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나이테를 본 적이 있는가?
과학 시간에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나무의 줄기를 자르면 안쪽에 동심원 형태의 고리가 나타나고, 그 고리를 세면 나무가 살아온 햇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나이테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계절과 기후, 생장 속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이 나이테를 확인하려면 반드시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은 그들의 상태에서는 나무의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나무가 쓰러져야 비로소 그 내부의 기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건 자연스러운 사실이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다. 생명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그 생명을 멈춰야만 하는 상황.
도시의 길을 걷다 보면 늘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가로수를 볼 수 있다. 그들은 매년 가지치기를 받으며 제 모습을 유지하고, 계절마다 잎을 피우고 떨군다. 하지만 밑동만 남은 가로수는 드물다. 나무는 함부로 베면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는 걸까.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사람도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그가 살아온 삶의 과정을 알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은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말수가 적다고 해서 별일 없이 살아온 것이 아니고, 늘 웃는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감정 표현이 적다고 무던하다고 여겨지고, 어떤 사람은 자주 웃는다고 단순하게 해석된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언제나 단편적이다.
한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무너졌을 때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며 드러나는 태도나 말, 행동 속에서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이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치 나무를 베었을 때 비로소 나이테가 보이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힘들 때 드러나는 감정과 상처, 그 반응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나무를 베는 것에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약점을 쉽게 드러내려 하고,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평가하는 일이 흔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속사정을 단정 지어버리는 태도 역시 그중 하나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굴기도 한다.
나무의 생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무너진 후에야 드러나는 것들을 기다리기보다, 쓰러지기 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그 사람의 ‘나이테’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일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말투, 행동, 표정 속에 그 흔적은 분명 존재한다. 그걸 포착해 내는 능력은 단순한 관찰력보다는 태도의 문제다. 존중과 이해의 태도, 그게 먼저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여전히 그 속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사람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그가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런 말이 떠오른다. “당신이 이유 없이 비난받고 있다면, 당신은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