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by 박겸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 밤이었다. 그 밤은 몹시나 어두워, 물건을 코앞까지 가져와야 겨우 형태가 보이는 그런 날이었다. 굳게 닫힌 문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두 귀를 꼭 막고 있었다. 문 밖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어린 나이의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고성이 너무나 두려웠다. 아직도, 그 다툼이 끝난 후 들렸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해를 할 수 없네’


시간이 꽤 지난 후, 엄마와 말다툼하는 목소리는 내가 되어 있었다.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눈썹이 어떻게 올라가는지, 입꼬리는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훤히 보였다. 우리는 1초의 공백도 없이 말을 이어가다 가도 한참 동안 서로를 노려봤다. 그리고는 서로 고개를 돌려 큰 한숨을 뱉어냈다. ‘하’ 이 소리는 시간이 늦었으니, 여기까지 하자 하는 우리 둘만의 신호였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다툴 때면 늘 나오던 레퍼토리가 있었다. 항상 서로를 향해, ‘내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며 호소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면 꼭 이 말이 실과 바늘처럼 따라 나왔다. ‘왜 이해를 못 해?’ 그러나 우리는 서로 각자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둘 다 서로의 입장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부모로서, 단 하루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또 자식과 다투어야 하는 상황을 겪어 본 적도 없었다. 엄마도 그랬다. 자신에게서 자란 자식의 삶을 살아본 적도, 첫째의 삶을 살아본 적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 속에서 살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그렇다고 나와 같은 부모와 자란 내 동생이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아빠도 그랬으며, 할머니, 할아버지,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까지도. 나는 아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서로가 되어 이해해 보라며 언성을 높였던 것었다.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령, 학교에서 졸업하거나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순간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랑의 순간 같은 모두가 피해 갈 수 없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 경험을 했고, 그 사람도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 상상은 생각보다 쉽게 깨졌다.


100명의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또 헤어진다면 100개의 사랑과 이별이 아닌 200개의 사랑과 200개의 이별이 생겼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총 3번을 만났다가 헤어지며 결혼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은 서로 만났던 순간과 헤어졌던 순간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다른 이야기에서도 차이가 드러나긴 하지만, 특히 그 순간에서는 더욱 극명하게 이야기가 차이 났다.


엄마는 아빠가 다시 만난 자신의 인사를 무시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아빠는 엄마를 보지도 못했었다며 말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엄마는 분노가 담긴 발걸음으로 바닥을 꼬집듯이 걸으며 다시 다가가 인사했다고 했었다. 아빠는 엄마가 자신에게 다가오는데, 총총 걸어오는 모습이 귀여웠을 뿐이라고 말했다. 같은 순간을 통과하면서도 우리는 각자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여과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제 엄마나, 다른 누구와 말다툼할 때, ‘내 입장이 되어보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이해하라고 말하기보다 내 입장에서 느낀 감정을 전달한다. 서로 다른 경험은 입장의 차이를 불러일으키지만, 같은 감정은 동질감을 불러오게 된다.

이전 04화알레르기 쇼크 사망에 관한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