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끝없이 먼 이야기

by 최윤형

마지막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우리는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마주했고,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이별을 말했다. 그리고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맞잡았던 손은, 어느 순간부터 다시는 잡을 수 없는 환상이 되었다.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작별의 순간도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평소처럼 각자의 길로 걸어갔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마지막이 지나갔다. 우리는 마지막을 지나치고서야 그날이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허무함과 아쉬움이 뒤늦게 밀려왔다.


생각해 본다. 만약 마지막이라는 것이 예고되고, 알려질 수 있다면 어땠을까?

“오늘이 마지막이야. 오늘이 끝이야.”

그렇게 말해줬다면, 나는 그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을 것이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진심을 담아 바라보았을 것이다. 함께 있는 그 시간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조금 더 무게를 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올 이별 앞에서도, 어쩌면 조금은 덜 초라하고, 조금은 덜 미련을 남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이 마지막임을 알고 나서야 우리는 그 사람을 조금 더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그제야 그 사람의 웃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 눈빛이 얼마나 나를 이해하려 했는지, 그 작은 배려들이 얼마나 나를 지탱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밀려올 때마다 한 가지 의문에 부딪힌다. 나는 과연 성실하게 사랑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던가?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그 순간에는 그렇게 무심했을까. 왜 항상 지나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걸까.


우리는 왜 항상 아쉬움을 남긴 채 하루를 마무리할까? 왜 늘 ‘내일’을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을 흘려보낼까? 지금 이 대화가 마지막이라면, 지금 이 만남이 끝이라면, 나는 지금처럼 그렇게 허투루 굴 수 있을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목소리로 말하고, 어떤 태도로 그 사람을 바라볼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쩌면 늘 ‘다음’이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건 아닐까. 다음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지금을 소홀히 대하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자고 해도, 마지막이라는 건 언제나 그 여유를 앗아가 버린다.

마지막 동행이라는 단어 속에는 시간이 멈추는 듯한 정적이 있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그 길 위에서, 더 이상 나란히 걷는 발걸음을 들을 수 없다는 예고 없는 선언이 있다. 그런 선언 앞에서 사람은 쉽게 무너지고, 흔들리고, 말없이 눈물만 삼키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이 되었을 때야말로,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고. 졸업식 날, 우리는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복도를 한 번 더 돌아보고, 학교 담벼락에 붙은 낙엽 하나까지 눈에 담으려 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비로소 ‘지금’에 집중하게 된다. 더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 앞에서, 결국 사람은 지금이라는 시간의 고요와 의미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언제나 한 발 늦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비슷한 후회를 반복한다. 다음에는 더 잘해보자고, 다음에는 좀 더 진심을 다해보자고 다짐하지만, 또다시 우리는 무심한 평범함 속에 숨어버린다.


이별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게 찾아온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그 잔인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나는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다. 마지막이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진심도 예고 없이 흘러가 버릴 수 있다는 걸, 그럼에도 오늘이라는 하루에 조금 더 마음을 담아야겠다는 걸, 나는 이 글을 쓰며 다시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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