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천국 - 인도
‘아내가 채식하기 전까지 나는 아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첫 대사입니다. 주인공인 영혜가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만 하는 것에 대해 남편의 관점에서 쓴 소설입니다. 가부장적 제도와 남성우월주의의 거대한 권력을 육식에 결부시켜 고기를 모두 버리고 채식으로 살아가는 영혜의 이야기입니다. 인도에 오기 전까지는 채식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채식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한두 명 있었지만, 음식은 개인의 취향이자 선택의 문제이고 나라마다 독특한 식문화 전통이 있어 다름만 있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채식주의가 개인적인 취향이고 보편적이지 않다면, 인도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즐기고 다양한 선택을 할수 있는 채식의 천국으로 보여집니다.
통계에 따르면 인도 사람들의 대략 20~35%정도가 채식주의자라고 합니다. 식당에 가면 메뉴판의 색깔이나 글씨가 녹색과 붉은색으로 나누어집니다. 녹색은 베지(vegi), 붉은 색은 넌베지(non-vegi)로 표기됩니다. 스프, 햄버거, 스파게티 등등 모든 음식들이 베지와 넌베지로 표기됩니다. 음식점의 메뉴판 이외의 가공식품에도 색상에 따른 표기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FSSAI(Food Safety and Standards of India)에서 관련 법령을 만들고 허가를 해주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가 된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 가공 식품이 고기 육수와 분말스프에 있는 고기성분의 함량 표시문제로 인해 인도진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대표상품인 초코파이 안에 있는 마시멜로에도 고기성분이 있어 인도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도에 진출하기 위하여 현지공장을 세우고 별도의 재료로 마시멜로를 개발해서 생산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퓨어베지(Pure Vegi)를 취급하는 음식점도 있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인도 직원들과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메뉴선정에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김치가 채식이라고 하지만, 젓갈인 수산물이기 들어가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잔치국수 육수를 멸치나 사골로 맛을 내는 경우는 국물 맛을 보고 얼굴 표정이 바뀌기도 합니다. 김밥도 야채김밥은 베지이지만, 치즈김밥은 넌베지로 분류를 하다보면 한국음식을 베지냐 넌베지냐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어떤 시람들은 건강상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로 100% 채식을 하는 분들도 있고, 일부는 집안의 규율에 따라 채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요일별 선택적 채식, 즉 일주일에 특정요일만 고기를 금지하는 경우도 있어 채식을 상황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가끔 인도식당에서 샐러드나 햄버거 등을 베지로 먹는 경우가 있는데 나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았습니다.
저도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인도에서 채식주의의 끝판왕은 자이나 교도가 아닌가 합니다. 자이나교는 기원전 5~6세기 경 마하비라(출가 이전 이름 '바르다마나')로부터 시작되어 ‘라샤바’라는 사람이 창시를 하였고, 이후 23명의 자이나교 교주들의 노력으로 완전히 깨달은 자를 지나((Jina)라고 하여 지금의 자이나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당근이나 무 등 뿌리식물을 뽑을 때 벌레가 죽거나 다칠 우려가 있어 과일이나 잎만 먹는다고 합니다. 아울러 생수도 살아있는 균이 있어 끓인 물만 먹는다고 합니다. 자이나교가 '아힘사' 즉, 불살생의 계율을 중시하는 것은 죽음이야말로 엄청난 고통이며, 만약 함부로 다른 생물을 죽이게 된다면 그 생물들이 고통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인 이들을 미워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이나교는 만약 생물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어 그 생물에게 미움을 받게 되면, 그 미움이 카르마(業)를 무겁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업을 정할 때도 나무를 베거나 식물을 채취하는 직업은 살생하는 직업인 관계로 선택하지 못하게 하여 살생과 관련이 없는 물건을 팔거나 상인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채식과 관련된 논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유제품에 대한 기준입니다. 보통 소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우유에서 파생된 치즈 등은 베지로 분류할까요, 넌베지로 분류할까요? 이보다 먼저 계란은 베지일까요? 넌베지일까요? 계란은 온도만 잘 유지하면 병아리로 부화하니까 넌베지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수정유무에 따라서 수정된 계란만 넌베지로 분류를 해야 할까요? 인도에서는 주로 우유나 우유를 가공한 치즈 등은 아힘사(불생살)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채식하는 사람들이 섭취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계란이나 동물의 알 등은 향후 생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육식으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지난 21년 인도 구자라트(모디 총리 고향)에서는 길거리에서 계란음식을 금지하고 경찰들이 단속을 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아래 표를 보면 락토와 오보의 차이가 달걀 등 동물의 알과 유제품을 먹고 안 먹고의 기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인도에서는 힌두이즘의 발달로 소고기뿐 만 아니라 계란을 먹는 것도 육식으로 간주합니다. 