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대한 재감상

김연수 작가의 뉴욕 제과점을 읽고

by 박겸도

추억은 잔인하다. 아니, 사실 우리의 인생이 잔혹한 것이다. 인생은 우리를 끊임없이 흘러가게 만든다. 그래서 그 흐르는 물결 속에서, 반짝이던 햇살의 소중함을 망각시킨다. 그 햇살이 얼마나 특별했던 것인지, 알맞은 경사면에 튕겨 나온 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우리는 그 순간에 결코 알 수가 없다. 인생이란 그렇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언제까지나 함께하지는 않는다. 그저 매일매일, 정체 모를 무언가가 우리와 함께 흘러갈 뿐이다.


그 망각은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사실 그것은 망각이 아닌 상실에 더 가깝다. 우리가 추억을 상기할 때, 눈가가 붉어지는 탓은 그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부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그게 무엇이든 누구든 그 빈자리에 대한 환상통을 겪게 한다. ‘아프다’,‘ 쓰라리다’, ‘고통스럽다’는 말만으로는 그 자리를 메우기 어렵다. 아무리 채워 넣어도 모자란, 잃어버린 퍼즐 조각 앞에서 우리는 잊어버리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언제나 빈틈없이 완벽하기를 여망 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집 떠난 민달팽이의 마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등 뒤의 집을 내려놓은 민달팽이는 누구보다 자유롭다. 이제 그 집만이 유일한 안식처가 아니다. 자신의 발걸음이 멈춘 그곳, 그 자리가 곧 집이 된다. 세상 모든 만물을 집 삼아 여행하는 민달팽이는, 어쩌면 무거운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민달팽이는 자신의 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슬피 울지도, 아파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도 민달팽이가 되자. 집을 잃어버린 사실에 등 뒤의 공백에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말자. 세상을 집 삼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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