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 미상의 고인

호명되지 않기 위하여

by 박겸도

책상이 묘하게 진동한다. 책상이 살아 있다거나 지진은 더더욱 아니다. 건조한 쇳소리가 반복적으로 귓가에 울린다. 총은 없지만 이곳은 확실히 전쟁터다. 소리가 울리면 일제히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다시 소리가 울리면 울부짖는 자, 침묵에 잠겨있는 자 이 둘로 나뉜다. 이곳에는 감히 비행기도 기웃거릴 수 없다.


나는 혼란스러운 그곳에서 고고히 손을 든다. 그리고 외친다. “제 수험 번호에 이름이 잘못되었는데요” 난 이 장면이 익숙하다. 이빨에서 어떤 맛이 나는지 아는가. 모든 맛을 느끼는 혀의 안식처에 즐비한 ‘이빨’은 본디 무맛인 것일까, 익숙함에 맛의 평범성으로 ‘무’ 해진 것일까. 나는 언제나 후자의 쪽이었다. 익숙함이 감각을 마비시키듯, 내 이름조차 나에게는 이빨처럼 이질감 없는 타자였다.


나는 자신을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선물하고 싶다. 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향해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소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아직 주소지 미입력 상태다. 나는 고쳐진 수험표를 받아 들고서는 내 애인 목공풀을 꽉 쥐었다. 군대에서는 총을 애인처럼 대하라는 말이 있듯, 수험생에게 컴퓨터 사인펜은 곧 애인이다. 내 애인의 이름은 목공풀이다.


찍는 족족 맞으라는 의미가 담겨있냐는 오해를 종종 받지만, 절대 아니다. 그저, 이름은 이름이다. 나의 이 작명 이유에 대해 듣고 나면 다소 일그러진 표정들을 때때로 맞이한다. 대처법은 간단하다. 처음으로 남주인공을 만나는 여주인공처럼 사랑에 빠지도록 생긋 웃어준다. 그러면 그들은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라거나, 조현병과 같은 이름을 나에게 작명하고 떠난다. 아무렴 상관없다. 이름은 이름이다.


조금 뒤면 내 눈앞에 기괴하게 꺾여있는 팔 한 짝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괴상한 글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자세를 약 5명이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자세는 마치 파도타기처럼 앞에서 뒤로, 차례차례로 기괴함을 전승한다. 그렇지만 너무 오랫동안 이 광경을 감상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지체했다가는 그 괴이하게 꺾인 팔은 분노가 가미된 신음 소리와 함께 팔을 뒤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복날 유유히 모래를 쪼아 먹다 붙잡힌 닭처럼, 움직이는 팔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면 유의해야 한다. 나는 가뿐히 괴상한 종이를 뽑아 들고 앞사람의 저주를 풀었다. 그리고 나에게로 전이했다. 하지만 곧 저주는 내 손을 떠난다.


나는 문제 속 갇혀 있는 철수와 영희에게 참을 수 없는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은 출제자의 건조한 호명 행위에서 저항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얼굴 아래 무참히 적힘 당한 출제자의 흔적을 내 목공풀로 지워냈다. 아마 그들의 입꼬리가 조금은 상승한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아무렴 상관없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이름이 잘못 호명되었을 때, 약간은 화가 덧붙여진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외쳐대는 사람들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비애를 느낀다. 뻐꾸기의 알을 정성스레 키워낸 뱁새처럼 그들은 탁란 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 뱁새 사이에서 언제나 뱁새의 삶을 택한다. 뱁새는 ‘자식’인 줄 알았던 것이 자신의 몸집을 상회하는 순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저 거대한 것이 나의 아이들을 ‘탈락’시키고 자신은 그것을 애써 키우며 근친살인을 종용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도 알 수 없다. 오히려 모두가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를 희롱한다. ‘타인’이 자신을 부르기 위해 선물한 ‘칭호’를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애타게 통곡할 것이기 때문이다.


“띵-동” 종이 울린다. 예견된 미래는 결말이 정해진 비디오테이프처럼 눈앞에 드리운다. 울부짖는 자와 침묵하는 자가 이 공간의 소리를 차지한다. 나는 홀로 유유히 그 전장을 빠져나온다. 나는 160번의 간선 버스를 탄다. 어두운 하늘과 그보다 더 칠흑 같은 강이 나를 반긴다. 참 철면피 같은 대교다. 많은 사람의 덧없는 추락을 방관했으면서 무너질 생각을 안 한다.


나는 신발을 벗어두고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이름에 ‘의원 의’ 자가 없었더라면, 내 목공풀의 이름을 합격으로 지었다면. 짧은 한탄과 함께 나는 내 명찰을 목공풀로 지워버렸다. 나는 내 이름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내 것으로 지워진 이것이야말로 가장 나를 잘 대변하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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