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백이십다섯 그릇의 떡국
내가 오니 생겼는지
있던 곳에 내가 왔는지
시간은 무엇일까.
우리는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세상을 나눈다. 기원전과 기원후, 그리고 지금은 서기 2025년. 예수가 태어난 지 2025년이 지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시간은 어디에도 ‘2025’라는 숫자를 새겨두지 않았다. 흐르고 있던 강물 위에 우리가 눈금을 그었을 뿐이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쪼개지고, 다시 오전과 오후로 갈라진다. 23시 59분이 끝나면 0시가 시작된다.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 모두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실은 우리가 합의한 약속에 불과하다. 컵라면이 3분 뒤 익는다는 것도, 시간 때문에 익는 게 아니라, 익었을 때 보니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말일뿐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세라는 것도 단위의 장난에 가깝다. 1년을 365일로 세기 때문에 80세라 말하는 것이지, 만약 1년을 182.5일로 나눈 세상이라면 우리는 160세까지 산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보험의 ‘100세 보장’은 ‘200세 보장’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의 200세는, 지금 우리의 100세와 다르지 않다. 결국 숫자가 달라졌을 뿐, 삶의 길이는 같다.
세상은 원래 흘러왔고, 우리는 그 위에 색을 입히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그것을 절대적 질서라 부르지만, 사실은 인간이 만든 틀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먼저였을까? 본래의 흐름 속에 우리가 맞추어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시선이 세계를 지금의 모양으로 빚어낸 것일까?
인간은 위대하다. 글로 사람을 울리고, 수학으로 세상을 설명하며, 과학으로 우주의 기원을 더듬는다. 기술로 지구를 지키고 동시에 파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창조자라기보다는 발견자에 가까운 존재다. 달은 우리가 보기 전에도 지구를 돌고 있었고, 우리는 그저 그 기적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아마 인간은 만들어내기보다, 발견하고 이름 짓는 데 능숙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세상 위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욕망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나의 세계 속에 세상을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서로를 바라보며 이기적이라 말하지만, 결국 모두가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위대한 존재일까?
아니면, 세상 위에 색을 덧칠하며 잠시 빛나는 이름을 남기는, 조금은 교묘한 존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