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렇기에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함에 비애의 장송곡을 읊어댄다. 이때, 인간은 간절해진다. 말없이 웃고 있는 사진 앞에서, 아니면 기척 없는 돌덩이 앞에서, 떠나가는 연인의 옷자락을 잡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간절해진다. ‘제발 돌아와 줘’
인간은 잔인하다. 아니 어쩌면, 운명이 잔인한 걸까. 많은 운명은 설움이 담긴 절규에 가까운 구걸에도,
한 치의 자비 없이 붙잡은 손을 또는 주저앉은 다리를 뿌리치거나 일으켜 세우며 떠난다. '아-아' 사람들은 끝내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과거에 대한 집착, 미련, 소망은 최대의 간절함을 이끌어낸다. 이 명제에 예외란 없다. 누구나 다 지나간 것들의 미련을 가진 채 살아가며 또 다른 것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 미련의 정도가 간절함의 크기에 따라 다를 뿐이다. 그 크기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 이 작고도 여린 소년과 소녀라면 더더욱 간절함에 취약하다. 그들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가장 큰 아픔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장식되어,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상기되며 성격에 침습해 들어간다. 그들의 간절함은 무엇일까, 어김없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일까, 아님 어리숙한 순간의 과오를 잊고 싶은 것일까. 여기 한 이야기가 있다.
소년에게 악마가 찾아와 물었다. ‘아이야, 아이야, 무엇을 원하니 너의 소중한 것을 나에게 준다면 나도 너의 소망을 들어주겠다’ 소년은 망설임 없이 필시 과거로 돌아가고자 소망했을 것이다. 그곳에는 소녀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자 악마가 말했다. ‘좋다, 너의 소망을 들어줄 테니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소녀의 머리를 어루어 만졌던 두 손을 주겠니? 아니면, 장난스레 소녀와 물장구를 쳤던 두 발? 두 눈, 두 귀, 코, 어느 것이든 좋으니 어떤 걸 주겠니'
그때 소년의 표정이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소년은 그 말을 듣고, 절망에 가득 찬 얼굴을 보였을까? 아니면 곰곰이 고민하며 고뇌였을까. 아마 이랬을지도 모른다.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두 손이 없다면 소녀의 두 눈에서 흐르는 이슬을 닦아 줄 수 없고 두 발이 없다면 산책을 좋아하는 소녀와 함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도 없다.
또 두 눈이 없다면 소녀를 다시 재회했을 때 소녀가 지을 얼굴을 알 수 없고 두 귀가 없다면 그토록 애원하던 소녀의 자비를 들을 수 없을 것이며, 코가 없다면 간질간질하고도 포근한 소녀의 내음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생각했으리라, 과거로 돌아가도 지금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현재 또한 두 손, 두 발, 두 눈, 두 귀 모든 것이 온전하게 있어도 소녀를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으며 소녀에게 갈 수도 없고 보지도 못하며 목소리를 감히 들을 수도 없다. 그렇게 소년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간 자신을 상상한다.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위해 심고하며 고민한다. 그 시간들 속에서 지금의 현재가 과거가 되어가는 것을 모르는 듯이 말이다. 헛된 짓임을 분명히도 알지만 그럼에도 끊어낼 수 없는 탓은 과거를 갈망하는 것이 그토록 달콤하고도 짜릿함에 연유한다. 간절함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을 완벽한 바보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