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부장적인 나라- 인도
지난 3월 8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더 나은 근로 조건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이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1910년 덴마크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 여성회의에서 매년 여성의 권리를 기리는 날을 만들기로 결정하였고, 1975년 유엔(UN)이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였습니다. 인도 여성의 인권은 참혹합니다. 인도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화물차나 오토릭샤 뒷면에 बेटी बचाओ बेटी पढ़ाओ(베띠 바짜오, 베띠 파라오)라는 문구를 보게 됩니다. 이는 힌디어로 "딸을 보호하고, 딸을 교육시키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문구는 2015년 인도 정부가 여성 인권 증진과 성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캠페인의 슬로건입니다.
지난 2022년 10월, 인도 세관 공무원을 한국에 초청하여 4주간 무료 연수를 제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간 여자 세관 직원은 감사를 표하며 한국 여성 인권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 여성들의 활기찬 모습이 매우 부러웠다며, 여성 인권이 발전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는 한국도 과거에는 인도와 비슷한 환경이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 제정되고 교육이 강화되면서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있지만, 용기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인도도 머지않아 개선될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그 인도 세관 직원의 결연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실제 인도에서 3년 넘게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인도 사회가 철저한 남성 우선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인도 사람들과 집을 계약하거나 물건을 살 때, 심지어 기사에게 지시를 할 때도 남자인 제가 하는 것과 아내가 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마치 DNA에 여성을 무시하는 코드가 새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든 남자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후손을 이어가려면 남녀의 역할이 필요한데 말입니다.
[인도의 여성인권이 열악한 이유]
인도의 여성 인권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정 원인을 콕 집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전통이 주요 원인일 것입니다. 그 시작은 고대 마누 법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인도 국민의 90% 이상이 믿는 마누 법전은 여성의 역할을 남성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차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는 카스트 제도 역시 여성 차별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남아 선호 사상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 구조도 여전히 강합니다. 여성은 가족의 재산이 아닌 시댁의 재산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여성의 경제활동도 제한되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인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4%로 남성(77%)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델리 인근 골프장에서는 캐디가 모두 남성입니다(여성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노동 시장에서도 여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최근까지도 일부 시골에서는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를 강제로 화장하는 전통인 사티(sati)가 있었고, 남편이 사망한 여성은 머리를 빡빡 밀고 재혼을 금지했습니다.
특히 결혼할 때 신부가 지참금(dowry)을 가져가는 문화가 있습니다. 2019년 델리에서 한 신부가 지참금을 더 요구한 남편 측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가족에게 폭행을 당하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종교에서도 이러한 차별은 존재합니다. 일부 종교적 교리에 의해 여성의 외출이나 교육이 제한되는 경우가 여전히 있습니다. 힌두교가 오랜 전통을 가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가부장제와 남성 위주 문화를 견고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여성 인권 발전 과정]
인도의 여성 인권 현실을 보며 한국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구조로 보면 인도가 훨씬 뒤처져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별 후 또는 교제 중에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거나 폭행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고, 심지어 여성의 부모까지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군대 내에서 여성 하사관이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 발언과 성희롱, 외모 비하도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조선 건국 당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처럼 남녀의 접촉을 엄격히 제한하고 유교 중심의 남성 우선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며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은 이해되지만, 여성을 억압하여 사회를 통제하려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확대되었고, 1970~80년대 여성 운동을 기점으로 법적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1998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2005년 호주제 폐지, 2018년 미투 운동과 관련된 성범죄 처벌 강화 등이 주요한 변화로 꼽힙니다. 한국은 약 600년 전에 형성된 양성 차별 문화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600년 전의 전통과 싸우고 있지만, 인도는 4천 년 동안 형성된 차별의 역사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여성운동과 활동가]
최근 인도에서도 이러한 여성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을 겪은 후 사람들이 인식을 개선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이슬람 관습 중 하나인 ‘트리플 탈락(Triple Talaq)’과 관련된 소송입니다. 트리플 탈락은 남편이 ‘탈락(Talaq, 이혼)’을 세 번 선언하면 즉시 이혼이 성립되는 제도입니다. 무슬림 여성 샤비아 이맘을 비롯한 피해 여성들이 이 관습이 차별적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 인도 대법원은 트리플 탈락을 위헌으로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인도의 종교적 전통 속에서 여성이 차별받아온 현실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사바리말라 사원 입장 금지 철폐 운동입니다. 인도 케랄라주의 사바리말라 사원은 생리 중인 여성(10~50세)의 출입을 금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성 권익 단체들과 활동가들이 이러한 금지가 성차별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2018년 인도 대법원은 여성의 사원 출입 금지를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여성의 종교적 평등권을 강화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12년 델리 시내 버스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입니다. 2012년 12월, 23세 여대생이 델리에서 남자 친구와 귀가하던 중 버스 안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결국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인도 전역에서 대규모 항의를 촉발시켰으며, 여성 안전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인도 정부는 강간 및 성폭력 처벌을 강화하는 ‘니르브하야 법(Nirbhaya Act)’을 제정하고, 여성 보호를 위한 정책을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여성 운동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카말라 바산(Kamla Bhasin, 1946–2021)은 양성평등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고, One Billion Rising 운동을 인도에서 주도하며 성폭력 반대 캠페인을 확산시켰습니다. 마니시 프라단(Manasi Pradhan, 1957– )은 "Honour for Women" 국제 캠페인 창립자로, 2014년 Nirbhaya Vahini(여성 안전 병력)를 구성해 지역 사회의 성범죄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여성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인도 여성 운동가 폴란 데비(Phoolan Devi, 1963년 8월 10일 ~ 2001년 7월 25일)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밴디트 퀸(산적 여왕)'도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성폭력과 결혼 생활에서의 학대 등 끔찍한 경험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위 카스트 여성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노력했으며,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현실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활동했습니다. 폴란 데비는 인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변화를 촉구한 인물로,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시작으로 한 달 살이 소재를 정하고 나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인도 여성들의 처참한 인권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현지 직원들에게 듣고 사례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성 인권 문제는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긴 역사와 비극적인 사건들을 접하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특히 운명(카르마)과 숙명(다르마)에 얽매여 이를 수용하는 삶의 방식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한 달 내내 불편했던 마음은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나서야 조금 풀렸습니다. 남녀의 대립이 아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제 모습과 난관을 극복하는 자식들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금 양창식의 긴 삶속에서 차별은 있을 수가 없었고 사랑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아주 많이 받고, 아주 작은 걸로 퉁이 되는 사이...
(금명이가 부모님한테 많은 사랑을 받고 돌아가면서 자신의 임신 초음파 사진을 남기고 가면서 하는 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인데, 왜 우리는 남녀로 편을 나누어 싸워야 하는지,
세상에는 아름다운 모습도 많은데 인도는 왜 아직 그런지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늘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끝.
2025년 3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