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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C Aug 18. 2024


ISTJ 작가의 판타지 소설 집필법

<그림자 마법사들: 사라진 그림자의 비밀> 집필 비하인드 스토리

MBTI 성격 유형으로 한 사람의 성격을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고, 또 같은 사람이라도 성격 유형은 계속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MBTI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는 게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은 ISTJ에 대한 글이기보다는 저의 사적인 집필 경험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제가 소설을 쓰는 방식에 대해 소개하려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저의 성격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시작하는 편이 더 이해가 잘 되실 것 같아서, 이번 글의 주제는 'ISTJ 작가의 판타지 소설 집필법'으로 잡아보았습니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다 소개가 되었지만, 저는 MBTI로 따지면 ISTJ 성격 유형에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현실적이고(S) 이성적이며(T) 체계적인(J) 성격으로 조합되어 있어, 제가 판타지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하면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리고 회사에서도 소설 창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데이터 분석 쪽 직무를 맡아왔기 때문에 저를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들은 평소에 저를 판타지 소설을 쓸 만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도 이전에는 작가라면 누구나 감수성이 풍부하고 상상력이 넘쳐나는 성향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는데요. 직접 소설 집필의 세계에 뛰어들면서부터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충분히 소설을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아직 초보 작가인지라 어떤 소설이 잘 쓴 소설인지는 평가할 단계가 아니라서, 여기에서 '잘 쓸 수 있다'는 그저 작가 개인의 자신감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흔히 생각하시는 상상력과 감성이 풍부한 작가가 아닌 저의 소설 집필 방식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소개해 보려 합니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후이늠' 주제 전시에 영광스럽게도 제 책도 전시되었습니다




S: 현실적인 판타지 세계관

제 성격이 몽상가보다는 현실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인지 판타지 소설을 쓸 때에도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모순적이게도 '현실성'입니다. 판타지이면서 현실적이어야 하다니,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죠. 물론 판타지 장르이다 보니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이 현실적이기는 어렵지만, 저는 전체적으로는 허구의 내용이더라도 중간중간 현실적인 디테일이 들어가는 편을 좋아합니다. 특히 제가 현실적인 요소를 섞어 내려고 노력한 주요 부분들은 다음과 같아요. 


1. 장소

철저히 취향의 영역일 수 있지만, 저는 늘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는 판타지 세계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실과 연결성이 있어야 더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저의 '그림자 마법사들' 세계관을 만들 때에도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 사이사이로 허구의 공간을 채워 넣는 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싱가포르의 센토사 섬 어딘가의 별장,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펜트하우스, 캘리포니아 요세미티에 있는 미러 레이크.... 이런 공간들 틈에 '섀드'라는 마법사들의 이야기를 엮어 넣었죠. 그리고 해당 장소를 실제로 알고 계시는 분들 입장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으면 해서 일부러 제가 잘 모르는 장소는 거의 등장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아주 오래전에 가본 장소라면 제 기억 속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다를 수 있어서... 아쉽게도 괴리가 살짝 느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ㅜㅜ)


2. 인물의 이름

이건 사실 티가 나는 부분은 아니라서 저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목적이 큰데, 저는 인물의 이름을 지을 때에도 최대한 현실에 있을 법한 이름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는데요. 특히 인물마다 어떤 배경을 가진 인물인지 생각하면서 이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자 마법사들: 사라진 그림자의 배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루카스(Lucas)와 조슈아(Joshua) 형제가 있는데, 이들의 경우 형제 관계이다 보니 작명 스타일에 통일성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둘 다 크리스천 계열의 이름으로 맞췄습니다. 또한, 프랑스계 설정의 인물에게는 '아르망(Armand)'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독일계 인물에게는 '엔데(Ende)'라는 성을 붙이는 식으로 국가적 배경과 이름 사이에 위화감이 없도록 신경 쓰기도 했고요.


3. 마법에 대한 묘사

'마법'이야말로 현실성의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 단어인 듯하지만, 저는 '그림자 마법사들' 세계관에 등장하는 마법을 창조할 때에도 어느 정도 현실의 요소들을 섞었습니다. (사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제 성향상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요소들이 섞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현실적인 요소가 섞인 상상력'을 'S적인 상상력'이라고 부른다면, 제 생각에 그 반대라고도 할 수 있는 'N적인 상상력'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웡카(Wonka)>에 나오는 초콜릿 중에서는 농축 뇌운(condensed thundercloud)과 액상 햇살(liquid sun light)을 넣어 만드는 'Silver Lining'이라는 초콜릿이 있는데요. 제 생각에는 이런 상상이 'N적인 상상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요소들의 결합이라 그런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진달까요. 

