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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충영 Jan 08. 2024

[철없는 아저씨의 배우 도전기 (6)]

배우가 되고 싶은, 은퇴한 정 부장의 실시간 르포르타주

단역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오디션 대기실로 들어선다. 중년의 여인들도 있고, 나와 같은 아저씨들도 있다. 심지어는 외국인도 보인다. 오디션 대기실 인원구성은 글로벌하다. 한 직원이 1차 인원체크를 끝낸 후, 들어온 회사 대표가 다시 각자가 제출한 프로필을 한 장 한 장 보면서 2차 인원체크를 한다. 대표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중년 사내다. 희끗희끗하지만 숱이 많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세상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출한다. 갑자기 앞 좌석에 앉은 러시아에서 온 듯한 외국인들을 보더니 "한국어 할 줄 아세요? 영어로 이야기하는 씬은 있어요. 하지만 영어 대사 씬을 찍기 위해서는 스태프들과 한국어로 최소한의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곤란해요. 오디션을 보셔도 결과가 좋지 않을 거예요. 통역을 쓰면 되겠지만 그건 저희들이 원치 않아요." 영어로 얘기하는 씬이 있다? 도대체 무슨 영화길래...  그리고 한국어 한마디 못하는 이 외국인들은 뭘 믿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 오디션 장으로 쳐들어 왔을까? 이해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 온 외국인 배우 지망생들은 세 명이 한 그룹이다. 서로 지인인 듯싶다. 타티아나와 나타샤는 친구이고 알렉세이는 아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징집 불똥을 피하려는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왔건만 딱히 일자리가 없어서 생계를 위한 단역배우를 하려는 건가? 놀라운 건 한국인 이름을 가진 내 오른쪽 옆자리의 여성은 몽골출신이라고 대표에게 실토한다. 이거 뭐지?


"XXX님" 하고 부르자, 내 오른쪽 한 사람 건너 단발머리의 중년 여성이 대답한다. "현역 기자세요?" "예" "배우는 왜 하시려는 거예요?" "아~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탤런트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기자가 됐어요.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한번 해보려고요." 대표의 표정이 어둡다. 기자는 언론사의 겸업 금지 조항 때문에 배우가 불가능하다는 얘길 한다. 대기업 회사원이나 공직자도 마찬가지란다.  "단역 배우도 안 되나요?" "안 돼요. 불법적으로 현금으로 일당을 지급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하고 대표가 난감해하자, 기자 아줌마는 "은퇴가 1년밖에 안 남았어요." 기자라서 그런지 단호한 목소리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결기를 똑 부러지게 표현한다. "그럼 은퇴하고 오셔야겠네요." 모두들 한 바탕 웃는다. "경험으로라고 제발 보게 해 주세요!" 와~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다. 저 정도 나오면 오디션은 보게 해 줘야 되지 않겠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열정이다. 은퇴 1년을 앞두고 인생 2막을, 전혀 새로운 을을 해보겠다고 밀어붙이는 아줌마의 강인함에 헹가래라도 쳐 주고 싶은 마음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탤런트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기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궁금하다. 사실 기자도 훌륭한 직업이고 은퇴를 해도 글은 계속 쓸 수 있을 텐데...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 책을 내도 되고, 인터넷 신문 기자를 하면 평생 현역인데 굳이 탤런트 (아줌마가 '배우'가 아닌 '탤런트'라고 말하는 이유가 뭘까? 무조건 TV에만 나오고 되는 소망일까?)가 하고 싶은 이유가 뭔지 궁금했지만 왠지 오지랖인 것 같아 감히 물어보진 못하겠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었다. "작가 세요?" "예" "소설도 쓰시나요?" "아닙니다. 최근에 인문학 책과 여행서를 출간했습니다." 대표는 인문학과 여행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소설을 한 번도 쓴 적도 없는 나에게 자꾸 소설을 쓰라고 권유한다. "부지런히 소설을 조금씩 써보세요. 드라마나 영화 제작할 때 작가가 쓴 원작을 IP라고 하거든요. 최근에 어떤 작가의 IP가격이 처음에 5천만 원이었다고 2억까지 올랐어요." 갑자기 나의 작은 두 눈이 확 뜨인다. 반사적으로 나는 외친다. "오늘부터 당장 쓰겠습니다." 대표님의 이야기가 나의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그래 연기와 소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보자고!' 뜬금없는 희망과 기쁨이 가슴에 소용돌이친다. 갑자기 대표의 음성이 복음처럼 들리고 정우성처럼 생겨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단역배우 경험이 있는 남자도 둘이나 된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는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았을 때가 300만 원이라고 하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는 55만 원이었다고 한다. 존경하는 선배님들이다. 이분들이 쌓아온 커리어패스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소심한 A형인 나는 들이대지 못한다. 이렇게 소심해서 어떻게 배우가 되려는 걸까? 


앞에 앉은 빨간 머리 아저씨는 갑자기 질문을 던진다. 주저리주저리 딕션이 정확하지 않아 요지가 뭔지 난해했지만 묻고 싶은 말은 '자신은 장애인인데 배우해도 괜찮은지?'이다. 대표는 이동할 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상관이 없다고 딱 부러지게 말해준다. 하지만 빨간 머리 아저씨는 불 명확한 발음으로 뭐라고 횡설수설한다. 휴~ 설마 저분은 붙고 내가 떨어지는 거 아냐? 그럼 내 자존심은 어떻게 회복하지?


인원체크를 마친 우리 정우성 외모의 대표님이 드디어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한다. 단역 배우의 세계가 그의 입을 통해 점점 전모를 드러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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