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가을이 오면 괜찮아질 거야.

by 최윤형

가을비가 내린다. 날이 아직 더워 습한 기운이 올라온다. 숨이 턱 막히는 곳. 더위는 지났는데, 아직 숨은 온전하지 못하다.

변화의 바람이 부는가. 여름이 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할 계절이 왔음에도 여전히 뜨거운 바람.

옷장에서 먼지 쌓인 카디건을 꺼낸다. 코가 간지럽다. 지난봄에 입었던 카디건이 꼬깃하게 접혀있다. 마음이 급했나. 깔끔하기보다는 그저 공간의 부피를 줄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늘이면 카디건을 입어도 되겠지. 이제 시월이 다가오는데, 카디건 정도는 괜찮겠지. 외출을 앞두고 옷을 꺼내던 나, 거실과 내 방의 창문이 열려있다. 마주 본 두 창문으로 뜨거운 가을바람이 분다.

땀이 흐른다. 열이 많아 여름에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이제 그 고생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아직 이 더위를 지속할 셈인가.

에어컨을 틀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땀 흘리면서 옷 먼지 삼키고, 꾸깃한 카디건을 꺼내 입는다. 까슬거린 카디건 안으로 하얀 면티를 입는다.

이 계절의 카디건은 다 좋지만, 까슬함이 유일한 흠이다. 완벽함은 없으니. 어디나 모순이 있기 마련이기에. 그럼에도 카디건의 고급진 분위기가 좋아서, 하염없이 가을을 기다렸건만.

더위를 지나 오랜만에 꺼낸 면티 역시 꾸깃하다. 그래도 입는다. 소망하던 계절이 왔으니. 이제 그 세상이 왔으니.

꾸깃한 면티 입고, 그 위에 꾸깃한 카디건 입는다.

이게 아닌데. 내가 그린 그림은 이게 아닌데. 꾸깃하던 면티의 우글거리던 목은 접히고 또 접히면서 목을 감싼다. 한 마리의 학이 목에 달린다. 작아진 카디건에 면티의 우글함이 극에 달한다.

이게 아닌데. 내가 그린 그림은 이게 아닌데. 꾸깃하던 카디건은 볼품없이 몸을 감싸고, 늘어난 옷은 중력의 영향을 하염없이 받았나. 가을이 오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낙엽처럼 꾸깃한 것이 거울 앞에 서있다.

오늘은 간만에 외출을 하는 날. 내 나이 스물다섯. 나이에 맞는 옷과 나에게 맞는 옷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 가을은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름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가을이 왔으니. 소망하던 계절이 왔으니. 이제 그 세상이 왔으니. 고난했던 삶은 모두 지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흔들리던 동공. 멋들어진 모습은 이름 모를 타인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언제쯤 좇아갈 수 있을까. 황새를 따라가는 뱁새가 아닌, 나도 황새가 되고 싶다. 당신이 뱁새라면 뱁새가 되어도 좋다.

그저 어디까지나, 당신들의 흐름을 타고 함께 하늘을 날고 싶던 날. 이제 서른이 더 가깝다는데, 난 언제까지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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