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모는 왜 이렇게 늦지?"
복지관 안, 책상 위 달력을 넘긴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한국재단 공모 공문이 도착한 날.
“한국재단에서 공모사업이 떴어요. 최대 3천만 원까지요!” 사무실 한쪽에서 들려온 말에, 다르륵하고 키보드 치던 손이 멈칫한다. 이맘때쯤엔 누군가가 먼저 말을 꺼내는데 일단 숨죽이고 잠자코 있는다. 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링크를 열어보는 팀장님의 모니터 화면에 길고 복잡한 공모안내문이 떠 있다. 팀장님은 스크롤을 오르락내리락거리며 내용을 확인한다.
“이거, 우리도 한번 신청해 보자. 주제가 너무 좋은걸? 옆 부서랑도 협업해서 할 수 있겠어.”
벌써 큰 그림을 그리는 팀장님의 말을 들으며 안면근육이 굳어지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쓴다.
내가 일을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몇 군데나 선정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서류제출 기한이 얼마나 남은 지가 걱정되어서다.
“12일이나 남았네. 시간 충분하지 않아?”라며 과장님이 우리에게 말하는 눈빛을 보니 죽을힘을 쥐어 짜내서라도 선정이 되어야만 한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를 외치는 이순신 장군과 과장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장군님, 그때 이런 마음이셨나요...’
공모사업이라는 건 늘 지원금액에 비해 요구사항이 많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적절하게 예산이 쓰였는지, 목표와 성과가 일치하는지를 조목조목 한 번 더 확인한다. 미리 계획서에 반영하지 않으면 결과보고서를 제출할 때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선정되기를 기대하는 건 어림도 없다. 기획안은 근거와 논리, 수치와 실행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지원처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도 중요하지만 정말 실현가능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탄한 기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통계청, 보고서, 논문 등을 찾아본다.
기획안이 완성될 즈음엔, 책상 위에 쌓이는 건 종이보다 믹스커피 컵이 더 많다. 종이컵이 쌓이는 시간 속에서 한 줄씩 문장이 만들어진다.
“이건 복지사업팀이랑 연계하면 좋을 거 같아요”
“1인 가구로 대상을 정하면 차별성이 있을 거 같아”
우리 기관과 지역을 표현하는 이야기를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서로의 영역을 넘지 않으면서, 다른 기관과 차별성을 두는 작업. 마감 5일 전, 기획안을 아름답게 완성하기 위한 팀회의가 시작된다.
“성과지표는 정량적, 정성적으로 둘 다 특정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심사자가 보기엔 필요성 부분에서 논리가 부족해 보일 수 있으니 자료추가 바랍니다.”
한 문장을 열 번도 넘게 다듬는다. 파일명이 뒤로 길어져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미리 제출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오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살펴보다 보니 마감 당일이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여백과 장평, 자간이 통일되어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진짜 최종은 늘 진짜가 아니다.
‘_최종_진짜_ver11.hwp’
“과장님 컨펌한 대로 반영해서 결재받고 이제 진짜 제출할게요!”
긴장한 손끝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첨부파일 3종을 하나씩 업로드한다. 파일이 올라가는데 3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이지만 오류가 날까 봐 눈꺼풀을 깜빡이지 않는다. 마우스 커서가 제출버튼 위에 얹히고 ‘딸깍’ 소리를 낸다. 양팔을 벌려 기지개를 쫙 켜고 ‘드디어 제출완료!’를 외친다. 버튼을 누른 그 순간 우리 팀에 다시 잔잔함이 찾아왔다.
물론, 그 고요함은 결과가 뜨기 전까지 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