계란을 먹는 경우 영혼의 진보에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일부 보수 힌두교도들이 채식만이 문명화된 식사라고 여기고, 시민들에게 육식을 강제로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지만, 정치적으로는 무언가 의도를 내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음주문화와 마찬가지로 주정부의 정책에 따라 음식에 대한 정책도 다양합니다.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에 위치한 푸쉬카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푸쉬카르는 ‘파란색 연꽃’을 의미하며, 매년 11월 낙타 축제가 개최됩니다. 지상 최대의 동물 축제로 인도는 물론 전 세계의 수백만 관광객들이 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 든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낙타 축제 외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또다른 이유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채식만 하는 도시라는 것입니다. 모든 요리는 오직 채소와 향신료 등의 채식 식재료만으로 만들어집니다. 오랜 채식의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옛날부터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했고, 특별하고 독창적인 요리가 많아서 인도 최고 미식 도시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고기가 없는 대신, 감자와 콩을 이용하여 고기의 질감과 식감을 그대로 느낄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인도 음식뿐만 아니라 버거, 양식, 티베트 음식 등 다양한 세계 각국의 요리를 오직 야채로 완벽한 맛을 구현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떤 원칙을 지니되 다양성을 가지고 채식을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 21.8월 델리 소재 하리아나주 정부에서는 자이나교 축제기간동안 관할구역내의 모든 고기집을 9일동안 문을 닫게 한 공고문을 내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자이나교도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과 주정부의 공고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같지만, 실제로는 종교적 우월론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루도 아닌 일주일 동안 이런 명령을 내리는 주정부 당국이나, 이것을 따르는 정육점 사장님들의 태도를 보면서 인도의 또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채식의 또 다른 단면은 바로 비만입니다. 채식주의자가 많은데 뚱뚱한 사람이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궁금했습니다. 한 번은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옆 좌석의 인도 사람이 배가 나오고 뚱뚱해서 좌석이 꽉차고 배가 앞좌석 테이블까지 나와 간신히 앉으며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채식주의자가 많기는 하지만 인도의 식습관과 조리방법에 따라 고도의 비만도 많다고 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지만 주로 과다한 탄수화물과 튀기는 음식에 들어가는 트랜스 지방이 많이 늘어나서 비만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략 저녁 6시나 7시부터 식사를 하고 대부분 9시 이전에 식사를 마칩니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9시 이후에 만나서 11시에 밥을 먹고 새벽 1시에 헤어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유명한 한국식당의 경우에는 한국사람들이 1차로 저녁을 먹고 정리하면, 그 다음에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인도사람들이 2차를 한다고 합니다. 또 우리나라도 70, 80년대 배가 나온 사람들을 사장님이라며 유복의 상징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불룩한 배가 인도인들도 부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유층들이나 젊은 층들을 대상으로 날씬한 몸매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추구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도 채식주의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종교적, 영적인 이유로 특정 힌두교와 자이나 교도들에 의하여 꾸준히 계승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채식주의와 육식주의의 논쟁에 관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가진 복잡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윤리적, 환경적,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주의자나 채식주의자의 식단을 따르는 것을 선택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 전통 또는 식단 선호의 일부로 고기와 동물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먹거리의 다양성과 건강 증진을 위한 배려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쪽 모두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고, 개인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자신이 먹는 것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 결말은 조금 씁쓸합니다. 주인공 영혜는 남편과 자기 동생의 불륜으로 충격을 받고(2부 몽고반점), 마지막에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정신병원에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3부 나무불꽃) 기존 질서와 욕망을 거부하는 채식이 아니라 본인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유로운 선택의 범위에서 채식문화가 더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2023년 3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