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3 : 웨이크 업 데드맨>이 보여주는 이성과 서사의 변증법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언제나 ‘범인 찾기(Whodunit)’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계급과 자본이라는 동시대의 가장 예민한 환부를 찔러왔다. 세 번째 작품인 <Wake Up Dead Man: A Knives Out Mystery 웨이크 업 데드맨>에서 그 칼끝은 이제 인간의 가장 오래된 피난처인 ‘종교’와 ‘믿음’을 겨냥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도달한 곳은 신성모독이나 맹목적 찬양이 아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우리가 진실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서늘하고도 우아한 고찰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신이 죽은 시대, 혹은 신의 목소리가 자본과 욕망에 의해 대체된 시대에 현대인에게 ‘교회’는 무엇이며, ‘믿음’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이 거대한 질문은 영화 초반부, 이성의 사도인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과 스토리텔링의 수호자인 부사제 주드(조쉬 오코너)의 대화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드 신부: You are not a Cathoric. 가톨릭 신자는 아니시군요.
블랑 탐정: No,not very much.no. Proud heretic. I kneel at the altar of the rational.
아니요, 전혀요. 전 ‘자랑스러운 이단자’랄까요. 저는 ‘이성(Rational)’이라는 제단에 무릎을 꿇는 사람입니다.
주드 :How does all this make you feel? (이 공간의) 이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나요?
블랑: Well the architecture ,,,that interests me. I feel grandeur,,,well mystery,,the intended emotional effect. And it's like someone has shone a story at me that I do not believe. It's built upon the empty promise of a child's fairy tale filled with malevolence and misogyny and homophobia and it's justified untold acts of violence and cruelty while all the while, and still,hiding its own shameful acts. So like an ornery mule kicking back.I want to pick it apart and pop its perfidious bubble of belief and get to a truth I can swallow without choking. The rafter details are very fine,though. It's. Telling a truth can be a belly rub.
글쎄요, 건축 양식은... 그건 흥미롭더군요. 웅장함도 느껴지고... 뭐랄까, 신비로움 같은 거요. 설계자가 의도한 딱 그 감정적 효과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마치 누군가 내가 믿지도 않는 이야기를 내 눈앞에 들이미는 기분입니다. 이건 악의와 여성혐오, 동성애 혐오로 가득 찬,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의 공허한 약속 위에 지어진 겁니다. 그 약속은 수많은 폭력과 잔혹 행위를 정당화해 왔고, 그러는 동안에도—아니, 여전히 지금도—자신들의 수치스러운 치부는 감추고 있지요. 그래서 난 고집 센 노새가 뒷발질을 해대듯 저항하는 겁니다. 난 이걸 낱낱이 파헤쳐서 저 기만적인 믿음의 거품을 터뜨려 버리고 싶어요. 그래서 내 목이 메지 않고 삼킬 수 있는, 그런 ‘진실’을 찾아내고 싶은 겁니다. 서까래의 디테일은 아주 훌륭하지만요. 뭐랄까... 진실을 말한다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위안(belly rub)이 되거든요.
주드 : You're right. it's storytelling. this church it's not Medieval. we are in New York. it's Neo-gothic 19th century . it has more in common with Disneyland the Notre Dame and the rites and rituals and costumes all of it. It's storytelling. You're right. I guess the question is that do these stories convince us of a lie? or do they resonate with something deep inside us tatls profoundly true? that we can't express any other way except storytelling.
맞습니다. 그건 스토리텔링이죠. 이 성당은 중세 건물이 아닙니다. 우린 뉴욕에 있잖아요. 이건 19세기 네오고딕 양식이죠. 노틀담 대성당보다는 디즈니랜드와 더 공통점이 많습니다. 각종 의식과 제례, 의복들... 그 모든 게 다 그렇죠. 스토리텔링입니다. 탐정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제 생각에 진짜 질문은 이것 같습니다. 과연 이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거짓을 믿게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스토리텔링 없이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어떤 ‘심오한 진실’과 공명(resonate)하고 있는 걸까요?
브누아 블랑이 이 웅장한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을 보며 “건축학적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악의와 혐오로 가득 찬, 공허한 약속 위에 지어진 동화”라고 일갈할 때, 그는 근대적 이성(Reason)의 대변자가 된다. 그에게 종교란 걷어내야 할 거품이자, 해체(Deconstruction)해야 할 거짓된 구조물이다.
그러나 이에 응수하는 주드 신부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그는 교회의 신성함을 변호하는 대신, “이곳은 노틀담보다는 디즈니랜드와 더 공통점이 많다”고 쿨하게 인정한다.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했듯, 현대의 종교 공간은 ‘원본(신)’이 존재하는 성소가 아니라, 의복과 제례라는 정교한 연출을 통해 신성함을 체험하게 하는 테마파크, 즉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공간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첫 번째 포스트모더니즘적 통찰을 제시한다. 현대의 신도들이 소비하는 것은 교리 그 자체가 아니라, 몬시뇰 윅스(침니록의 본당 신부)라는 카리스마적 캐릭터와 교회가 제공하는 매혹적인 서사다. 신도들은 그것이 일종의 연출임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면서도, 그 ‘거룩한 연극’에 기꺼이 동참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결핍된 의미를 채워 넣는다.
블랑은 자신을 “이성의 제단에 무릎 꿇는 자랑스러운 이단자”라 칭하며, 거짓된 믿음의 거품을 터뜨려 “목 막히지 않고 삼킬 수 있는 진실”을 찾겠다고 선언한다. 탐정으로서 그의 목표는 명확하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팩트’라는 벽돌을 찾아 인과관계의 벽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주드 신부는 블랑에게 묵직한 반문을 던진다. “이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거짓을 확신시키는가, 아니면 스토리텔링 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내면 깊은 곳의 진실과 공명(Resonate)하는가?”
이것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블랑이 추구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차가운 ‘사실의 진실’이라면, 주드 신부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주관적이고 따뜻한 ‘공명의 진실’이다. 인간은 팩트만으로는 살 수 없다. 비록 그것이 “아이들의 동화” 같은 허구일지라도, 인간에게는 부조리한 삶을 견디게 해 줄 ‘배 문지름(Belly rub)’ 같은 위로가 필요하다. 영화는 윅스 신부의 타락(팩트)을 고발하면서도, 신도들이 그를 통해 얻었던 위안(서사)까지 싸잡아 조롱하지는 않는다.
결국 <웨이크 업 데드맨>은 두 가지 진실의 충돌과 화해를 보여준다. 블랑은 끝내 숨겨진 증거를 찾아내어 부패한 종교 권력이라는 ‘나쁜 이야기’를 해체한다. 이성의 승리다. 그러나 영화는 블랑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의 공허함을 비추며, 그 빈자리를 다시금 건강한 ‘이야기’로 채워야 함을 암시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거대 서사는 무너졌고 절대적 진리는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디즈니랜드에서 각자의 신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비록 그 성소가 가짜(시뮬라크르)일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연민과 위로, 그리고 타인을 향한 선의만큼은 ‘진짜’라고.
브누아 블랑이 터뜨린 것은 ‘거짓된 믿음의 거품’이었지만, 그가 남겨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여전히 유효한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다. 팩트(Fact)가 세상을 투명하게 밝힐 수는 있어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Story)라는 사실을, 이 냉철한 탐정 영화는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