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사과
작가라는 직업이 환영받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초등생 시절 작은 종이에 적었던 꿈, 그 꿈은 교실 뒤편 사과나무에 사과가 되어 열렸다.
“어리잖아.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에게 타당한 꿈을 바라는 것이 너무 무리한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당시에는 더 탐스러운 사과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소중하지 않은 사과는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는지 꿈의 의미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넌 꿈이 뭐니?”
생글한 웃음으로 손을 꼭 잡으면서 꿈을 묻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 어른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빳빳한 양복을 입었던 멋쟁이 아저씨는 왁스를 바른 머리에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축구선수요.”
작가를 꿈꾸던 나는 잠시 축구에 빠졌었다. 생활기록부의 취미와 특기, 장래 희망란은 모두 ‘축구선수’로 채워졌다.
“와, 너 축구 잘하는구나.”
축구선수라는 꿈을 들은 어른 중 절반이 넘는 숫자는 꼭 이렇게 되받아쳤다. 축구를 잘해서라기보다는 난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였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작가보다 축구선수를 적었던 기억이 더 많아지기 시작할 때쯤,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고민 없이 꿈을 적었던 그 빈칸에 조금은 다른 의미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과학자나 대통령, 축구선수 같은 우리들의 평범한 사과들에 조금 더 자세하고 명확하며, 가능성이 있는 것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넌 꿈이 뭐야?”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더 이상 축구선수라고 대답할 수 있는 눈치가 아니었다. 조금은 현실적인 것을 말해야 했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을 원했다.
“작가요.”
“작가? 무슨 작가. 구체적으로 말해봐.”
“음…”
망설이던 내게 담임 선생님은 커다란 종이 하나를 들고 오셨다.
“봐, 이게 대학교 명단이고, 그 대학에 있는 학과들이야.”
담임 선생님이 가져오신 커다란 종이에는 학과별로 이름이 세밀하게 적혀있었고, 그 옆에는 뭔지 모를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옆에 점수는 수능에서 얼마 정도의 점수를 받아야 이 학과에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지.”
그렇게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작가’라는 직업으로 이어갈 수 있는 학과들을 조사했다.
‘문헌정보학과’ 그리고 ‘문예창작학과’ 등 글과 관련된 학과를 찾으면서 그 학과가 어느 대학에 있는지 알아봤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 돼야 그 대학에 갈 수 있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당시 내가 대학을 조사했던 종이를 보면, 서울권에 있는 최상위 대학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그때부터는 조금씩 꿈이라는 것이 원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보다는 유망한 것, 혹은 길이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뒤 정처 없는 학교생활 속에서 명확하지 못한 알맹이를 좇기 위해 노력했고, 그 끝은 큰 시험을 통해 12년을 평가받는 것이었다.
마침내 도달한 목적지에 대한 의구심은 있었으나, 12년을 보상받고 싶었는지 그 길에 애써 나를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학과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작가’라는, 이제는 명확해진 꿈을 위해 다시 노력하고자 했다. 매일 하루를 기록했다. 경험과 시선 그리고 감정과 청춘을 적었다. 그리고 그 글이 세상에 나와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에게 공감을 또는 위로를 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 심사에 통과하고, 활자로 찍힌 글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지 실감했다. 그리고 꿈은 과거의 사과처럼 다시 열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브런치를 발판 삼아 더 넓은 곳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날, 나는 다시 열린 사과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