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계 발전한 날
사라지는 건 아름다운 걸까? 아니면 사라짐은 소멸 혹은 죽음일까.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의 아름다움을 말하던 이형기 시인의 낙화처럼. 어쩌면 사라진다는 건 그렇게 아쉽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집 앞을 걷던 날이었다. 은행나무가 보도를 따라 길게 심어져 있었다. 그중 한 그루만 유독 잎을 빨리 떨궜는지 휑한 모습으로 남았다. 바로 옆의 나무는 아직 많은 잎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근방에서 오랜 기간 동안 진행 중이었던 공사 현장의 소음이나 분진 같은 것들이 이 나무에게 고통을 준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잎이 빨리 사라진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나무에게 사라져 버린 잎과 가지만 남은 지금 순간은 소멸과 죽음에 해당하는 걸까?
사람처럼 나무만의 기질적인 차이겠지만, 이를 우리의 삶에 조금만 대입해 보면 색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이파리를 모두 떨군 은행나무가 가장 성숙한 은행나무는 아닐까 싶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나무가 이파리를 모두 떨구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그렇기에 이 은행나무는 사라짐과 소멸이 아닌 가장 빠른 성장 과정을 밟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사람이 고통 속에서 단단해지는 것처럼, 공사장의 소음과 분진으로 다소 고통을 받은 결과 더 빠르게 성숙해질 수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사라지는 건 어떤 건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사라짐' 자체에 초점을 두고 상황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성장 혹은 변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성장과 발전의 순간을 알고 지금의 자리를 박차고 나간 한 마리의 새로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