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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충영 Jan 06. 2024

[철없는 아저씨의 배우 도전기 (5)]

배우가 되고 싶은, 은퇴한 정부장의 실시간 르포르타주

내일부터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진행하는 첫 연기 수업이다. 강사님은 어떤 분일까? 같이 배우는 동료는 어떤 분일까? 궁금하고 설렌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으니 오디션 배우 모집 광고부터 오디션까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소속 계약을 하기 2주 전쯤, 밤늦게 잠들기 직전 페이스 북인지 카톡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시니어 배우, 모델을 모집하는 오디션을 본다는 광고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그냥 신청한다는 답을 보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다음날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지원하신 오디션 안내드립니다. 

1. 영화 (상업 6편 가제 XXX)

2. 드라마 (공중파, 일일)

3. 광고 (가구, 공기업)

오디션 가능 날짜 : 12월 29일 (금) 2시, 12월 30일 (토) 11시, 12월 31일 (일) 11시, 1월 1일 (월) 2시 (날짜 선택)

배역등급 : 초보 (보조, 이미지 단역), 경력자 (단역, 조단역, 조연)

배역연령 : 시니어, 성인

장소: 서울 구로구....

오디션 일정 비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참석 가능 여부를 문자로 회신을 주시면 안내드립니다.'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오디션을 합격하면 영화나 드라마에 배우로 출연하고 광고 모델로도 돈을 벌 수 있겠네!' '근데 외모, 목소리, 연기 실력 뭐 하나 가진 것 없는 내가 오디션이 통과될까?' '밑져봐야 본전 아니겠어. 오디션 비용이 따로 없다니 뭐 그냥 한번 보지 뭐.' 하지만 이왕 볼 바엔 빨리 봐야겠다 싶어 가장 첫 오디션 일자인 12월 29일 2시로 신청했다. 바로 답장이 왔다.


'오디션 일정 인원 배정 했습니다.  12월 29일 (금) 2시 입구 안내 데스크 접수 (2시간 진행), 장소는 XXX, XX역 3번 출구, 편안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오세요. 귀한 발걸음 감사드립니다. ♡♡♡'


'뭔 오디션을 두 시간이나 진행한대? 경쟁자가 많아서 그런가?' 배우가 걸어갈 레드카펫은 오디션 합격부터이다. 경쟁률이 치열하면 꿈은 멀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한 걸까? 하지만 '안전하게 오세요. 귀한 발걸음 감사드립니다.'에다가 하트 세 방은 나를 존중하고 대접해 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마침내 오디션 당일이 되었다. 아침 10시에 또 문자가 왔다.


'오늘 12월 29일 (금) 2시 오디션입니다. 참석여부 문자로 넣어주세요... 그리고 늦지 않게 도착해 주세요~'


'걱정 마라. 초, 중, 고 12년 개근상에 직장생활 26년간 단 한 번도 지각, 결석해 본 적이 없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야. 뭘 그리 걱정하냐?'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또 문자다. '인원체크 중이오니 문자확인해 주세요.'  담당자가 좀 짜증이 났겠다 싶어 얼른 답을 한다. 


'참석합니다'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버튼을 눌렀다. 환승역의 상업 빌딩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6층에 내려 미로 같은 복도를 돌아 돌아 가는데 벽에 온통 드라마, 영화 스틸 컷, 그리고 어린이 탤런트, 아역 배우 사진이 크게 붙어있다. 도대체 오디션 장소는 어디야?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군데군데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있는 넓은 홀의 끝에 사무실을 발견했다. 다가가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주변에 몸치장을 좀 한 분들은 배우 지망생인 것 같고, 대충 패딩을 걸쳤지만 애들과 같이 있는 사람들은 아역 배우 지망생의 학부모인 듯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 앞에 선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과 다른 어떤 세계의 입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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