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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사는 투칸 Sep 27. 2021

웰컴 투 입덧 지옥

일본에서 스웨덴 남자랑 애 낳고 기르는 이야기

6주의 치통 쇼크가 지난 7주 차. 여느 때처럼 저녁을 잘 챙겨 먹고 잘 준비를 하는데 명치가 꽉 막힌 게 탁 얹힌 느낌이 들었다. 왜인지 처음에는 그게 입덧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과식한 탓이려니 하며 콜라 한 잔을 원샷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그 증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뭘 먹어도 체한 것 같은 상태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게 온 것이다. 입덧이었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입덧이라고 하면 밥상머리에 앉은 산모가 ‘욱!’ 하고 입을 가리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그런 가련하고 여리여리한 모습의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밤새 4차까지 달리고 술기운이 덜 빠진 상태에서 아침에 고속버스를 탄 술꾼의 몰골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 친정 엄마는 입덧계의 식빵 언니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하드 한 입덧을 겪으셨는데, 먹은 것 없이 위액을 토하다 피를 토하고, 응급실에 실려가 수액을 맞으면서 토하고, 분만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토했다고 하는 입덧 전설을 여럿 보유하신 분이다. 그래서 엄마는 늘 네가 애를 가지면 나를 닮아 입덧이 심할까 걱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다행히 나는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서술한 대로 ‘밤새 4차까지 달리고 아침에 고속버스를 탄’ 느낌을 24시간 겪어야만 했다.




입덧을 몸소 체험하면서야 입덧에도 종류가 아주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일단 맘카페식 분류에 의하면 크게 3가지 정도로 묶을 수 있다


토덧 : 구토가 메인인 입덧

체덧 : 체한 기분이 지속되는 입덧(<내가 바로 이 체덧을 겪었다)

먹덧 : 속이 비면 구토감이 느껴져서 계속 뭔가를 먹어야 하는 입덧


이 외에도 양치를 할 때마다 구토감이 드는 양치덧, 끊임없이 쓴 침이 올라와서 계속 뱉어야 하는 침덧, 냄새에 극도로 예민해져서 불쾌감 혹은 구토감을 느끼는 냄새덧 등등이 있으나, 이들 중 하나만 겪지는 않고 대체로 복합적으로 오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결론.


나는 체덧 베이스에 가끔 양치덧이 있었던 정도인데, 토하기는 극도로 싫었기 때문에 애써 구토를 참았다.(사실 구토를 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나은 축에 속한다)


이 시기에 내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누룽지나 묽은 수프, 사과나 배 같은 수분이 많고 아삭한 과일, 그리고 이온 음료 정도였다. 매일같이 소파에 드러누워 시름시름 앓는 나를 안타까이 여긴 스웨덴 남자는 뭐라도 먹여보려고 토마토 수프도 끓여보고 빵도 구워보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어느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입덧 중인 임산부의 입맛이란 고산의 날씨와도 같아서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아침에는 먹을 수 있었던 그 음식을 저녁엔 먹을 수 없는 일도 허다했다.


황당한 것은 그나마 아침이나 낮에는 견딜 만 한데 저녁마다 더 심하게 앓았다는 점이다. 입덧을 영어로 Morning Sickness라고 하는데 나에겐 완전 Evening Sickness였다. 영미권 단어라 아시안에겐 시차 반영을 해줘야 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차라리 낮시간대에 힘들면 일을 쉴 수 라도 있는데 업무 다 보고 퇴근 도장 딱 찍는 순간부터 피로와 함께 입덧의 파도가 밀려오니 직장인 예비맘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엄마가 커리어를 단절하지 않고 앞으로도 쭈욱 일하길 바라는 내 새끼의 배려인 것인지.


한국 산부인과에서는 입덧으로 괴로워하면 입덧약 처방이나 수액 처방을 의사가 먼저 권하기도 한다던데, 일본에선 그런 권장 따위 없었다. 입덧으로 총 3킬로가 빠진 날 보러 간 정기 검진에서, 케톤치(영양 부족 상태에서 검출된다고 한다)가 검출되지 않았으니 ‘아직은’ 괜찮다며 빙긋 웃는 의사 선생님을 원망의 눈빛으로 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체중은 뚝뚝 떨어져갔고, 임신 전 몸무게에서 4키로를 덜어낸 다음에야 입덧이 잦아들었다.


입덧이 괴로운 이유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12주의 기적, 16주의 기적 등 어느 순간 입덧이 가라앉는 시기가 있다고는 하나, 친정 엄마처럼 분만대 올라가기 직전까지 토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결국 하늘에 맡겨야만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나보다 먼저 임신 출산을 겪은 일본 친구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입덧만 끝나면 솔직히 임신 기간 중에 괴로운 건 더 없다고 생각해. 분만은 애가 나오면 끝난다는 보장이라도 있지만 입덧은 언제 끝날지 모르잖아?




신기한 사실은 그렇게나 영양 섭취가 부실해짐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그러거나 말거나 쑥쑥 자랐다는 점이다. 입덧을 겪는 임산부들은 다들 뱃속 아이가  자라 줄지 걱정을 한다는데, 아기는 엄마의 체내 축적 영양분을 쏙쏙 빼먹으며  자란다. 사실 나는 애초에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스스로가 모체의 10개월  하드코어 입덧 속에서도 3.2kg 건강한 아이로 자라서 세상에 온 인간이지 않던가. 새삼 친정 엄마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자식이 생겨봐야 부모 맘을 안다는 옛말은 틀린  하나 없었다.


다행히 나에겐 12주의 기적이 찾아와서, 12주 차에 들어가자마자 입덧 증상이 놀라울만치 크게 호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 전에 먹던 양만큼은 먹지 못하고 있으나, 그래도 뭐라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어디랴싶다. 엄마 되기는 정말이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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