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이 있다. 하나를 해도 남들보다 열 배로 더 힘들게 하는 사람. 간단한 문서를 프린트하는 일조차 늘 사고로 끝나고, 문서 정리를 엉망으로 해 스테이플러 심을 뺏다가 꽂기를 반복하는 사람. 그 엉망진창이 의인화된 존재가 바로 나다. 그런 특성 탓에 매일 달고 다니는 말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내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데카르트의 송과선 같았다. 영혼과 육체가 만나는 유일한 통로처럼, 나의 진심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과'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탯줄은 태어날 때 끊어지기라도 하지만. 이 말은 내 인생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적어놓은 내용이 있었다. '아이작 뉴턴, 폴 세잔, 스티브 잡스가 너무 밉다. 내 사과는 모두가 싫어하는 데, 이 사람들의 사과에는 전 세계가 열광하고 좋아한다. break, break, break...'
내 침대 옆에는 항상 배를 꾹 누르면 '알러뷰'라고 소리가 나오는 곰 인형이 있었다. 어렸을 때 '되고 싶은 것'에 대해 다른 친구들은 '슈퍼맨, 대통령'을 써 내려갈 때, 나는 항상 내 곰 인형의 이름을 적었다. 나도 누군가가 나를 누르면 '죄송합니다' 대신 '사랑해'를 외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곰 인형의 털이 빠지고 색이 바래며 나와 닮아지게 되었다. 다음에는 소원을 더 정확하게 빌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번개를 7번 맞은 사람도 있듯, 내게도 여자 친구가 생기게 되었다. 물론 내 사과 습관은 그치지 않았다. 그 반복되는 습관에 못 이겨 여자 친구는 내게 사과 할당제를 정했다. 하루에 단 3번, 그것이 유일하게 허락된 사과 횟수였다. 그렇게 그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물론 사과 할당제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매번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때, 1분 만에 이 할당량을 소진하고는 사과 없이 대화를 시작할 용기조차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없으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에 미안하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는 한스러운 무한 굴레였다. 나의 대화 패턴은 대개 이런 양상을 띤다. 우선 나의 사고로 대화가 시작된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너무 미안... 아,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했지. 미안, 또 미안이라고 했네 미안 아.. 아..'
이렇게 미안한 순간이 유독 많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그녀가 날 떠날 때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너는 항상 미안하다고 하지, 근데 너 진짜 미안한 거 맞아? 진짜 미안하면 안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매일 미안하다고 하면서 고칠 생각을 안 해?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한 척 좀 그만해'
이 말이 습관처럼 엄습할 때면 나는 그때와 같은 말을 반복한다. '미안해.. 아.. 또 그랬네, 미안.. 아' 나는 내 대답이 끝나고 난 뒤,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렵다. 그녀는 마치 바퀴벌레를 보듯, 아니 더 끔찍하고 징그러운 것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미간은 닿을 듯 좁혀지고, 왼쪽 윗입술이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잔뜩 팽팽해진 그녀의 미간은 당겨진 활시위처럼 '팡' 하고 튕겨 오르더니, 이내 화살 같은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 좀 해!, 넌 항상 너 생각만 하지? 그렇게 일은 다 벌려놓고 미안하다고만 하면 되니까. 네가 미안하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분인지 알아? 피해는 내가 받았는데, 네가 그렇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니까 내가 죄인인 것 같아. 알고 있어?' 이 말이 내가 기억하는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녀의 증오가 담긴 모든 말속에서 틀린 말은 단 한 가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과는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만능열쇠이자 만능 방패였다. 그때서야 나는 알았다. 내가 사과했던 것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편해진 공기를 견디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사고를 수습하기보다는 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내뱉는 가장 이기적인 배설물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만나 사과가 아닌 다른 말을 하나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두 손에는 열쇠와 방패 밖에 달려있지 않다고. 사과만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위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