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업데이트

by 최윤형

잊히는 순간 사라진다


결국 잊힐 것들이 대부분인 삶에서 그럼에도 우리가 놓아주지 못하는 것들은 얼마나 넓은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눈으로만 담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했을 때, 두 눈으로 담기에 벅차서 우리는 익숙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그 믿기 어려운 광경으로 렌즈를 돌린다. 기억은 영원하지 못하니,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영원토록 보관할 셈인가.


그러나, 갤러리에 쌓여가는 지난날들의 기억과 추억 -그 믿지 못할 광경-은 얼마 큼의 시간이 지나면 휴대전화의 저장공간만 차지해 휴지통으로 아니, 휴지통에서도 지워져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얼마나 안타까운 순간인가. 믿지 못할 광경이었던 어느 날의 그 기억이 두 번에 거쳐 사라져 버릴 때, 그 사진을 삭제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날의 기억은 어쩌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도 없는 순간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베란다 한 구석에 쌓아놓았던 뽀얗게 먼지 쌓인 일기장. 1학년 6반 14번이었던 내가 쓴 그 짧은 일기, 날씨마저 기록된 그날은 얼마나 기억할만한 하루였기에, 여전히 남아있던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않는 지금,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하고자 남기는 것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결국 잊힐 것이라지만, 사소한 행사로, 때로는 국가적인 추모로 기억하는 그날과 그 사건들을 우리는 언제쯤 놓아줄 수 있을까.


밥상에 함께 앉아 웃으면서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이 되었다면, 조금씩 변질되는 그 오래 전의 기억일 뿐이라면, 그렇게 웃어넘길 수 있는 기억이라면, 소소한 안줏거리가 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일 뿐이라면.


휴대전화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라는 소식에 업데이트 버튼을 터치했지만, 용량이 부족해 당장은 업데이트를 할 수 없다는 문구를 보았다. 내 휴대전화 용량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던 갤러리.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지만,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는 습관이 없어서 용량을 많이 차지해버렸나 보다.


스크롤을 길게 올려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돌아가보면, -아 그래, 이런 적이 있었지- 낙하산을 매고 하늘을 날았었지. -아 그래, 이런 적도 있었어- 제주도로 친구와 여행을 갔었어. -아 맞아, 재작년에는 호주를 갔었지- 호주를 여행했던 당시 모든 것은 그림 같았어.


다시 일상에 내려앉은 지금 모두 사소하게 잊힌, 혹은 구석에 자리 잡은 기억이 되었지만. 내가 떠올리고 있다면, 너도 날 떠올리고 있을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 가벼운 기억으로 남겨야 할 것들을 데리고 나와 세상의 빛을 보게 해주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은, 기억하려 애쓰지 않는 평범한 이 순간은 어떻게 남게 될까. 어떻게 잊힐까. 이 순간의 분위기와 기분, 향기와 습도는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순간도, 쉽게 사라지는 것을.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 이 순간은 얼마나 빠르게 잊힐까.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 익숙한 그 사람은 언제까지나 함께일까. 내일이 없다면, 지금 이 순간이 특별하지 않아도 기억해야 할 텐데. 휴대전화에 남기지 않는 지금 이 순간. 일기장에 기록하지 않은 지금 이 순간. 그저 흘러가는 시간은 애처롭게 빠르게 흘러간다.


삭제해 버린 사진은 곧 기억에서도 사라질 거라, 변질된 기억으로 남아 훗날 밥상의 안줏거리가 될 수 있을까. 마음을 무겁게 했던 그 순간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거라는 말들. 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두고 기다려보라는 말들. 시간이 흘러 가라앉은 감정은, 상황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함과 동시에,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을 조금은 잊게 만들었다.


잊히는 것이 너무 쉽다. 호랑이처럼 가죽을 남기고 싶다. 이름 석 자 남기고 싶다. 기억해야 할 것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항상 그 앞에 있는 것처럼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