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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난감이 아니야

사슴벌레

by 서람


“돌격~, 콱 물어버려, 뒤집어 재껴 ”


초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에 교실 뒤에 모인 남자아이들이 떠들던 소리다. 흥미로운 싸움판이 벌어졌다. 두 친구가 곤충사냥 최고의 포획물인 사슴벌레 수컷을 잡아 와 책상 위에서 억지로 싸움을 시킨 것이다. 서로 뿔을 들이댄 소싸움의 분위기처럼 흥분한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싸움을 독려했다. 힘의 상징인 커다란 뿔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이 어린 소년들에게는 환상 그 자체였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그땐 그것이 재미라고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무지한 동물 학대였다. 야생에서 사슴벌레가 싸우는 이유는 단순하다. 먹이나 영역을 위한 경쟁이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책상 위에 대치한 두 녀석은 그런 이유가 없어 치열하게 싸울 리가 없었다. 더구나 사슴벌레는 야행성인데 벌건 대낮에 괴롭혔으니, 그것은 고문이었다.

자연에서 사슴벌레는 그래서 어둠을 기다리는 곤충이다. 낮에는 상수리나무 뿌리 근처 땅속이나 나무껍질 아래 숨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밤이 되면 기어 나와 더듬이를 마치 손처럼 움직여 정보를 수집해 좋아하는 수액을 찾아다닌다. 특히 참나무류에서 흐르는 단맛 나는 수액을 좋아한다.


오래전 8살 딸아이의 요청으로 사슴벌레를 사육했다. 우리 집 실내에서 동거한 유일한 동물이다. 덕분에 몇 달 동안 행동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는 가끔 꺼내어 자기 손등에 올려놓는 체험을 했다. 사슴벌레는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가듯 팔을 따라 어깨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아이는 그 신기하게 움직이는 모습과 피부의 감촉을 즐겼다.

그해 여름이 지나면서 아이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며 사슴벌레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자고 제안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라 바로 숲에 놓아 주었다. 땅을 밟은 사슴벌레는 작별이 아쉬운지 평소보다 더 뒤뚱거리며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에서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 마음속에서 꾸며낸 말을 아이에게 전해주었다.


"잘 있어. 친구야 그동안 고마웠어. 네가 준 바나나가 진짜 맛있었어. 나는 이제 자연 바람을 쐬러 간다. 너희 집에 잠시 머물렀지만, 나는 장난감이 아니라 생명이란 걸 잊지 마라. 생명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야.”


아이는 그 말을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사슴벌레의 걸음걸이에 점점 힘이 생겨났다. 잠시 후 숲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사슴벌레는 딱정벌레목(目)이다. 유충의 시기는 길지만, 성충의 수명은 자연 상태에서 거의 여름 한 철이다. 몸은 검정과 갈색 등 다양하며 표면이 단단하다. 사슴의 뿔을 닮았다고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암컷보다 수컷의 뿔이 훨씬 크다. 사슴뿔은 뼈이며 해마다 자라고 빠지는 데 반해 사슴벌레 뿔은 큰 턱으로 자라지 않는다.

단단한 등껍질 아래에 날개가 있다. 이를 펼쳐 날 수는 있지만 자세 유지가 힘들어 불안정하다. 우리나라에 10여 종이 분포하며 가장 흔한 종이 넓적사슴벌레다. 곤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매료되는 외모를 가지고 장수풍뎅이와 더불어 애완곤충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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