앞서 임신 출산을 겪은 선배로서 임산부 배려를 잘해주는 이라, 임신 사실을 알게  후로는 계속 재택근무를   있었고, 스웨덴 남자는 교육직 종사자였기 때문에 접종 우선순위가 높은 편이어서 진작에 접종을 완료했다는 .


그러나 스웨덴 남자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 이상은 감염 혹은 전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남은 임신기간이 구만리처럼 남은 마당에 외부와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고 칩거만 할 자신은 도무지 없었기 때문에(당장 산부인과 검진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했다) 나는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 걱정스러운 한편으로 내심 접종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9주 차 검진에 간 김에 의사 선생님께 코로나 백신 접종에 대해 질의응답을 했다.

※이하 내용은 해당 전문의의 개인적 의견임을 밝힌다.


Q1. 임산부가 코로나 백신을 맞아도 문제가 없을까?

현재까지 임산부가 백신으로 인해 유산/조산을 경험했다는 데이터는 없다. 오히려 임산부의 경우 면역이 약해서 감염 시 중증화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맞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물론 접종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다.


Q2. 아직 초기인데, 중기 이후에 맞는 게 좋을까?

주수 상관없이 맞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임신 중에는 워낙 예측 불가한 이벤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만에 하나의 일이 발생했을 때 초기라서 위험하고 중기라서 덜 위험한 것은 없다. 오히려 중기 이후의 경우 태반이 다 형성된 상태라 출혈이 발생하면 산모가 더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접종 주수를 따지는 데는 딱히 의미는 없다고 본다.




산부인과에서는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지만 어쨌든 접종 순서가 나한테까지 돌아오려면 적어도 한 달 반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 진득하게 고민을 해보자는 맘으로 북미 임산부들의 접종 후기와, 임산부 접종에 대한 논문을 찾아보던 중, 반드시 접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치바현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자택 요양 중이던 임신 8개월 산모가 조기진통이 왔음에도 감염자라는 이유로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자택에서 분만을 했고, 결국 아이를 살리지 못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이 일은 한국에서도 크게 보도가 되었고,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의 어깨에는 근심 걱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임산부와 파트너의 접종 우선순위를 높이는 지자체가 늘기 시작했고, 요코하마시 역시도 임산부의 접종 우선순위를 올려서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사건 이전부터 일본 산부인과 학회의 스탠스는 ‘임산부도 코로나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주저하는 임산부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일본인 지인분의 며느리가 임신 중이고 9월 출산 예정이었는데, 그녀는 접종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임산부들 사이에서 만약 코로나에 걸린 상태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그땐 정말 손 쓸 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퍼져나갔고, 일본 산부인과 학회의 스탠스도 ‘임산부도 코로나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에서 ‘임산부의 코로나 백신 접종을 권장한다’로 바뀌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대세는 대부분의 임산부가 백신 접종을 하는 흐름으로 전환이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실제적인 위기감에 몸을 떨며 백신 예약을 시도하는 임산부1 이 되었으나, 요코하마시의 백신 접종 예약사이트는 학부 시절 나를 매 학기 화나게 한 수강신청 사이트보다도 유리알 같은 서버를 자랑했다. 여기선 도무지 답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필사적으로 잔여 백신을 찾기 시작했고,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폭풍 검색과 새로고침에 투자한 끝에 집 근처 병원에서 화이자 접종을 예약할 수 있었다.


산부인과 검진에 다녀오는 지하철 안에서 예약을 성공해낸 나는 환호를 내뱉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이 날 나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미리 처방받아 오는 길이었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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