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직장이 스타트업인 것은 그닥....
청소년기에 없었던(내 생각뿐인지는 모르지만...) 사춘기가 늦게 온건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생겼었나 보다. 비합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것들을 보면 괜한 분이 차올랐었다. 뒤돌아보면, 비교적 큰 회사들을 다녀왔던 터라 그 분의 대상이 주로 큰회사(대기업 포함)의 권위주의에서 오는 불평등과 부조리함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큰회사에서 내게 줄 수 있는 건 안정적인 월급, 날이 갈수록 중독되는 복리후생, 다른 사람에게 어디다닌다고 말하기 편한것 뿐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몸담고 보니 새로운 생각이 든다. 내가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건 절대 개인적 자랑으로 받아들이면 곤란)에 은근 놀라고, 어쩌다가 잡다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아졌지 생각해보니 큰회사를 다니면서 선배, 동료들에게서 배운 결과라는 걸 깨닫게 된다. 회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과 천양지차로 달라서,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이 있지만 회사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배우는 사람이 그저 배울 뿐이다. 당시에는 선배의 일부림이 짜증나는 일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게 다 경험으로 쌓여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 이렇게 대처하고, 저럴 땐 저렇게 대처하라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선배의 일처리들을 보면서 배운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연차는 3년, 4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독립적으로,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본인이 모르는 것을 잘 파악해서 그걸 배워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뭘 모르는지 본인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수학문제를 풀때도 기본공식을 다 알아서 적용문제를 풀수 있을 텐데, 직장생활에서 닥치는 문제들은 왠간하면 죄다 적용문제이니.....그래서 인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묵혀두거나 피하려고만 한다. 본인도 뭘 모르는지 모르는데, 타인이 그거까지 알아내서 도와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반화하고 싶진않지만, 요새 점점 짙어지는 생각이 있다. 첫직장생활은 가급적 스타트업에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특히, 또래들만 많은 스타트업 말이다. 대기업에 가라는 말이 아니고, 작더라도 업력이 있어서 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하겠고, 굳이 스타트업이라면 처음부터 '한방'을 노리기보다는 사회경험이 있는 창업자가 있는 스타트업이면 좋겠다는 말이다.
첫 직장에서 배운 것들이 평생의 직장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김선배에게 연락좀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