반면 저는 이런 식으로는 상상력이 잘 발동하지 않아서, 제 소설 속 마법 레시피는 보다 현실적인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가지 예시로, 그림자 이동술에 사용되는 '이븐프림 오일'이라는 마법약에는 달맞이꽃 종자유, 레몬그라스, 하얀 담비의 털과 같은 재료들이 사용된다고 설정해 두었죠. 그림자 분리에 사용되는 '섀도우-나이프'라는 도구에 '작고 예리한 은빛 페이퍼나이프 같은 형태'라는 묘사가 따라오듯, 새로운 마법 도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에 비견하며 설명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렇듯 제 소설은 판타지 장르면서도 저의 현실적인 성향이 많이 가미되어 있보니, 읽으시는 분에 따라 '현실적인 요소들과 구체적인 표현 덕분에 이해가 잘 된다' 혹은 '너무 설정이 디테일하고 설명이 상세해서 오히려 취향이 아니다'라고 평이 갈릴 수도 있는데요. 저처럼 현실에 뿌리를 두고 상상력을 뻗어나가는 편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취향에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곳 중 하나인 뉴욕, 로어 맨해튼 (이미지 출처: Unsplash, Zoshua Colah)


T: 사건과 해결로 구성되는 이야기

사고형(T) 성향이라 그런지 저는 소설을 쓸 때에도 사람들 간의 관계나 감정에 초점을 맞춘 내용보다는 '사건'과 '해결'로 구성되는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어릴 때부터 즐겨 읽었던 장르가 판타지와 미스터리 장르이기 때문에 성격보다는 과거 경험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요.

아무튼, 그래서 <그림자 마법사들> 시리즈도 판타지 소설이기는 하지만 어떠한 큰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에 대한 실마리가 풀려나가는 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직 1권밖에 발간하지는 않았지만 시리즈 전체적으로도 큰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나갈 예정이고, 각 권 안에서도 사건-해결 구조를 작게나마 가져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제 소설은 감정과 관계에 대한 세밀한 묘사보다는 굵직한 사건의 전개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깔끔하고 빠른 전개, 그리고 똑똑한 주인공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 감수성 풍부한 소설에 푹 젖고 싶은 분들에게는 매력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감성'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감성적인 성향의 지인들에게 최대한 많은 피드백을 받으며 소설을 완성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께서 두루 즐겨주시면 더 좋겠네요! :) 



J: 성실한 집필 루틴

저는 창의적인 상상이 언제나 뿜어져 나오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보다는 성실하게 정해진 계획에 맞춰 상상력을 발동하는 식으로 소설을 쓰곤 합니다. 이전의 저는 작가라면 보통 어느 날 문득 기발한 소재가 떠올라 정신없이 그 내용을 써 내려가는 식으로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물론 실제로 이런 식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의 경우 일단 써야지, 하고 마음먹은 후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소재가 천천히 떠오를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일주일에 몇 페이지를 쓸지 계획을 미리 세워둔 후, 영감이 떠오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일단 그 분량을 채우는 식으로 작업하곤 하죠. 저는 오히려 이렇게 일단 무작정 글을 쓰다 보면 괜찮은 내용이 생각나는 경우가 많더군요. 

제 지인 분들은 저의 집필 스타일을 '무라카미 하루키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물론 저는 아직 무라카미 하루키 님과 같은 세계적인 작가 분과 비견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영감이 떠오를 때 위주로 집중 작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에 맞춰 꾸준히 글을 쓰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는 조금 비슷한 것도 같습니다. 저는 전업 작가는 아니라서 매일 꾸준히 몇 시간씩 쓰기보다는 저녁 시간 일부와 주말 위주로 작업한다는 점은 다르지만요.

아무튼 저도 이렇게 계획과 성실함을 무기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으니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 님과 같은 세계적인 인기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지금은 '그림자 마법사들' 시리즈의 2편을 집필 중인데, 1편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더욱 흥미로운 내용을 선사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으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저는 실제로 스케줄러를 매우 열심히 사용한답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Renáta-Adrienn)




저의 집필 기록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그림자 마법사들 시리즈의 시작인 <그림자 마법사들: 사라진 그림자의 비밀>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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