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악과 윤리

by 최윤형

넌 악하지 않아. 비윤리적일 뿐이야.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악’은 괴물처럼 생기고, 비상식적인 모습을 한 존재에서만 나타나는가? 그녀가 관찰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외모와 태도를 지닌 관료였다. 그러나 그는 나치 체제 아래에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인물이다. 평범함 속에 숨은 잔혹함, 이것이 아렌트가 주목한 ‘악의 평범성’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악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단지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악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상처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정신적인 고통과 신체적인 고통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 가능한가? 그리고 악은 이들 중 어디에 더 가까운가?


이 질문을 더욱 심화시키는 사례로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은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전기충격을 가했다. 실제로 충격을 받은 이는 연기자였지만, 참가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상당히 위험한 수준까지 충격을 가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여기서 아이히만과 밀그램 실험 참가자들의 공통점은 ‘권위’다. 둘 다 권위라는 체계 아래에서, 자신의 윤리적 판단을 유보하거나 포기한 채 타인에게 해를 끼쳤다. 물론, 아이히만의 범죄는 역사적 참사이고, 밀그램 실험은 통제된 심리 실험이라는 점에서 직접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타인에게 피해를 준 행위’에 집중한다면, 이들 모두에게 ‘악’의 그림자를 던져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이히만이 나치의 고위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여전히 악한 사람이었을까? 악은 권위에 따랐다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악’의 이미지는 귀신, 악마, 폐허가 된 집이나 신비한 사물처럼 초현실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이런 이미지들은 대부분 종교나 미신과 관련되어 있으며, ‘신성하지 않은 것’ 혹은 ‘불결한 것’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이들 역시 사회적 기준, 즉 윤리적 잣대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아렌트가 말한 ‘평범한 악’과 종교·신화에서 말하는 ‘초월적 악’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보면, 악은 어떤 고정된 특징이나 외형을 갖춘 존재라기보다는, 우리가 공유하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나 윤리적 기준에서 벗어난 행위일 수 있다. 아이히만의 학살 행위, 밀그램 실험에서의 전기충격, 악마나 폐가에 얽힌 이야기 모두 그 깊이나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상식에서 벗어났다고 모두 악으로 볼 수는 없다. 혁신과 창조는 종종 상식을 넘어서야 가능하고,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한 결과가 인류의 진보를 이끌기도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은 오히려 긍정적인 전환을 낳기도 한다. 그렇다면 악의 기준은 상식이 아니라 ‘윤리’에 두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윤리를 거스르는 행동, 즉 비윤리적인 행동이 곧 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이히만과 밀그램 실험의 참가자 모두 권위에 의해 윤리적 판단을 유보했으며, 그 결과 타인에게 고통을 주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비윤리적이며, 나아가 ‘악’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윤리조차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청소년들의 비속어 섞인 대화를 비윤리적이라 느낄 수 있다. 반면 또래 친구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의 언어일 수 있으며, 어떤 윤리적 판단도 내리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윤리의 기준은 나이, 문화,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악의 정의 역시 상대적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악’이란 개념을 단순히 외적 형태나 상식적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악은 때때로 우리 곁에 너무도 평범하게 존재하며, 권위와 무비판적 복종, 윤리적 사고의 결여,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속에서 드러난다.


‘악’은 괴물처럼 생긴 존재만이 아니라, 때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안에도 깃들 수 있다. 그 악은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거나,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질 때 더욱 쉽게 드러난다. 윤리의 기준은 상대적일 수 있지만, 최소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함과 스스로의 판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우리가 악에 저항할 수 있는 출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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