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록과 큰 숲
아직 땅에 묻혀 빛을 기다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불에 타 사라진 역사와 빼앗긴 것들에도 꽃이 필 수 있을까. 조용히 담아놓았던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에 처음이 있으니. 단단히 가려진 것들에 빛을 보여주고 싶다.
처음 만날 때처럼 낯설고, 아직은 약하고도 싱그러우니. 그렇게 ‘처음’이라는 단어는 마치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깊은 곳에 빠진 돌멩이 하나가 더 깊게 가라앉을 때, 어두운 심해 속으로 충분히 가라앉았을 때, 비로소 찾을 수 없게 된 그 돌멩이의 가치는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 돌멩이 사실 금이었다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한 주먹 가득한 금덩이의 가치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 다소 회색빛이 짙어진 서울과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얼마나 동의할 수 있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명제를 믿고 있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슬픔에 함께 울고, 기쁨에 함께 웃는다.
슬픔과 기쁨처럼 나눠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아직 모르는 이가 많다.
너의 슬픔과 나의 슬픔 같지 않고, 너의 기쁨과 나의 기쁨 같지 않다. 너무 다른 너와 나지만, 우리 그럼에도 나눌 때야 비로소 이해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기록도 그렇다. 나눠야 알게 되는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과 젊음과 사랑이, 얼마나 많은가.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슬픔처럼 누군가의 기쁨처럼, 나와는 다른 결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조금은 단단해 보이는 ‘글’에 대한 우리의 베일을 조금은 벗겨낼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고리타분한 것 같고, 때로는 누군가의 공간 같은 그곳에 다양한 씨앗을 뿌릴 수 있지 않을까.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고, 흐르는 물은 바다로 나아간다. 그 사람 마땅한 필명이 없어 긴 글에 눈길이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다면.
아직 땅에 묻힌 빛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빛들이 연소 되어 사라지기 전에, 깜깜히 묻히기 전에, 빼앗긴 역사가 되기 전에, 우리가 잡아줄 수 있다면.
공감할 수 없는 세대 간의 격차를 말하더라도, 자신의 일기와 같더라도, 나의 시선에 맞지 않더라도, 분명 그 글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연료가 되어 먼 길 나아갈 용기를 줄 테니.
순간의 것들을 놓치지 말고, 소중히 담아낼 수 있다면, 모두의 삶에 모든 순간이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지금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이 공간에서, 모두가 문턱을 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이 공간을 지금처럼 훌륭한 기회의 장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에서 청춘과 젊음과 늙어감에 대해 터놓고 공유할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이 유지될 수 있다면.
내가 그랬듯,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달려갈 수 있을 것이며, 누군가가 그랬듯,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장으로 여기 지금 우리. 새로운 제안이 왔던 그 순간의 설렘과 떨림을 기억하고, 글을 쓰고 편집하며 정리하던 순간의 노력을 마음에 새겨서.
모든 가능성이 새로운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빛이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브런치라는 이름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여기서 우리는 기록을 나누고, 서로의 슬픔과 기쁨을 건네며, 다른 세대와 다른 결의 경험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이곳에서 나만의 언어를 단단히 세우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문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브런치는 그 믿음을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남긴다. 언젠가 이 기록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되기를, 그리고 그 시작이 다시 이어져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학의 숲이 되기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