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사랑하는 세대

세대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단죄한다

by 박겸도

엄마는 사과를 좋아했다. 아빠도 사과를 좋아했다. 그 탓에 우리 집 냉장고에는 사계절 내내 사과가 꽉 차있었다. 봄철에는 샛노란 수재 사과청이 한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여름철에는 새빨간 사과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을과 겨울에는 더욱 많아져 반찬이 들어갈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항상 사과로 가득 메워져 있는 냉장고에 대해 내가 투정 부릴 때면, 계절마다 다른 이유로 나를 타일렀다. 봄에는 겨울 사과를 다 못 먹어서 청을 만들어야 하니 어쩔 수 없고, 여름에는 올해 첫 사과가 나왔으니 먹어야 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이 시기 사과가 가장 맛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과 사랑은 소꿉친구 청이의 부모님도 매한가지였다. 아마 추측하건대, 우리가 소꿉친구가 된 이유는 양쪽 부모님의 사과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청이는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훨씬 더 달고 맛있는 복숭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청이는 한동안 우리가 지구 밖에서 온 외계인이 아닐까 고민했었다. 서른 살이 된 지금에도 사과를 좋아하지 않은 부모님 세대 어른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고모의 병문안으로 사서 간 사과 바구니는 고모의 미소를 지켜냈다. 병원에서 빌고 빌어야 겨우 죽 한 숟가락 먹던 고모가 커다란 사과 하나를 그 자리에서 다 드셨기 때문이다.


또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인해 열린 송별식에서 선물한 사과 상자는 그날 가장 밝은 선생님의 웃음을 끌어냈다. 결혼 20년 만에 임신에 성공하여 아들을 낳은 부모처럼 크게 웃으셨다. 심지어 진짜 아들을 낳은 것처럼 사과 상자를 여러 번 들었다 내리며 기쁨을 만끽하셨다.


여전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친구들 또한 매한가지였다. 청이와 같이 복숭아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사과만은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사과가 좋았던 점은 있었다. 서먹한 사이에서 말을 붙일 때 이만한 주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침묵이 감도는 교실 안에도 부모님의 지나친 사과 사랑을 이야기하면 금세 시끌벅적 해졌다.


한 번은 부모님의 과잉 사과 사랑 대결을 한 적이 있었다. 2시간에 가까운 열띤 토론을 이어가다 이 친구의 등장으로 시끄럽던 교실은 정적으로 물들었다. 바로 그 친구 이름이 ‘이사과’였고 친구 형제의 이름은 차례대로 ‘이풋사과’, ‘이하와’, ‘이아담’이었다. 그 친구의 존재가 곧 증명이었다.


그렇게 사과와 함께 시끄럽던 학교 생활을 마치고 복숭아 향이 가득한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경찰대에 합격하여 경찰이 되었고 사과를 싫어하던 내가 사회의 주류가 되었을 때, 여전히 사과 향이 지배하는 사건을 마주했다. 2036년 5월 16일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혀 놓는 사건인 ‘돼지 축사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사망자만 16명이었으며, 납치된 생존 인원은 무려 34명이었다.


내가 맞이한 범행 현장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피해자 16명의 유골이 돼지축사에 뒹굴고 있었으며 더욱 끔찍한 것은 먹히지 않은 피해자의 절단된 손이 돼지 축사 밖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목도하고 불과 10초도 되기 전에 구역감이 올라와 황급히 밖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체가 돼지와 함께 축사를 장식하고 있는 점도 구역감을 충분히 유발할 만했지만 더욱 매스껍게 했던 것은 냄새와 소리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생선의 비릿한 냄새와 코가 아플 정도의 암모니아 냄새가 즐비해 정신을 잃기 충분했다. 많은 시체와 범죄 현장을 마주했음에도 가히 인생 최악의 냄새라 칭할 정도였다.


또한 축사 안 돼지들이 나를 용의자로 착각한 듯 축사 철창을 부실 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달려들며, 피해자의 유골이 차이거나 밟혀 ‘우직끈’하는 소리가 귓가에 아리듯이 들렸다. 울음소리 또한 기괴했는데, ‘꿀꿀’ 거리는 일반적인 돼지의 울음소리와 달리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꾸에엑, 꾸에엑’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생지옥이 다름없었다.


이 사건은 다음날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간간히 돼지 축사의 규칙을 어겨 사망한 사건이 있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사건은 없었던 탓이었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범죄 현장 속 사진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국립과학수사원은 피해자들의 유골과 유해 신원 조사에 착수했으며 나는 납치된 피해자들의 참고인 조사를 위해 축사 관계자를 만나 수사를 이어갔다. 축사 소유주에 따르면 작년 이맘때쯤 독특한 복숭아 향수를 뿌린 어떤 청년이 내 부모님 나이대의 오른쪽 발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귀농했다며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 청년이 말하기를 어떤 사정으로 인해 아버지가 오른쪽 발을 다쳐 직장에서 쫓겨났는데, 빚이 많아 갚기 위해 뭐라도 하려고 왔다며 자신을 소개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축사 소유주는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축사를 계약해 주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 뒤로 축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며 범죄 사실을 즉각 부인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수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피해자들 간에 어떠한 연관성이 없었던 점이었다. 사는 지역이나 하다못해 취미까지도 맞는 부분이 없으며 용의자의 얼굴 또한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 피해자들 모두 자신이 납치되었을 때 ‘사과’를 먹는 소리를 들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축사 근처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과 씨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이 단서는 아들의 증언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증언은 마치 직접 자신이 버린 듯, 씨앗의 정확한 개수를 설명했었다. 그렇게 발견된 장소는 버린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정도로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아들의 증언으로부터 발견한 씨들을 국과수에 넘겼지만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팀에서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실망하지 않았었다. 바로 새로 들어온 신입이었다. 그녀는 사과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었기에, 나에게 실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나는 그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귀여운 질문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부자 농부 중 ‘아버지’를 기소했다. 나는 '사과'라는 단서 앞에서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범인은 당연히 사과를 탐닉하는 그 세대의 노인이어야만 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법정의 판사도, 배심원들도 모두 우리 세대였다. 그 탓에 은근한 복숭아 향기가 재판장을 감돌았으며 사과를 사랑하는 절음발이 아버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나는 아직도 그의 아버지가 보완관리대에게 오른발을 절뚝거리며 끌려가는 장면을 본 아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사과 한 입을 베어 물고는 입꼬리가 찢어질 듯이 웃어대며 입가에서 과육이 흘러내리던 그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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