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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사는 투칸 Sep 07. 2022

잠 못 이루는 엄마 아빠들의 밤

시즈오카현 어린이집 등원 버스 사고를 보며

대학 동기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경험이 있다. 가장 뜨거운 시절을 함께한 녀석을 허망한 사고로 보내고 동기들 모두가 마음 아파했는데, 동기들 외에 슬픔과 먹먹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부모님들이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날 밤 우리 부모님은 가슴이 아파서 잠을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모든 가정이 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만난 적도 없고 고작 이름 석자 정도 아는 대학 동기의 죽음이 왜 우리네 부모님들의 슬픔 버튼을 눌렀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 시즈오카현의 한 유치원에서 만 3세 아이가 등원 버스에 남겨져 5시간 방치된 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은 아직도 한낮에는 30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 아이는 하원 시간이 되어서야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 판정을 받았다.


오늘 현장 감식 중 등원 버스 안에서 아이의 물통이 발견되었다. 물통은 비어있었다. 점점 온도가 올라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물을 마시며 견디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물은 떨어졌고, 아이를 구해줄 어른은 오지 않았다.



아이의 빈 물통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미칠 것만 같은 심경이 되어, 회사에서 울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밤 아이를 재우면서 잠들어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와 스웨덴 남자는 일련의 기사들을 보고 크게 분노했다. 특히 교육직에 종사 중인 스웨덴 남자의 분노는 컸다. 말도  되는 일이고 있을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분노에 이어서  슬픔이 밀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안타까운 사고에 분노하는 정도로 끝났을 일이다. 그러나 ‘부모  심정으로, 이제는 뼈에 스미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추가로 따라오게 되었다. 비로소  우리의 부모님들이  날의 부고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같았다. 부모님들께 있어 아들딸의 동기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자체도 슬픈 일이었으나 아이가 떠난 세상에 남겨진, 동기의 부모님 마음을 생각하면 더욱 슬프고 먹먹해졌던 것이다.


비단 이런 사건을 마주했을 때가 아니더라도, 나와 스웨덴 남자는 아이를 낳고 둘의 세계관이 확 바뀌었음을 순간순간 체감하곤 한다. 세상에 난지 1년도 되지 않은 아이가 우리의 삶의 방식과 시야를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가를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은 아이는 어느새 나와 스웨덴 남자의 세계 그 자체가 되었다. 아이가 부모의 세계라고 한다면, 아이의 죽음은 부모에겐 곧 세계의 종말이다.


사건이 발생한 유치원에서 오늘 학부모 설명회를 열었다. 유가족 중에선 아이의 아버지가 참석했고, 나머지는 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들이었다.


현장에서 참석자 중 총 13명이 과호흡 등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갔다는 기사가 나왔다.​ 부모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나갔을지, 왜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의 죽음에 슬픔을 호소하고 과호흡을 일으키며 쓰러졌는지, 너무나 이해가 되어서 슬프고 또 아프다.


잠이 도통 오지 않는 밤이다. 아마 오늘 일본에선 많은 부모들이 같은 마음으로 잠을 설칠 것이다. 그날 밤, 전전반측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한다. 낳아봐야만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옛말은 또한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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