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길

by 최윤형

당신은 진정한 어른인가?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

모두가 서로 다른 꿈을 꾸던 어린 시절, 당신이 그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쓴, 그 낡은 종이 위의 꿈은 무엇이었나. 그 꿈은 어쩌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미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직업이 아니라, 단지 무엇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한낱 동사로만 남아있던 그 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꿈은 점점 굳어지고,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선생님들은 구체적인 명사로 적힌 꿈을 좋아했고, 부모님은 당신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꿈을 안정적이라며 반겼다. 아이의 꿈이 ‘의사’나 ‘공무원’ 일 때 어른들은 안심했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나 ‘여행자’ 일 때는 어딘가 불편한 눈빛을 보이곤 했다.


한국에는 무채색의 자동차가 유독 많다고 한다. 은색, 검은색, 그리고 하얀색. 거리마다 흰 차와 검은 차가 줄지어 달리고, 간혹 보이는 파란색이나 빨간색은 눈에 띨 정도로 드물다. 당신의 자동차는 무슨 색인가. 당신이라면 무슨 색의 자동차를 선택하겠는가.


단지 실용성과 무난함을 선택했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집단적 기호가 존재하는 것 같다.

튀는 것을 두려워하고, 눈에 띄는 것을 경계하는 한국인의 정서는 이런 사소한 선택 속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꿈까지도 그렇게 점점 평범하고 안전한 쪽으로 밀려나 버린 건 아닐까.


‘한민족’이라는 강한 정체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나만의 색을 주장하는 일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개인의 다름은 공동체를 해치는 불협화음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다르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새로운 세대가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순간, ‘요즘 애들’이라는 말로 싸잡혀 조롱당하기도 한다. ‘MZ세대’라는 이름조차, 때로는 낯선 것을 설명하고 통제하기 위한 기성세대의 프레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텍쥐페리는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쩌면 꿈조차 수치화하고 정형화된 틀에 넣어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시절 보았던 그 그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모자라고 믿었던 순간부터, 혹은 다른 이들이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믿은 순간부터, 우리는 어쩌면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잃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구체적인 숫자와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어른의 시선’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꿈을 함께 키워가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자신들이 정해놓은 길로 몰아넣는 존재가 될 때, 우리는 그들을 ‘따라야 할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연 진짜 어른은 누구이며,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결국, 이 단조로운 사회 속에서 변화를 만들고, 잃어버린 꿈을 되찾고, 저마다의 색을 드러내는 일은 누가 해야 하는 걸까.

기성세대가 바꿔야 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자신부터, 지금 이 질문을 던지는 우리부터 변화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당신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그 꿈은 여전히 당신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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