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시리즈 '그림자 마법사들' 창작 비하인드
저는 '그림자 마법사들'이라는 판타지 시리즈물을 집필하고 있는 소설가입니다. 글을 쓰고 계시거나 글을 쓰는 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세상에 참 많으실 텐데, 아마 '시리즈 소설'이라는 독특한 길을 선택하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제가 시리즈물을 기획하고 집필한 경험을 공유해 보려 합니다.
1권을 쓸 때부터 "왜 굳이 첫 작품부터 시리즈로 쓰려고 한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사실 이에 대한 거창한 답이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게 된 건 모두 어린 시절 푹 빠져서 즐겁게 읽었던 소설의 영향이기에, 자연스럽게 '해리 포터'나 '나니아 연대기',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등과 같이 거대한 세계관에서 차근차근 내용을 쌓아나가는 판타지 시리즈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샌가 제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 제 머릿속에 떠올랐던 소재 자체가 너무나 시리즈물에 적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리즈 소설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는데요. 만약 한 권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면 첫 소설이니만큼 당연히 저도 한 권으로 끝내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림자 마법'이라는 아이디어는 한 권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든 길이 될 거라 예상하면서도 시리즈 소설로 기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제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한 권으로 축약해 담기에는 너무 거창한 세계관과 줄거리라는 데에 동의하실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시리즈 소설의 매력은 '상상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권으로 내용을 끝내려고 하면 아무래도 세계관이나 사건을 설계할 때 제약이 많을 텐데, 특히 판타지 장르라면 시리즈물로 기획하는 경우에 세계관을 훨씬 넓고 방대하게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저 역시 시리즈물로 가기로 결정하면서 '그림자 마법사들'의 세계관을 마음껏 넓힐 수 있었기에 원하는 만큼 상상을 펼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 사건 자체도 시리즈물인 덕분에 훨씬 규모를 키워서 반대 세력과의 거대한 이념 대결 구도로 갈 수 있었고요.
하지만 시리즈물만의 고충도 분명히 존재하는데요. 일단 '상상에 제한이 없다'는 장점은 뒤집어 생각하면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2권, 3권으로 이어갈 만한 거대한 세계관과 사건이 없다면 시리즈물은 성립하지 못하니까요. 그렇기에 시리즈 소설을 쓴다는 건 첫 기획 단계에서부터 치열한 고민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힘든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물로 구상한 거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어 담을지 계획하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각각의 책이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각 권 안에서의 작은 기승전결도 필요하죠. 2권, 3권은 1권과 이어지면서도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차별화되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저도 1권보다 2권을 쓸 때 더 고민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3권은 지금 진행 중인데, 역시나 치열한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ㅠㅠ)
그렇다면 제 소설 시리즈 '그림자 마법사들'이 어떤 식으로 설계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일단 1권은 백지상태에서 기본 설정을 쌓아 올리는 단계이기에 제가 창조한 세계관과 인물, 그리고 사건에 대해 자연스럽고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소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처음에 기억을 잃고 깨어났다는 설정을 넣어서 주인공이 독자들과 함께 '섀드'라 불리는 그림자 마법사들의 세계를 하나씩 파헤쳐나가도록 설정했죠. 그리고 주인공이 자기 자신과 그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요 인물들을 만나고, 시리즈를 관통할 거대한 사건의 첫 단추를 발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설명만 늘어놓다 끝나는 느낌이 나지 않도록 중후반부에는 큰 반전과 함께 1권 만의 작은 사건과 그 사건의 해결 과정을 넣어 1권만으로도 재미와 쾌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했고요.
이어지는 2권에서도 1권과 비슷하게, 시리즈의 큰 줄기는 이어가면서도 한 권만으로도 완결성 있는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중심 줄거리와 핵심 사건은 독립적으로 구성했는데요. 1권에서 이미 세계관과 인물에 대한 소개를 많이 깔아 두었다 보니 2권은 초반부터 더 속도감 있게 악당 일당에 대한 수사 과정이 전개될 수 있어, 1권보다 추리 요소가 두드러집니다. 마지막의 갈등 및 해소 과정도 1권에 비해 규모가 커졌고요. 그리고 단순히 1권의 내용과 구조를 반복하는 식으로는 독자분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2권에서는 1권에 나오지 않았던 악당의 과거와 구체적인 목표, 그리고 그와 관련된 또 다른 단체('마르세유의 비밀 조직')에 대한 내용을 등장시키며 사건을 확장시켰습니다. 정리하자면 1권은 이어지는 시리즈에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위해 기반을 잘 다지는 과정이었다면, 2권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더 깊어진 미스테리와 전투를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의 규모를 키워놓은 후 3권에서 모든 비밀과 갈등이 해소되며 마무리 국면에 접어드는 걸로 계획했는데요. 제 소설은 3부작 기획이기 때문에 3권에서는 이제까지 쌓아온 대결 구도를 폭발시킨 후 모든 복선을 회수하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죠.
1권: 세계관과 인물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사건이 시작됨
2권: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이 본격화되며, 새로운 정보들이 발견되고 주인공이 성장함
3권: 쌓아온 이야기가 절정에 달하며 폭발. 앞서 등장한 복선이 모두 회수되고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사건이 마무리됨
(*아직 3권은 진행 중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시리즈를 완전히 마무리한 후에도 한번 후기를 남겨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리즈 소설을 집필하며 제가 특히 신경 쓴 부분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물론 독자분들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이야기 자체를 재미있게 쌓아나가는 게 가장 핵심적이지만, 작업하는 작가 입장에서는 설정을 잘 관리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즈로 이어지는 소설인데 만약 2권에서 1권과 조금이라도 설정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독자분들은 금방 혼란스러워질 테고, 1권을 기반으로 점점 확장되는 이야기에 안정적으로 집중하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하지만 저도 기억력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라서 모든 요소들을 다 100% 외워서 글을 쓸 수는 없었고, 그래서 기억에 의존하는 대신 문서에 기록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아래와 같이 여러 설정을 주제별로 분류해 꼼꼼히 정리해 놓고 이를 참고하면서 글을 써 내려갔죠. 특히 제 소설은 마법 판타지 소설이다 보니, 타임라인이나 인물, 배경 정보뿐 아니라 마법과 세계관에 대한 설정들도 헷갈리지 않기 위해 노력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타임라인
등장인물 정보
등장하는 배경들
섀드 세계관의 주요 설정들
마법 및 섀드 물건에 대한 설정들
게다가 소설을 출판하기 전까지는 계속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설정을 바꾸거나 추가하고, 혹은 없애기도 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문서를 계속해서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은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2권, 3권을 이어서 집필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1권의 설정과 달라지거나 하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런 부분을 독자분들이 오히려 작가보다 훨씬 민감하게 느끼실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리즈물을 작업할 때는 이러한 기록 관리가 너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판타지 소설 시리즈의 작가로서 저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시리즈로 소설을 쓴다는 건 꽤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한편으로 다른 일을 할 때와는 또 다른 만족감과 성취감을 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창 바쁠 때는 평일 저녁과 주말 시간을 모두 헌납해 끙끙거리며 힘들게 글을 쓰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아, 내가 정말로 예전에는 꿈만 꾸던 판타지 시리즈 작가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을 따뜻하게 채우는 기쁨을 느끼곤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최대한 열심히 이 길을 걸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