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을 볼 때
나는 계획이 없는 순간을 싫어했다. 계획을 짜는 편은 아니었으나, 단순히 일이 없는 시간을 싫어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랬던 나의 취미 중 하나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기록하는 습관이 있던 나는 학창 시절에는 작은 메모장을 들고 다녔다. 단단한 표지에 영국 국기가 그려져 있었던 손바닥 만 한 수첩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토론동아리 활동을 했을 때, 수첩에 미리 주장과 반론을 적었다. 물론, 동아리에만 쓰였던 것은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 괜찮은 생각이 떠오를 때면 중요한 단어를 수첩에 적었다. 그러면 시간이 날 때, 그 단어로 당시 분위기를 회상해 짤막한 글을 썼다.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에는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아직도 기억에 있는 초등학생 2학년 때의 하루가 있다. 10월 중순이었던 것 같다. 2학년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매일 일기를 필수적으로 쓰게 하셨다. 지금 회상해 보면, 성함마저 뚜렷한 그 선생님은 꽤 엄하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셨다. 이제 막 9살이 된 아이들에게 급식마저 남기지 못하도록 칼같이 지시하셨으니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제출한 일기를 꼼꼼하게 읽어보시는 편이었다. 그리고 서명과 함께 짧은 답변을 써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그 하루에 선생님께서는 수업 중에 일기 한 편을 읽어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윤형아, 네가 쓴 일기 애들한테 읽어줘도 되겠니?”
당시 35명 남짓했던 우리 학급에서 순식간에 모두의 눈빛은 나에게로 향했다. 난 조용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눈빛을 많이 받았던 기억은 그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없는 것 같다.
일기의 내용은 아직 선명하다. 그때가 10월임을 아직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가을의 정전기를 다룬 내용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표현력이 훌륭하다고 하셨다. 하루의 기억을 잘 담아냈다고 말씀하시면서 일기장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나의 일기를 학생들 앞에서 낭독하셨다.
부끄러움은 없었다. 자랑스러운 감정 속에서 가슴이 나도 모르게 부풀고 있음을 느꼈다. 그 뒤로는 선생님의 답변을 꼼꼼히 읽어봤다. 기대감 속에서 일기장을 펼쳐보다가 가끔 답변이 없이 서명만 있는 날이면, 오늘은 바쁘셨나 싶다가도, 오늘은 일기가 별로였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나의 글을 누군가 읽고, 평가를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글짓기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필수 교양으로 모두가 들어야 하는 과목이었기에, 비자발적으로, 그러나 행복한 마음으로 강의를 들었다.
‘단편소설 작성하기’가 과제였던 하루, 교수님께서 강의실 앞쪽에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작성한 글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셨다.
“윤형 학생, 이거 진짜 경험한 거예요?”
“아니요, 조금 섞었습니다. 허구도 있고, 진실도 있습니다.”
“잘 썼어요. 몰입감이 좋아요. 아쉬운 점은 호흡이 너무 길어요.”
교수님의 평가는 도전 의식을 느끼게 했다.
글을 쓰는 과정과 평가. 지금까지 써왔던 글은 조금씩 기억에서 사라지고, 다시금 그때의 기록을 꺼내봐야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가를 받았던 글, 누군가에게 닿았던 글은 머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 글에 대한 평이 좋았던, 좋지 않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 나의 경험과 생각을 읽어주는 것으로 글을 씀에 있어서 거대한 활력이 되었다.
그 시작은 언제였는지 모른다. 영국 국기가 그려졌던 메모장이었을까.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내 무료함을 채워주던 순간들이 이제는 내 삶에서 더 큰 일부가 되어 나를 바꾸고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브런치 스토리는 영국 국기 메모장과 닮았다. 경험과 생각을 기록한다. 글은 세상으로 나온다. 정전기가 튀던 그 가을의 기억처럼, 교수님께서 읽어주셨던 단편소설처럼.
아직 완벽하지 않다. 그 길의 끝에 어떤 목표에 도달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발판 위에 섰으니, 그 기회를 단단히 붙잡고 싶다.
내가 쓴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는 날, 나는 그 순간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겠다. 내 삶의 일부로, 나의 성장으로 받아들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