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젊음이 흰 모포 입고 능선을 구를 때, 기록된 한자 석 자도 해석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 아쉽게 밀려왔다. 국채보상운동 도서관에 걸린 유네스코의 파란 간판을 보면서 인터넷으로 인턴십이나 취직 같은 걸 검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남기고자 한 숭고한 기록보다는 내가 써 내려갈 새로운 기록이 더 깊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기록되지 못하면 사라지고 반복되기에, 기억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기억할 수 없게 사라진 이제는 희게 변해버린 수많은 생(生)들에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왔다.
의병장과 선봉장과 중군장이나 후군장의 이름은 마땅히 깊게 기록되었지만, 흰 모포 입고 구른 수많은 이름들은 이제 남겨진 흔적 없이 흙 속에 얕게 묻혔다.
고무 패킹 둘러싼 군번줄 두 개 목에 매고 연병장을 달렸던 3주 동안, 하나는 누구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얼굴로도 결제를 한다는 세상에서 지갑에는 고유한 신분증이 무늬 따라 빛나고 있다.
기록된 것을 기억하려는 유네스코의 취지에 맞춰 전시관에 붙은 검정 스티커를 읽고 있으면, 기록되지 못한 시간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얕게 묻힌 그들의 생(生)에 스치는 추위는 여전해서 흰 모포 하나로 덮을 수 있는 숭고함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우린 그들을 이름 없는 병사 혹은 저마다의 뜻으로 기리고 있지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그들이 빛을 보지 못함은 영원할지도 모르기에.
그들은 어쩌면 독립이 찾아온 지도, 전쟁이 끝난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