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by 박겸도

사람은 언제나 관음의 욕구를 가진다. 꼭꼭 숨겨진 타인의 은밀한 일기장을 발견하여 조심스럽게 미지의 페이지를 넘길 때, 그것은 언제나 흥분되고 고조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람은 언제나 내가 아닌, 타인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일기장의 주인은 자신의 일기장에 들어와 있는 침입자에게 거대한 분노와 수치를 느낄 것이다. 마치 강간이라도 당한 듯이. 허락되지 않은 타인에게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가장 깊은 속을 무단으로 침법 당했다는 자각. 이것이 바로 일기장이 품은 분노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은 가장 일기장 속 내밀한 이야기를 타인에게 드러내고자 한다. 담아낸 이야기는 같았지만 다른 것은 단 하나 대상뿐, 오직 허락된 대상만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대상에게 하여금 관음의 욕구긴밀한 소속감을 증여하고, 그 이야기의 주체에게는 노출의 욕망을 충만시킨다. 즉 이 허락은 소속감을 낳고 그 관계는 상호 관음과 노출이라는 복잡한 욕망의 춤을 완성시킨다.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우월감,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듣지 못할 오로지 ‘나’만 들을 수 있는 그 사람의 이야기. 이와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통해 본인을 들어내고 반응받기를 원하는 갈망이 교차되어 있다.


일기장이란 그런 것이다. 오로지 내가 허락된 자만 보여줄 수 있는 것. 우리가 흔히 사회에서 꺼낼 수 없는 나의 깊고 내밀한 고백, 욕망, 수치, 망상, 열망…. 그런 것들로 쓰인 문장들 이것이 곧 일기장이다. 다시 말해 사적인 누드의 문장이 하나로 모여 전시된 집합, 그것이 바로 일기장이다.


허나, 그 과정을 비약하고 그 일기장을 열어보는 행위는 어떠한가, 그로 하여금 그 사람과 관계를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 관음의 욕구를, 그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영역을 침범한 그 행위는 관음의 욕구를 더럽고도 탐욕스러운 강탈의 욕구를 완벽히 충족시킨다.


허락된 자들에게만 긍가되고자 하는 그 욕구, 그것을 몰래 훔쳐본 이의 욕망. 이 모든 모순된 욕구를 가장 완벽히 담아낸 것이, 바로 일기장이다. 그렇다, 이것은 비밀을 보관하면서도 동시에 드러내고 싶은 인간 욕망 모순의 집약체이자 인간의 관음과 강탈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성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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