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IQ 검사를 했을 때, 서로의 IQ를 놓고 친구들끼리 많은 얘기들이 오고갔던 기억이 난다. 또래 사이에 비밀보장(?) 규칙은 지켜지지 않아 IQ가 높게 나온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반대로 낮은 친구들은 쑥스러워 얘기조차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할까.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전국 단위의 IQ 검사를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변화의 핵심은 단순하다. 지난 1세기동안 인간의 두뇌능력을 설명하는 단일개념으로 적용되어온 IQ 하나로 인간의 무한하고도 다양한 능력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중지능 개발자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
IQ 100년 역사를 저물게 했던 주인공 중 대표적인 다중지능(MI: Multiple Intelligence).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1983년 출간된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마음의 틀: 다중지능(Frames of Mind: The Multiple Intelligences)》에서 일곱 가지 지능을 제시했다.
음악 지능, 신체 지능, 논리수학 지능, 공간 지능, 언어 지능, 인간친화 지능, 자기성찰 지능이 그것이다. 10년이 훌쩍 지나 자연탐색지능을 추가했고, 이후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실존지능을 후보에 올렸다.
뇌 손상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예술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그의 연구는 뇌가 얼마든지 탁월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밝혀냈다. 지능에 대한 이 같은 새로운 개념은 교육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점차 널리 받아들여져 오늘날에는 지적 능력이 획일적이거나 단일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거의 상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다중지능 뿐 아니라, 경영 및 비즈니스 분야에서 부각되었던 EQ(Emotional quotient). 직관, 혁신, 상상, 영감의 4가지 유형을 나누며 혁신적이고 창조적 사고의 중요성을 제시한 CQ(창조지능: Creative Quotient) 등 인간 두뇌능력에 대한 평가는 실로 다양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IQ 세대를 거친 부모들은 여전히 공부를 잘 하면 ‘머리’가 좋다고 말하고, 체육, 음악, 미술 등 분야에 돋보이면 ‘재능’이 높다고 표현한다. 뇌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고착화 되는 순간 인공지능과 공존할 인류 첫 세대와의 소통에 장애가 생긴다.
인간이 가진 두뇌능력을 평가하려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고, 부존자원이 없어 인적자원계발에 국가적 집중도가 대단히 높으며, ‘두뇌강국코리아’란 단어처럼 두뇌능력에 사회적 관심 또한 지대한 나라이니 말이다.
한국은 앞서 얘기한 다양한 지능지수가 대표적으로 가장 활성화된 나라이기도 하다. IQ 검사야 이제는 학교에서 시행하진 않지만, 다중지능검사를 비롯해 각종 심리검사, 영재성 검사를 유아기부터 해보려는 부모들의 관심을 보면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주목할 만한 점도 있다. 2009년 한국 교육과학기술부는 두뇌훈련분야 ‘브레인트레이너’를 국가공인 민간자격으로 승인했다. 브레인트레이너 정의를 보면 “두뇌기능 및 두뇌 특성평가에 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대상자의 두뇌능력 향상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지도할 수 있는 두뇌훈련전문가”라고 되어 있다.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자격검정센터
해외 자격인 BrainGym Instructor/Consultant의 경우 80여개국에 보급되어 학교, 회사, 운동선수들이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정부 차원에서 국가공인 자격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보기 드물다. 두뇌는 인간의 모든 의식 활동과 신체활동을 관장하고 있는 핵심 기관이므로 브레인트레이너의 적용 범위와 활동 영역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제3차 뇌연구촉진 기본계획’의 비전으로 ‘뇌 이해 고도화와 뇌 활용의 시대 진입’을 제시한 것도 눈여겨 볼만 하다. 뇌 연구 촉진 기본계획은 1998년 뇌연구촉진법 제정 이후 관계 부처 합동으로 10년 단위로 이어져 오는 한국형 뇌 연구 마스터플랜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6대 분야로 인간 뇌에 관한 근원적 이해에 도전, 생애주기별 맞춤형 건강 뇌 실현, 뇌원리를 타 분야에 활용하여 융합·지능화 기술 개발, 뇌연구를 통해 사회·문화적 행동에 관한 이해 제고, 공유·융합을 촉진하기 위한 뇌연구 생태계 구축, 기술·창업 중심으로 태동기 뇌산업 육성 등을 제시했다.
제3차 뇌연구촉진 기본계획 마스터플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뇌’가 21세기 미래 키워드라는 점은 명확하다. 1990년대 들어 뇌 대중화 연구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본격화 되면서, 종래 의대에서 뇌 관련 연구를 주도하던 것에서 벗어나 뇌과학, 뇌공학, 신경생물학, 인지과학, 심리학, 교육학 등 다양한 학제간 융합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뇌는 생물학적 기관이나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는 점도 인식하자. 모두가 의사나 뇌과학자, 뇌공학자, 심리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뇌는 누구에게나 있고 모두 자신의 두뇌 기능을 회복하고 발달시키고자 한다. 살아가면서 당면하는 스트레스와 감정충돌, 부정적 습관의 해소 등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길 원하며 잠재된 역량을 높이고자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 나는 나의 뇌를 어떻게 인식하고, 생활 속에서 활용하며, 계발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유엔공보국 NGO 기관인 국제뇌교육협회가 발행한 지속가능성보고서에 이러한 ‘뇌’에 대한 인식 전환을 잘 제시하고 있다.
“과학의 진보가 가져다 준 인간 뇌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은 결국 올바른 뇌의 활용에 있습니다. 인간의 뇌를 연구대상만이 아닌 활용의 대상으로 인지할 때, 인류가 추구하는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열쇠가 우리의 뇌 속에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